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한국 최고의 설교가라 할 수 있는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역시 영적 깊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한순간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주옥같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의 후반부인 큰아들과 아버지와의 대화부분을 통해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명령과 가르침을 설교하셨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크게 두가지의 잘못을 저질렀는데, 첫째 잘못은 “잃어버린 네 동생을 찾아라!” 라는 아버지의 명을 행치 않은 것이고, 둘째 잘못은 “동생을 사랑하라!” 하는 아버지의 명을 듣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동생을 찾으라는 전도의 명령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고, 동생을 사랑하라는 실천의 명령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무이한 계명입니다.

이 가장 중요한 명령과 계명을 실천치 않은 큰 아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돌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큰아들은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기와 신분이 다름을 의도한 것이지요.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죄인과 세리를 차별하는 것을 탓하시는 말씀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한번 신중하게 우리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내 주변에 있는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가 세리와 죄인들도 반기고 있는가? 우리는 격이 어울리는 사람들만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나?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세리와 죄인들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멸시하는 말을 하자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잃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탕자의 비유가 있고, 그 후반부에 큰아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큰아들에 빚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혹시 현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아닌가요?

전도라는 지상명령! 이는 사람을 살리는 명령이고,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전도해야 한다라는 논리로 이어지는.

저는 항상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이웃의 병을 고쳐주고, 어려운 사람을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에는 조금은 브레이크를 걸고 싶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을 읽고 교회에 갔습니다.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케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는 예수님의 강력한 명령에 대해 상고했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나의 마음에 울립니다. “세상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이 명령을 받아서 저는 제 방식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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