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8일 목요일

정연이 결혼식을 마치고

 지난 주에 제 딸이 결혼을 했는데, 한국에 있는 누님, 형수, 조카들이 많이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오면서 한국의 가족들과 거의 소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제 와이프가 연락을 하며 지내죠.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지 않고, 카톡도 하지 않아서, 이 블로그를 통해 감사를 전하고, 제 근황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저희 누님들이  제 블로그를 보시는 것을 알거든요. 제 누님들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글입니다. 

결혼식 정말 잘 치루었어. 맨해튼에 있는 청년들이 다니는 큰 교회에서 만난 사이여서, 그 교회의 축제 처럼 진행이 되었어. 전체 하객이 120명 이었는데, 절반 이상이 그 교회 청년이었던 것 같아. 정연이 또래니 절반 이상은 결혼한 청년들이지. 담임 목사님의 주례도 좋았고. 결혼식 장소 잡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좁은 곳을 잡았다고 걱정을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가보니 크진 않지만 최고의 장소였어. 건물,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음식과 서비스도 좋았어.  4시에 시작해서 저녁 10시 넘게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신나게 놀며 축하해 주더라고. 준규가 여자 친구를 데려왔고, 한국에서 온 처제와 유학와 있는 조카가 같이 와서 일찍부터 도움을 주었어. 사돈 댁도 바깥 사돈은 나보다 두 살이 많고, 안 사돈은 회숙이 보다 한 살이 적으니 거의 같은 또래여서 말도 통하고, 또 정감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마음이 편해. 친구 같다고 할까? 정연이 남편 성우는 다정다감하고,  많은 친구들을 잘 챙기는 아이야. 하나 있는 남동생도 아주 명랑한 편이고. 아들 둘 만 있는 집에 딸이 들어왔다고 아주 좋아하셔.  남편은 좋은 직장 다니다가, 뜻한 바가 있어서 3년 전부터 사업을 하고 있어. 아직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요즘은 회사가 인력 이외에 큰 투자가 필요없는 경우가 많아서, 뉴욕에 두 명, 샌프란시스코에 두 명, 한국에 한명 일하고, 사무실 경비도 나가지 않나봐. 미국에서 비지니스 하는데, Naver 에서 투자를 받았다네. 요즘 세대와는 맞지 않는 얘기일지 모르는데, 나는 사돈에게 성우가 빨리 성공하지 않고, 한 십년 정도 열심히 한 후에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내 본심이야.  

미국에서 20년 동안 나와 우리 가족은 계속 진화하고 있어. 회숙이는 본인이 원하면 언제까지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고,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게 쓰고 있어. 정연이와 준규는 반듯하게 자라주었어. 엄마의 기도 덕분에. 준규가 시카고를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뉴욕의 회사를 알아 보고 있는 것 같아. 뉴욕으로 와서 누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야. 
나는 하고 있는 건축업이 아직은 안정되지 않아서, 자금 때문에 애로를 겪고, 고객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지만, 이제 1년만 더 노력하면, 개인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7년 전에 차려서 파트너가 운영하고 있는 네일 살롱은 뉴저지 최고의 네일살롱 이라고 자부할 만큼 잘되고 있어. 규모나 매출 면에서가 아니라, 서비스 퀄리티와 고객 만족도, 가격에서 최고라고 확신해. 투자자와 나누어도 1년에 15만불 수입은 되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나는 항상 사서 고생하고, 가만있지 못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라 문제인데, 지금 하고 있는 이 건설업을 내 마지막 도전으로 정했어. 직원 2백만 명과 함께 하는 미국 최대의 건설회사를 만드는 것이지. 미국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3천만명 정도거든. 그중에서 가장 저임금을 받는 스패니쉬 노동자를 모아서 작은 공사부터 큰 공사까지 다하는 회사를 만들려고해. 큰 건설회사는 엄청나게 고액을 받는 연봉자들이 많거든. 우리 회사는 고액 연봉자가 없는 회사를 만들거야. 적게 받아도 5만불 이상이고, 많이 받아도 20만불 이하인 회사, 많이 받는 사람들이 적게 받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회사를 만들어서, 힘들게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회사를 만드는 중이야.
나는 항상 1등 이었던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친구 많은 것에 1등 이었고, 중고등학교, 청년 시절에는 교회 봉사하는 데에 1등 이었고,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는 공부 안하는 데에 1등 이었지. 대학원 때 지도교수가 우리 대학원에서 공부 안하는 것으로는 내가 최고라고 수시로 말씀하셨었지. 절반 이상을 낙제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 과의 논문심사를 앞두고 교수님은 나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안한다고 하셨어. 같이 심사를 받는 두 선배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나는 열심히 놀았는데, 미안하게 나만 통과했지. 내 논문은 대표적인 이상주의자인 플라톤과 대표적인 현실주의자인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관점에 있어서 거의 같다고 한거였어. 실제로 거의 같아. 둘 다 왕이나 군주가 자기를 알아보고 써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책들을 썼거든. 내 논문 주제가 교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너무 좋았기 때문에, 심사하는 교수님들이 아마 내 논문 요약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을 거야. 열다섯 명이나 되는 한국 최고의 지명도를 가진 교수님들 앞에서 모두가 주눅이 드는데, 나는 아주 편안했어, 가장 낙제를 많이 시키는 악명높은 강성학 교수가 내 발제가 끝나자 마자 "너는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발상을 했냐?" 고 질문하셨는데, 거기에 대고 "교수님 The Republic 언제 읽어 보셨어요?" 라고 질문했더니, "치사한 놈! 너는 논문쓰느라 최근에 달달 읽었을 거고, 우리는 내용이 어땠나도 가물가물한데, 설명을 해줄 생각을 하지 않고, 공격을 하냐?" 며 더이상 말을 안하셨고, 이때를 틈타 우리 지도교수님이 지도 의견 말씀하시더니, 질문 더이상 없으실 것 같은데 받기로 동의하시죠 하고 통과했지. 우리 교수님 말씀대로 정말 통쾌한 패스 였지. 사실 강교수님은 내 친한 친구의 삼촌이어서 농담도 할 수 있는 사이였어. 만약에 더 연배있으시고 점잖으신 교수님이 질문을 하셨다면 다르게 답했을거야.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안배였지만,  나는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있었지. 이벤트 회사를 차렸을 때도, 3년 정도 지나서는 한국 최고의 이벤트 회사가 됐어. 삼성 그룹에서 하는 비딩을 다 따냈으니까. 무역업을 했을 때도 우리 분야에선 항상 최고였어. 우리가 수입한 제품은 롯데 백화점이나,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팔 수 있었으니까. 우리 나라 전체 가정의 10% 이상이 우리가 수입한  할로겐 스탠드를 사용했었지. 내가 만든 중국 양복 공장도, 양복 대신 작업복을 만들게 되었지만, IMF 전년도에 우리 나라 전체 작업복 수입 물량 중에 15% 를 차지했었지. 1992년부터 5년간 중국에 공장이 4개로 늘었었지. 미국에 와서도 네일살롱 컨설팅 분야에선 내가 최고였어. 미국에 온지 4개월 만에 커네티컷에 네일 협회를 만들었어. 커네티컷에 네일 살롱을 운영하는 280명의 오너들 중 몇명 빼고 다 만나서 상담을 하고 만들었는데, 그들 중 아무도 내가 불법체류 상태이고, 미국에 온지 몇달 안되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내가 큰소리 치고 차려준 네일 살롱들은 다 성공했어. 
여기까지는 지나간 사실이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인데,  건축업을 시작하고 보니, 이 분야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분쟁이 많고, 광법위해서 7~8년간 고생하며 열심히 했는데됴, 걸음마 수준이고 고객과 자주 싸우고 있더라고.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은 내 성품으로는 건축업 못한다고 그만두라고 지금도 말리곤해. 그분들의 말에 사실 나도 동감하지. 그러면서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 알다시피 젊어서 내 목표가 정치였잖아? 그때도 가까운 사람들은 내 성품으로는 정치 절대 못한다고 했지. 그러면서 몇몇 분은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정치해서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어. 나는 정말 자신이 있었어. 그런데 사업의 안정을 이루고 정치를 시작하려 했는데, 결국은 사업의 안정을 이루지 못했지. IMF 때문이라고 핑계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랬던거지. 지금은 내 지난 삶의 어떤 시절, 어떤 순간 보다도 더 집중해 있어. 지나간 삶을 볼 때,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하며 살아왔어.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다섯 시간 정도 네일살롱에 시간 쏟고, 양로원과 밀알에서 봉사하는 데에 일주일에 7~8시간 쏟는 것 이외에 거의 모든 시간, 온 신경을 건축업에 쏟고 있어. 작년에 걸음마를 뗐다고 선언했지. 지금은 갈 방향을 발견했고, 어떻게 가야 할 지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어. 뜻을 정했고,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하시는 한 이 길을 걸을거야. 좋은 파트너도 한명 보내주셨고. 아직까지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서 매주 마다 기적을 경험하곤 해. 그래도 뜻을 정했고, 내가 걷는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평안해. 다른 곳의 건강은 내 또래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 녹내장이 심해서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시력이 약해졌어. 글을 쓸 때도 노트북 화명에 거의 얼굴을 대고 쓰고 있지.. 

결론은 정연이 결혼 잘했고, 준규도 여자 친구가 생겼고, 회숙이는 여전히 안정적이고, 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음질 하고 있어. 잘 진화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기대하라는 거야.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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