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7일 수요일

세상과의 싸움

주님의 군사로서 세상과 싸우겠다고 거창하게 말할 상황도 아니고, 주제도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하던 사업이 실패했다고 할 상황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염려와 근심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무엇을 해도 은혜스럽지 못한 이 때에, 하필이면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지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지 몸도 많이 안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삶이 끝난다면 내 삶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평가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쫒기듯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제대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살다 갔다."  "목표만 거창하게 세우고 떠들고 다니더니 시작도 못하고 갔다."  "교회에서 봉사 쪼끔 하는 척 하다가 갔다."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만 잔뜩 주더니, 피해만 주고 갔다." 참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평가가 제 현주소일 것입니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가까운 친구가 듣더니, "빚이나 좀 갚고 하지. 은혜스럽지 못하잖아!" 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몇일 동안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게 빚 다 갚을 때 까지는 착한 일 하지 말고 살라고 한다면 그 말이 더 잘못 된 말이지 않겠는가?' 죄 없이 완벽한 사람 만이 크리스챤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니 남에게 욕을 좀 먹고, 피해를 좀 주고 있는 사람도 주님의 일 하는 것이 안하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 할 주제도 안되고, 할 여건도 안되더군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야 겠다고 매달렸습니다. 먼저 싸워야 할 대상을 정해보았습니다. 싸울 대상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는 어둠의 세력들, 돈, 권력, 폭력, 시기, 질투, 염려, 걱정, 불안, 욕심, 욕망, 공명심 등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싸울 수 있을까? 이 막강한 힘 앞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촛불 하나 켜서 온 세상을 어둠으로부터 밝힐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켜키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비록 태풍이 몰아치더라도 일단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으로 싸움을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거창하게 싸울 대상을 정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상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묘한 논리인데, 질 것이 너무 뻔한 싸움이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할까요? 아주 약한 상대방과 싸우면 준비도 별로 안할 것이고, 힘도 별로 쓰지 않을 것이고, 이겨도 별로 기쁨이 없을 겁니다. 나 보다 조금 약한 상대방과 싸우는 것은 오히려 심리적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저 보다 아주 조금 더 강한 상대방과 싸우는 것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자칫 내 힘을 의지하여 싸울 것 같고, 이기면 자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막강한 상대와 싸우려고 하니 어차피 제 힘으로는 상대도 안될 것이어서 주님을 의지하고 싸울 것이고, 평생을 싸워야 할 적이기에 계속 주님을 붙잡고 살 것이고, 질 것 걱정 안하니 마음 놓고 제 역량을 발휘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얻어 맞고 몇번 쓰러지고 나뒹굴어도 별로 챙피할 것이 없으니, 기운 차리면 또 덤비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또 덤비고,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기는 싸움 아닌가요?

먼저 나 자신과 싸우기로 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나태, 해이함과 먼저 싸우고, 다음으로 염려과 걱정과 싸우고, 다음으로 욕심, 욕망과 싸워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修身齊家' 의 원리대로 나를 닦는 작업을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태하지 말자, 해이해 지지 말자 라는 것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나태하지 않고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그 뭔가를 중보기도로 잡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영접한 이후의 45년 정도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중보기도를 안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지난 10년 간은 중보기도에 너무 소흘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하지 않았던 것을 첫번째 할 일로 잡은 것입니다.

몇 주째 중보기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점점 기도할 사람들이 늘어나자 시간이 부족하다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 역시 싸워야 할 대상이니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제대로 하자면 한시간 반 정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이 있어서 사십분 만에 마치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보 기도하면서 평안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보기도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어떤 싸움을 할 사람인지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어떤 도구가 되어야 할까? 내 삶을 돌아봄으로 하나님이 나를 어떤 도구로 쓰시기 위해 훈련시키셨나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꽤 빨리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개인적인 깊은 친분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말하곤 했습니다. 감옥에 가보지 않았고, 죽을 병에 걸려보지 않은 것 빼고는 다 경험해 보았다고요.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거의 발견했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제게 권면의 은사를 주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젊었을 때 대중 연설에 달란트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중 설교는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나는 개인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일을 하자고요.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편지 라고 폴더를 만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 분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위로가 되는 편지, 소망을 주는 편지, 새 힘을 주는 편지, 함께 싸움을 하자는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안타까운 것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 중 많은 부분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것인데, 현재의 제 상황이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여건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며 준비하려 합니다. 만약 허락하신다면 저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작은 손펴기를 하려고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갚아야 할 빚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빚을 다 갚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도 많을 겁니다. 5백불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저로선 빚을 빨리 갚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 빚 다 갚을 때까지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전개될 지 저도 궁금합니다.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지? 어떤 것을 허락하실지? 제 삶의 가장 바닥으로 여겨지는 시점에 이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상황이 되어도 이 싸움을 멈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라기는 감사와 소망으로 이 싸움의 전개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