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9일 일요일

2023년 부활의 새벽

 이십년 가까이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의미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신앙이 식은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어저께 저희 네일살롱에서 일하는 스패니쉬 직원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어제 저녁에도 교회에 가고, 오늘 새벽에도 교회에 갈거라고 하네요. 저희 가정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ㅏㄶ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나서는 와이프가 부활절 계란 삶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냥 좀 특별한 주일 예배를 한번 드리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일까요?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요?

내가 편안함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이 어쩌면 편안함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960년대의 남산 야외음악당 에서 열렸던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나라가 개발되기 전, 한국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전이었던 그 시절에 족히 5만명은 넘는 사람들이 남산에 모였습니다. 그 새벽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에 왔는지도 잘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으로 저희 집은 택시를 대절해서 갔던 것 같습니다. 4명 탈 수 있는 택시에 5명 타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에 택시라는 것도 60면대 중반에 생긴 시발 택시, 새나라 택시 등이 처음일 것이니, 어쩌면 택시가 아니라 관용차를 비리려서 갔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대여섯 번 중에 우리 갖족은 대부분 아주 일찍 가서 무대 가까이에 자리 잡았고, 두번은 남산 도서관 계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대 앞에 앉지 못한 두번의 기억은 선명합니다. 잠을 설치고, 어둠을 뚫고 서둘러 갔는데도 무대 앞에 앉지 못한 거ㅅ이 못내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절반 이상은 걸어서 남산에 왔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40분 정도 걸으면 남산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당시 서울의 기독교 인구가 15~20만명이라고 보면 3~4명 중에 한명이 이 새벽 연합예배에 참석한 것이니, 가히 국민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못살던 시절에 있던 일입니다.

물론 이시절에 예배에 참석한 것이 제 의지는 아니었겠죠? 하지만 부활을 맞는 지금의 내 신앙생활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분들에게 그 교회에 왜 나가냐고 물으면, 목사님 말씀이 좋아서, 프로그램이 좋아서, 성도들 간의 교제가 좋아서... 저도 교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맞는 교회' 를 찾아보라고 권합니다. 꼬집어서 말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내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듯한.

이렇듯 우리의 신앙은 편안해졌습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분들에게 불편한 신앙생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큰 교회들은 선교지도 많고, 규칙적인 아웃리칭을 합니다. 가끔 시간을 내서 참석하고, 도네이션 하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이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삶인지, 멀어지는 삶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무두가 여건이 다르니 어떻게 살자고 제시하기도 힘이 듭니다. 

한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앙 생활이 편안함을 추고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당신은 당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아닌지요?"  

2023년 부활의 새벽에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을 어여삐 봐주시고, 그들의 삶이 부활의 증인된 삶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주님의 부활을 힘들게 준비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세요. 저도 힘들여서 부활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들여서 부활을 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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