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하나님이 보내 주신 후배

고국을 떠나온 지 9년이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연락을 다 끊고, 미국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몇몇 친구, 선후배를 제외하고는 연락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후배라고 할 수 있고, 누구보다도 긴밀히 연락을 했어야 할 후배임에도 연락을 끊고 있었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2년전에 한번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고, 통화를 한 다음 다음 날에 라과디아 공항에서 후배를 만났습니다. 그 후배를 만난 지가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더군요.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 대학에 입학한 후배였는데, 까불고, 잘놀고 철이 없었지만, 그지 없이 착한 친구였습니다. 85년 말에 제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농구 써클에 들어온 이후, 약 18년 동안 그 후배는 저를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89년도에 제가 만든 회사에 join 하고, 2002년에는 저의 동업자가 되어, 저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사업의 대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제가 한국을 떠난 지, 채 1년도 되지 못해 회사는 문을 닫았더군요.

공항에서 조금은 어색한 포옹을 하고 나서 10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2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왔냐고 딱이 묻지는 않았지만, 후배는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바쁜 상황이었고, 특히 자금적으로 최악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터라,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먹고 자며, 줄창 저와 함께 쎄일즈를 다니며, 차안에서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후배가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형이 떠나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제 삶은 형과 함께 있을 때, 헝과 연관되어 질 때, 완성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저런 일을 해보면서 마음을 굳히고 있었는데, 2년 전에 어머니가 큰 돈을 들여서 제가 편안히 먹고 살만한 사업체를 사주신다고 하는 거예요. 기뻤지만, 마음 한구석이 저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살게 되면, 형과 관련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전에 형을 만나서 어떤 정리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의 연락처를 알만한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형 전화번호를 받고, 전화를 했던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변심하셔서, 사업체 인수는 없던 것으로 되었죠. 그때 부터 비행기 값과 일주일 정도의 시간만 주어지면, 무조건 형을 만나러 와야 겠다고 생각했고, 2년 만에 미국에 올 수 있게 된거예요."

후배의 말은 여기서 끝났지만, 뻔히 알 수 있는 다음 말은, 형 옆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친형보다 저를 더 의지한다고 했었습니다. 철이 너무 없다는 것 말고도, 장점 보다는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친구입니다. 물론 그만이 가진 장점도 꽤 있습니다만, 저는 그 친구의 단점에 더 주목을 하였습니다.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 후배의 단점이 거의 다 저의 단점이라는 것입니다. 사고방식과 대화의 전개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습니다. 제가 쓰는 관형구를 완벽하게 똑같이 쓰고 있었습니다. 제 단점을 제가 눈앞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 후배의 단점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용서할 수 있었기에,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후배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의 단점을 가진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후배는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움직이게 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내년 초에 미국에 들어올 지, 아니면 아주 오랜동안 연락 없이 지내게 될지? 하지만 지난 한달 간 후배는 제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제 생활의 한부분을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제 집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한달간이었겠지만, 제 후배는 제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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