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 토요일

저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4)

  4편에서는 부자가 본향에서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왜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 지에 대한 주제로 시작하려 합니다. 

아마 어느 종교도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할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공의로운, 공평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세상에서 부자로 편안하게 누리며 산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도 편안하게 산다면 공평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아껴써서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되었는데, 무엇이 문제냐구요? 부자로 태어나서 여유있게 살았고, 또 열심히 벌어서 남도 많이 돕고, 좋은 일에도 돈을 많이 썼음에도 워낙 돈이 많다 보니 부자로 죽었는데, 무엇이 문제냐구요? 네! 문제가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주변에 3대째 부자인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 연대가 그런지, 제 또래에는 2대째 부자가 대부분인데, 저보다 몇 년 젊은 친구들 중에는 3대째 부자가 꽤 있습니다. 그들도 대부분 60세가 되었는데, 아무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이 없습니다. 3대째 부자인 이자리에서 태어나면 평생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다 갑니다. 물론 부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노력할 만큼 했고, 돈 때분에 고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변명이 안됩니다. 이세상에서 부자로 살기를 선택한 것은 본향에서 고난받을 것을 선택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팔자를 바꿀 방법은 재산 모두를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난하게, 없이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정말 멋있는 삶이잖아요? 그런데 99%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물론 모두가 같지는 않습니다. 동정심을 많이 가지고 태어나서, 열심이 남을 도우며 살다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시기심이 생겨서 그들 보다 부자가 되기 위해, 그것에 삶의 목표를 두고 살 확률이 높습니다. 부자로 태어났는데, 사업을 하다가 또는 잘못 투자해서 쫄딱 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의 조소를 받으며 살 수 없어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불평하며, 남 원망하면서 세월을 낭비하다가 삶을 마치는 경우도 있고, 아주 드불게는 새로운 기회로 삼아서 인생을 역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가난하게 살면서, 좋은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이죠. 더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부자로 태어나면, 다 나눠주고 성실하게 가난하게 살다 가는 확률과, 망한 후에 성실하게, 가난하게 살다 가는 확률, 이 두가지를 합쳐도 아마 1%도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국민학교 다니면서도 집안 일을 돕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삐투로 나갈 확률이 있을 겁니다. 가출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그러다가 나쁜 어른들에게 사로잡혀서 그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다가, 어린 나이에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돌아올 확률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기회로 개과천선 할 수도. 반대로 그렇게 가난하지만, 참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중학교 때부터 공장에 나가서 일해서 가정에 도움을 줘야 하는 삶을 살 수도 있겠습니다. 여건이 그것 보다는 조금 더 나아서, 실업계 고등학교 나와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동생들은 대학에 보내고 자신이 희생하기도 할거구요. 어떤 느낌이 드세요? 왠지 중학교 때부터 돈을 벌던,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바로 돈을 벌던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버는 이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위한 첫단추를 잘 꿴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배우자를 만나 살아간다면, 건실하게 돈을 모으며 살아 갈 확률이 높습니다. 작은 돈에도 감사하며, 가난한 것을 겁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남을 도울 수도있을 겁니다. 물론 돈에 한이 맺혀서 한푼이라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려고 헛된 짓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자시 자식은 부자들 속에 살게 하려고 헛된 짓을 할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가정이라면, 부차 흉내를 낼 시간도, 여유도 없을 거구요,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헛된 길로 갈 확률도 적을 겁니다. 결국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시작하게 되는 경우의 삶은, 탈선하지 않고, 참고 견디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본향에서 대우받는 삶을 살다 가게 될 겁니다. 

대부분은 아주 부유하지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큰 길을 달려갈 겁니다. 대학교 학비 까지는 내줄 수 있는 가정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대학 학비를 자신이 벌어야 하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대학 학비를 내준 것을 감사하며,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아르바이트도 하며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좋은 옷, 좋은 가방 안사준다고 불평하며 다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마음 가짐은 부모님의 삶의 형태에 따라만들어질 겁니다. 엄마 아빠가 성실하게 일해서 한푼 두푼 힘들게 모아서 기쁨으로 학비를 줄 경우와, 부모가 성실히 일하기 보다는 어디서 돈을 뜯어내거나, 일확천금을 바라며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어떤 돈으로 학비를 내느냐에 따라, 그 돈의 가치도 다를 것이고, 공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겁니다. 명품 가방을 쉽게 사면서 학비 내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는 부모를 둔 사람과, 부부가 힘들게 일하고, 겨우 학비를 모아서 감사하면서, 용돈을 넉넉히 주지 못함을 미안해 하는 부모를 둔 사람의 삶이 다를 겁니다. 또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 지도 중요한데, 이것도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을 겁니다. 적당히 포장해서 부잣집 딸과 결혼하거나, 부잣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아보려 할 수 있습니다. 포장이란 것이 쉽지는 않아서, 무리가 따르고 실패하기도 할거고, 또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이후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돈이 꽤있는 집도 같은 환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신분상승 욕구에 사로잡혀서 무리를 할 수도 있고, 사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아주 많은 경우가 있고, 이를 좀더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만 줄이려 합니다. 어쨌든 부자로 태어난 사람이나, 부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들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대우받을 확률이 지극히 적습니다. 반면에 가난하게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가난하게 살다 간다면, 하늘나라에서 큰 보상이 주어질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이 만드시고, 운영하는 세상에서는 부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이유도, 가난한 사람을 경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는 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재능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친구들을 많이 봤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 운동 잘하는 친구, 머리 좋은 친구, 싸움 잘하는 친구, 노래 잘하는 친구, 그림 잘 그리는 친구, 기타 잘치는 친구, 말 잘하는 친구, 글 잘쓰는 친구, 리더쉽이 좋은 친구, 잘 노는 친구... 국민학교 때부터 천재 소리 들어가며, 전교 1등을 늘 하던 제 친구는 군대에 가서 자살로 삶을 마쳤습니다. 그 친구가 죽기 전까지 가끔 만나던 친구에게 물으니 "뭐, 천재의 고독. 그런거 아닐까?" 하더군요. 저와  친구들이 '운동의 신' 이라고 부르던 제 후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축구로 청소년 대표까지 했었는데, 대학교 때 고대 농구부와 농구 시합을 했는데, 당시 고대 주장이던 이민형 감독이 제게 "형! 철이 형은 마이클 조던 보다 잘하는 것 같아요." 라고 제게 말할 정도로 대단했었습니다. 마치 무림 고수가 농구장에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골프를 6개월 치고, SBS 오픈 골프대회에 나가 3연속 우승했을 정도죠. 그 후배가 어떤 운동 하나에 집중했다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전설을 남겼을 겁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싸움을 말리다가 한대 친 사람이 죽어서 과실치사로 형을 살았고, 중국에서 골프 회원권 사기로 중국과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플러밍 일을 하며, 60대 조기축구 선수 중에 최우수선수로 살고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고 많이 했던 제 친구는 자기에게 맞았던 친구들에게 욕먹어가며, 가수로 활동하는 자기 아들에게 혹시 피해가 갈까봐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어쩌다 친구 집에 기타 잘치는 친구들이 모였었습니다. 상봉이란 친구는 우리 학교 보칼의 리드 기타로 당시에도 국일관 나이트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고, 우돈이란 친구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기타를 아주 잘치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규응이라는 처음 본 친구가 와서 기타를 치는데, 모두가 입이 벌어졌습니다. 이 친구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밤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먹고 사는 친구였는데, 우돈이가 클래식 기타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을 연주하니까, 자기도 그거 할 수 있다고 하며 팝 연주 기법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완벽하게 연주했습니다. 우돈이 보다도 더 완벽하고, 매력적으로요.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친구였고, 오로지 라디오에서 한번 듣고 좋아서, 혼자서 몇번 연습해 보고 치게 되었다는 겁니다. 상봉이나, 우돈이나 기타로 자부심을 삼던 친구인데, 이 둘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전재를 본 겁니다. 저도 그 친구의 그 때 연주를 잊지 못합니다. 나중에 그 친구의 이름을 가끔 검색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 잘그리는 것으로 아무도 못따라올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상을 휩쓸었고, 고등학교 때는 서울 동부지역 고등학생 미술 경시대회에서 전통을 깨고 2학년에게 최우수상을 줄 수 밖에 없었던 정도로 뛰어난 친구였습니다. 홍대 미대에 들어갔는데, 예비고사 점수는 커트라인과 비교도 디지 않게 낮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홍대에 다니는 미술부 선배들이 와서 홍대에는 실기 전체 수석에게 주는 특혜가 있다고  하면서 시험장에 끌고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수석을 했고,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교에서도 탁월한 실력으로 교수들 간에 갈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갤러리에서 백호 짜리 그림이 만불에 걸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표였던 홍대 교수 자리는 그 친구 보다는 그림 실력이 떨어졌던 친구에게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그 뛰어나던 실력 대신에, 그 친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미술 평론 같은 것을 하고 살고 있구요.  고등학교 때 권투를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남들은 돈 내고 권투를 배우러 다닐 때, 이 친구는 LAS 라는 프로 선수들만 관리하는 프로모션에서 운영하는 강남의 체육관에서 권투를 했습니다. 백년에 한번 날 정도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요. 179 cm 에 52 kg 이었는데, 스피드도 좋았고, 엄청난 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때문에 가끔 권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고3 봄에 정동 MBC 픅설링에서 동양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 전이 있었는데, 강홍원 인지? 박종팔 인지와 호주의 187 cm 신장의 마른 선구가 경기를 했는데, 키 큰 선수가 맞고 휘정거리다 KO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권투를 포기했습니다. 저도 권투를 좋아하고, 운동을 한다면 권투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기에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친구가 권투를 했다면 토마스 헌즈 이상의 선수가 되었을 겁니다. 맺집도 아주 좋았거든요. 이런 정도의 재능을 쉽게 포기하고, 지금은 저와 가까운 곳에서 운동화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꽤 많은 선배들에게 "너는 뭔가 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어중간한 여러 재능을 가진 저는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국민학교 때, 스케이트 학교 대표를 뽑는 대회가 있었는데, 결승에서 저와 원형이란 아이가 붙었는데, 제가 더 빨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형이에게 대회 출전을 양보했습니다. 저는 스케이트를 배운 적도 없고, 그다지 많이 타보지도 않았습니다. 코너링도 제대로 못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운동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오기가 바라동해서 그냥 대충 열심히 하면 대개는 남들보다 뛰어나게 되었고, 그러면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공부도 잘할 수 있었을텐데,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죄스러울만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부 못한다는 소리 한번도 안듣고 살았습니다. 그림 못그리고, 피아노 못치는 것 빼고는 대부분의 분야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설교를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담임 목사님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도 어느 유명한 목사님 보다, 신학대학 교수 보다 더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치가 꿈이었고,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정작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업도 잘할 것 같았습니다. 사업을 성공할 요소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 삶은 사업의 성공보다는 실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 유일한 별명이 '팔방' 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팔방미인이라고 생각한 친구게 제게 붙여 준 별명이니, 제가 다방면에 재주가 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성공을 위해서 노력을 안한 사람은 아닌데, 준비를 안한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많은 재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돌고 돌아서, 지금은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 과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사람' 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낭비와 실패 후에도 아직까지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재능은 소중하지만, 재능으로 인해 성공할 확률 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뛰어난 재능은 헛된 꿈을 꾸게 하고, 사탄에 유혹에 취약하게 합니다. 주어지는 결과에도 감사 보다는 불평하게 됩니다. 노력을 덜하게 됨은 당연하구요. 타고 난 재능을 가지고, 큰소리치며, 뽐내며 살다 간다면, 부자로 태어나서, 남 돌아보지 않고, 부자로 살다 간 사람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겁니다. 재능도 감사하며, 자신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 쓰고 가야합니다. 그러니, 재능을 가진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 보다, 재능이 없이 태어난 것이 훨씬 더 삶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정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 입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사고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걱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혹시 우연히 태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님이 성관계를 갖는 과정에 어쩌다 보니, 난자와 정자가 결합이 되어, 그 결과물로 내가 만들어졌다고요? 당연히 아니죠. 여러분이 세상에 오기 위해 필요한 그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우연히 이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자리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여러분이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본향에서도 우리의 혼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때론 감정적이기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더러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강권적으로 '상' 같은 삶이 주어지기도 하고, '벌' 같은 삶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삶도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넓은 선택의 폭이 주어졌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좁은 선택의 폭이,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건부의 선택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출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친구와 싸운 것도, 선생님에게 혼난 것도, 부모님께 야단맞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잘못한 결과로 주어진 것일 수도 있고, 조심하라는 경고로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제가 말쓷드리는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세상에 우연은 없다." 라는 말이불교나 그리이스 철학의 ;인과론;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불교는 어렴풋이 알고, 그리이스 철학은 그래도 전공한 분야여서 조금은 알기에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인과론을 세상의 법칙으ㅏ 관점에서 보다,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일대일 관계의 관점으로 적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세상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보다 "세상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로 표현합니다. 

출근 길에 어디선가 돌이 튀어서 차 앞유리에 금이 갔다면,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요즘 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야겠네." "정말 재수 없네. 유리 갈아낄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어쩌란 말야.", "내가 요즘 운전을 부주의하게 하고 있나? 조심해야겠네.", "이 일로 액땜했으니, 좋은 일이 있으려나?" ... 그러면 과연 이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요? 잘못된 운전에 대한 작은 징계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더 힘들게 만들어서 잘못 가고 있는 길을 막으려는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격게 될 큰 사고를 예방하라고 주어지는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 현상으로 인해 다양한 결과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앞 차에서 튄 돌이라고 판단하고 쫒아가서 차를 세우고 시비를 가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을 겁니다. 추월하려다가 큰 사고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시비를 가리는 중에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잇습니다. 하루 종일 재수 없다고 생각하며 찌푸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유리를 갈아끼울 때까지, 유리 갈아끼운 카드 대금 다 갚을 때까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이유가 있겠지? 징계여도 감사할 일이고, 경고여도 감사할 일이고, 액땜이어도 감사할 일이지. 라고 생각하며,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든든함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생기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는 여러차례 말씀드렸기에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 "안겪어 보고 선물이니, 축복이니 그런 말 하지 말라." 고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장애인 형제, 장애인 자녀, 장애인 부모 모시고 사는 것보다,  공주병 걸린 마누라 모시고 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힘든 일, 비굴한 일 가리지 않고 일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와이프에게 다른 잘나가는 남편과 비교당하며 잔소리 들어가며, 매일 매일을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가장이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또 무능한  폭력 남편과 살 수 밖에 없는 삶은 어떨까요?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이 상황들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삶일 수 있습니다. 잘못 된 선택을 반성하며 참고,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도 성공적인 삶일 수 있구요. 쉽지는 않겠지만, 결단을 내려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던 자신을 극도로 힘들게 하는 그 조건은우리로 하여금 열심을 낼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가장 최악의 삶이 일하지 않고도ㅡ 걱정 없이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니까요. 

어린 자식을 잃는 불행한 일이 생겼는데, 이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죽은 자식 본인 때문앨까요? 아니면 부모 때문일까요? 자식의 죽음이 불행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제 관점에서 본다면, 자식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세상에 우연은 없으므로, '실수' 때문에 죽지는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이외에 어떤 다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의 죽음은 자식 때문이거나, 부모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자식이 죽음을 당할 만큼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결국은 부모 때문에 죽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부모 때문에 죽음을 맞은 그 죽음은 자식 본인ㅇ네게는 비극도, 불행도, 실패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꽤 큰 크레딧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얼마 전에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여 수백명의 학생들이 죽음을 당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죽은 학생의 부모나, 또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죽음이 어떤 회사 때문이라고, 혹은 선장 때문이라고, 또는 정부나 정치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오랜 시위를 했고, 결국 적당한 보상과 사과를 받고 끝을 냈습니다. 제 자식이 그 중에 있었다면, 저도 어떻게 했을 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는 제 잘못을 살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니, 불만을 토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런 일이 재발되면 안되니, 처벌은 불가피하겠지만, 저는 처벌을 원치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빠 때문에 먼저 하늘나라에 먼저 갔으니, 더 정신차리고 잘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오 열심이 살기를 다짐했을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자식의 모습은 웃는 모습으로 느껴질 것이구요. 바라기는 부모들 뿐 아니라, 그 사고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아니 사고에 대해 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살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병상에서 전혀 거동을 못하며 삶을 유지하고 있는 부모의 삶은 누구 때문일까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물론 부모 본인의 잘못 때문에 징계로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혹시 이전에 잘나가던 분이라면,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무상, 이라던지,그 회에 어떤 것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힘든 시간을 연명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의 이런 힘든 시간은 자식들 때문이고,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세상에는,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 노력한 것보다 작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 아니 묘미가 있는 것이 그 결과가 언제 나오냐는 것입니다. 하루를 노력해도 바로 결과가 나오는 일도 있고, 일주일 정도 해야 결과가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1~2년 열심히 해야 하는 일도 있고, 5~10년 열심히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가치있는 일은 1만 시간 일해야 얻을 수 있다고 하신 것 같은데, 저도 동의합니다. 하루에 5시간 씩 해도 10년을 해야 하는거죠. 어떤 힘들고, 큰 목표는 30년, 50년을 해야 결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1년 해야 결과가 나올 일을 한달 노력하고 포기할 수도 있고, 10년 해야 할 일을 1년 하고, 또는 안타깝게도 9년 하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한달을 해보니 내게 맞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일년을 해보고 깨달아서 바꿀 수도 있구요. 이런 전환은 우리 삶에 해가 되지도 않고, 실이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가 두려워서,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낸가 들인 노력이 한조각도 없어지지 않고, 다 내 삶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면, 결과를 두려워해서 포기하는 일은 없겠죠? 물론 우리 앞에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갈림길이 주어집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겠죠? 불법적인 길은 아닌가? 노력은 조금하고, 결과는 크게 보려는 길은 아닌가? 잠깐 노력하고, 평생 편안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나? 이 길을 걸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저는 늘 이렇게 주장합니다. 내 능력을, 내 인건비를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다구요. 의대 갈 정도로 공부 잘하고, 10년 동안 1백만불 수업료내고,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의가 되었다면, 1년 연봉 25~30만불 받는 것이 정당할 겁니다. 그 사람이 가진 가치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아이비리그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수익 많이 내는 좋은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 성과급 포함해서 1년에 1백만불 씩 벌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축하를 받을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자신의 가치가 백만불 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위험해 집니다.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결과를 얻고 있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맞을 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유혹합니다. "너는 지금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고, 엄청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야. 그러니 너는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어서 유혹하죠. "너는 조금은 즐겨도 돼. 비싼 시계 몇개 있어도 되고, 좋은 차 타도 돼."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사탄의 이러한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세상에 "재수' 와 '운'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좋은 일들이 내 노력의 결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안좋은 일들은 내가 잘못 했거나,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합니다. 내가 별로 잘한 것이 없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정신 바짝 차리고, 나를 살펴야 합니다. 나는 이정도는 되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내게 정신차리고 노력하라는 싸인이 온 거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그것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로 주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도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노력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던, 노력한 결과가 나왔던 간에 우리는 경계하고, 근신해야 합니다. 아! 한가지가 더 있을 수 있겠네요. 너무 힘든 상황 속에서 노력하는데, 지쳐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게 하시려고 주시는 격려의 선물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먼저, 감사하고, 다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근신하며 더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재수가 없다거나,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말들을 하시는 분들은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결과를 기대하는 분들이 자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결과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은 보통 안좋은 결과가 나오면, 내가 어떤 부분을 잘못했나?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조금 더 했었어야 했어. 등의 반을이 나올 겁니다. 노력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복권을 사고 기대하거나, 카지노에 가서 잭팟이 터지길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이 재수가 없거나, 운이 없다는 말일 겁니다. 또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적발될 경우에도 재수가 없었다라고 할겁니다. 아주 가끔은 노력 끝에 결과를 보고도,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해보고 싶은 겸손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나온 결과를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꼭 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세상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재수 없어서 불구가 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가족을 잃지도 않고, 돈을 잃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결과는 나의 올무가 되어 나의 삶을 실패로 이끌어 갈겁니다. 그러니, 내게 다가오는 좋은 결과를 정신차리고 바라봐야 합니다. 내게 다가오는 안좋은 결과를 재수가 없다거나,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내 어떤 노력도 없어지지 않고, 결과로 주어진다는 것을요. 

이세상의 삶에 국한되어 생각한다면,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불행을 당하기 더 쉽습니다. 살신성인 하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세상 삶을 잘살펴 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세상 삶이 끝이 아닐 것 같고, 이세상 삶을 심판하고, 또 기회가 주어지는 어떤 것이 있어야 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4편을 여기에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거듭 양해를 구하지만, 제 시력이 많이 안좋아져서, 제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타도 있고, 중복된 내용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문맥을 맞추고, 오타를 수정하는 시간이 몇배가 걸리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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