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2일 일요일

저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5)

5장은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다루려 합니다. 저의 하나님,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어,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운영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적 본성 뿐 아니라, 신성을 부여하셨습니다. 당신의 뜻에 맞게 세상을 운영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영'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영'을 통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 '영'은 하나님이 왜 세상을 만드셨는지?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강제하시려면 로봇을 통해 세상을 운영하셨겠죠? 로봇을 통해 세상을 운영하시려 하셨다면, 아예 이세상을 만드시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사람의 성향이나, 관심에 따라 영의 소리를 잘들을 수 도 있고, 못들 ㄴ수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에 대해 다 알 수 없습니다. 운영하시는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을 통해 이에 대해, 필요한 만큼만 알려주십니다.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돐을 막 지난 아이에게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설명하는 것 보다 더 어이 없는 일일테니까요. 비록 그 아이가 그 원리가 적용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원리를 알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우주와 세상의 창조, 여기에서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이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왜?' '무엇을 위해서?'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셨냐는 것입니다. 인간이 운영할 수 있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가지 더한다면,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감히 말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영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때로는 명령하시는 것도  "내가 너희를 위해 만든 이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라!"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쉬울까요? 쉽지 않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육체가 가진 부정적인 본성, 욕심 때문에 인간은 창조주의 요구를 외면하고 편안과 쾌락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의 삶을 평가해서 상과 벌을 내리십니다.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는 보상이 주어지고, 세상을 추하게, 어둡게 만든 사람에게는 징계와 형벌이 주어집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벌을 내리실까 하구요. 예를 들어, 한 반에 60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할 때, 저라면 열명 중 한명 꼴인 5~6명에게 상을 내리고, 20% 정도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70%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야단과 격려 정도를 내릴 것 같습니다. 말 안듣는 아이들,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그렇게 많을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보면 훨씬 적은 수의 아이들이 말을 안듣는 것처럼 보일겁니다. 하지만  마음 속까지 살펴본다면, 절반 넘는 아이들, 어쩌면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벌을 내려야 할 상황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정도의 잣대를 가지고 계실까? 혹시 전교 1등에게만 상을 내리시는 것은 아닐까? 상 받을 사람만 빼고는 다 벌을 내리시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제가 희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뽑힌다고 다른 사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뽑힌다고 내가 떨어지지도 않죠. 그리고 희망을 가지게 하는 다른 한 요소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그다지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칭조주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 알기도 쉽지 않고, 또 알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핑계로 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성심을 다해서 조금만 창조주가 원하시는 일을 하면 상받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커트라인이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임을 알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보통 사람은 평생 몇번도 해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큰맘먹고,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신경 쓰면 상받을 커트라인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한 '영'이 주어졌고, 하나님의 '영'은 모두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를 듣는 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또 자기 이익을 위해 이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고, 사람들의 삶을 살펴서 인도해줄 별도의 수단을 두셨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물론 집단과 사회가 만들어 지면서, 사람들에게 급한 것은 재판관 역할을 하는 족장, 왕 등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삶과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을 대신해 판단해 줄, 그리고 판단한 것을 집행할 수 있는 법과 권력이 필요했습니다.  . 어떤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뜻이 잘 반영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전문적으로 알아내어 전해줄 제사장, 신관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원시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국가나 권력과 관계 없이, 그 너머에 있는 창조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관점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를 만들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습니다. 또다른 한가지의 원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자연 현상이나, 재해를 경험하고, 두려움으로 인해 창조주를 찾게 되고, 뜻을 같이하여 창조주께 비는 의식을 만든 것입니다. 확신할 수 는 없지만, 이것도 창조주의 계획에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하나님의 세상 창조에서 꽤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통제해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법을 만들게 하셨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그들이 이세상에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하기 위해 종교가 만들어지게 하셨습니다. 창조주와의 소통이 원활한 사람들은 종교나, 특별한 제도 없이도,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고,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한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천지신명께 간구하는 등의 형태로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안되거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소통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선지자, 제사장들이 나오고, 철학자들이 나오고, 무당, 주술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 사이비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저의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사람들을 종교적인 사람과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이분법으로 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종교적인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까지 모든 사람이 연속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종교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결국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겁니다.  몰론 많이 깨닫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상받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창조주도 모르고, 그의 뜻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상받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종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지도나 네비게이션이 될 수 있습니다. 지도나 네비게이션 없이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낭비하는 삶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쏟을 것이 아니라, 당면한 세계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세상이 끝이 아니고, 이세상 삶에 대한  심판과 상벌이 주어진다고 말해야 합니다. 셋째는 이세상을 만들고 운영하는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넷째는 정의롭게 살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제대로 된 종교입니다. 몰론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교리가 있고, 시설이 있고, 교인이 있으면 종교가 됩니다. 세상은 그 종죠가 제대로 된 종교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이 없고,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사이비 라든지, 이단 이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이비란 표현은 종교를 흉내내거사, 종교를 가장한 것을 말하니 종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주의하면 큰 피해를 받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단'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을 하고 있고, 저도 할말이 있습니다.  

   보통 정통이 있으니까, 이단 이란 말이 나왔겠죠? 정통 교리와 다른 교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성경에 대해 다르게 해석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정해 놓은 정통 교리와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죠. 특히 종교인의 입장에서요. 화형까ㅑ지 시켰죠?  과거의 기독교를 보며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보통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나오면, 내 생각이나 주장을 돌아보게 되고, 자기 생각을 더 강화하는 기회로 삼게 되고, 가끔은 내 생각을 수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특기 제가 경험한 기독교는요. 기독교의 가장 근본 교리인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에 대해 저는 부정합니다. 왜 그러냐구요? 성경을 읽어보면 알 수 있죠.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수없이 많이 언급하셨는데, 그 어디에도 내가 하나님이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늘 아버지 라고 하셨죠. 삼위가 일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오직 한 곳, 요한복음 10장30절에서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말씀하신 구절 뿐입니다. 같은 내용은 공관복음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애매한 구절 하나를 근거 삼아 기독교는 이천년 넘게 예수님이 하나님 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예수님의 '재림설' 도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매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여 승천한다고 쓰여 있고, 다른 복음서와 사도행전 1장에도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당 속에 묻혀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깨어나서, 하늘로 올라가 심판을 받는다는  교리를 주장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지 이천년이 된 지금은 어떻게 주장하고 있을까요? 거의 모든 목회자들은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 앞으로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설교합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목회자에게 "그러면 예수님 이전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갔고, 예수님 이후 사람들은 아무도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땅 속에 잠들어 있는 건가요? " 라고 물으면 고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장례 예)배를 드리면 다 소천하셨다고 하죠. 하나님 나라에 가셔서 하나님과 함께 우리를 보고 계실거라고 하구요. 가장 교묘한 대답이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시겠지만, 우리 영혼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갑니다." 일겁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의미가 하나도 없는 재림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서 양심에 찔리는 대답을 할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확실한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나사로도 죽어 하늘나라에 가고, 부자도 죽어 하늘나라에 갔다구요. 또 예수님은 자기 우편의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우리 영혼은 땅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떤 목사도 강단에서 하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목사가 이런 소신을 밝히면 그 교회는 이단교회가 되고,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단 교인이 됩니다. 입방아에 오르고, 손가락질 당하고,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런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 원하는 크리스찬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입니다. 나와 주장이 다른 사람들, 그들의 주장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이를 발전과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공자가 논어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단을 공격하는 데에 노력을 쏟지 말고, 자기 주장을 깊게하는 데에 시간을 쏟으라구요.  내가 속한 교단은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교회는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교리들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떤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런 것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들 하십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신경쓰는 시간에,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바라기는 그런 것 생각 안하신다면, 남의 생각이나, 남의 교회 교리를 가지고 비난하고, 공격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남의 눈 속의 티는 보고,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오랜 동안 우리 곁에 두신  종교는 힌두교, 유태교, 불교, 유교, 그리스 철학,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창조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철학이나, 사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서도 인간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창주주 하나님을 알게 된 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통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다하고 살지 못합니다. 다하기는 커녕게으름도 피고, 불순종도 합니다. 저는 저만의 교리와 저만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분들이 자신만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종교를 믿고, 같은 교회를 다닌다 하더라도 모두의 신앙은 다릅니다. 결론은 우리 모두는 남의 종교와 남의 신앙에 대해 존중해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존중합니다.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다른 종교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위에 언급된 모든 종교가 같은 말을 한다는 겁니다. 

제가 아는 대로 이 종교들이 강조하는 것에 대해 써보면, 흰두교는 성실한 삶을 강조합니다. 비폭력, 진실, 자비, 나눔의 삶이죠. 불교에서는 자비를 베풀라고 하고, 깨어있어서 지혜롭게 살라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은 이성과 관념을 중시하는데, 이것들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심어준 근본이고, 이에 따라 절제하고, 중용을 지키며, 지혜롭게 살라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인, 의, 예, 지를 강조합니다. 어질고, 정의롭게, 예를 지키며, 지헤롭게 해야 할 일을 가리며 살라고 합니다. 유태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정의롭게, 자비롭게,  겸손하게 살라고 합니다. 아울러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슬람교는 신에 대한 헌신, 정직, 자선 그리고 겸손을 강조합니다. 특히 적극적인 자선을 강조합니다. 왜 이들 종교가 다 같은 말을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다를 리가 없겠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항상 말씀합니다. 종교적인 사람이 되시라구요. 종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려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말해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종교들은 각기 자기만의 의식과 절차, 제도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 두가지로 우리를 돕습니다. 첫째는  우리와 하나님의 소통을 계속되게 이어주고, 소통의 양과 질을 높여줍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유혹에 빠지기 쉽고,  또 바쁘게 살면서 수많은 상황 변화를 겪고, 또 감정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우리를 Refresh 해주고, 새로운 힘을 갖게해줄 의식들이 필요합니다. 교육을 통해 더 확실한 창조주의 의지를 알게 해줍니다. 둘째는 창조주의 뜻대로 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선한 일,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종교는 방법을 만들어서 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쉽게 해줍니다. 세상에 대해 봉사하는 연습을 시키고, 봉사할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시는 분들에게 종교를 가지시기를, 함께ㅔ 하시길 권합니다.

종교 의식에 대해 생각하면, 저는 회교도들이 하루에 다섯번 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하루에 다섯번 씩이나 창조주에게 감사를 드리고, 창조주의 뜻대로 살려고 자신을 살핀다면, 그들은 분명히 훨씬 더 창조주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을 겁니다.무함마드는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생각을 해냈을까? 보통 기독교인들도 하루에 다섯번 정도는 기도하겠죠? 식사기도 세번은 할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 잠자기 전에 정도는 할 것 같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다섯번 한다고 하기 너무 부끄러운 수준인 것 같긴 하지만, 그것이라도 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보통 자리를 깔고 무릎을 끓고 한번에 5~10분 정도는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더우기 지금에 와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장애받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이미 만들었습니다. 제가 근처에서 보는 작은 비지니스에서도 피고용인이 기도하는 것을 고용주가 막지 못하더군요. 아마도 이슬람교는 점점 더 그 교세를 넓여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현상도 많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현상 중 대부분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죠. 우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있고, 끊임 없이 싸우는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이런 큰 분쟁 말고도, 종교 지도자들이 개인의 야욕을 위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창조주와 종교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 종교를 멀리하시는 분들에게 아마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준 종교 중에서 너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종교를 찾는 것, 이 중요한 결정을 위해 그정도의 시간과 노력도 투자하지 못한다면 너는 자격이 없다." 쉽지는 않습니다. 신중해야 하죠. 하지만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통해서도 하나님으 음성을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종교에 대한 글을 마치기 전에 저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본받아, 그의 뜻대로 사는 크리스찬이 되길 원하지만,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치나, 수많은 선행을 한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한 중심 사상이 하나님의 뜻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배타성과 독선에 함께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종교라면, 창조주의 뜻을 안다면, 독선적이고 배타적일 수 없습니다. 이름을 붙인다면 저는 '예수교' 보다는 '하나님교' 의 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종교에 대해 마치기 전에 저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수님과 종교의 관계를 언급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 즉,"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을 바꾸시길 원하셨습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바뀐 기준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준비된 메신저이셨습니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기준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 알고있는 기준을 제대로 알려주신 것이죠. 죄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구원의 메세지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가르치시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자 한명을 사용하셔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아들을 이땅에 보내셔서,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만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예수님의 뜻도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 뜻, 예수님의 혜택 아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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