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만에 뉴욕시에 소개령이 내렸고, 제가 살고있는 뉴저지 북동부 지역도 바람과 홍수주의보가 내려졌었습니다. 특히 제가 살고있는 집은 홍수지역이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주일 이른 아침부터 영향권에 들 것이었기에, 새벽 4시까지 기상 채널과 갖가지 뉴스를 보며, 밖에 내리는 빗줄기와 바닥 상태를 살피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빗줄기도 그다지 굵지 않았고, 낮은 지역의 도로면에도 물이 고이지 않았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전화소리와 와이프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라운드 레벨과 반지하로 구성되어 있는 아랫층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랫층에 내려가 보니,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이 아니라, 집 주위가 이미 온통 물에 잠겼기 때문에 온갖 틈새로 물이 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랫층은 저희가 사용하지 않고, 간간히 써브리스를 주고 있는데, 일주일 간 지내기로 하고 들어 온 6명의 대가족이 대피를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잠에서 깨워 윗층으로 올려보내며, 저는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저희 집 주변 도로가 이미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차장에는 저희 차 두대와 손님 차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가장 뒷쪽에 있던 제 차는 이미 바퀴의 1/4 정도가 물에 잠겨있었습니다. 드라이브웨이와 도로가 만나는 곳이 가장 지면이 낮은 곳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무릎까지 잠긴 상태였습니다. 탈출을 감행하면 성공할 확률도 있어 보였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차 세대를 드라이브웨이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움직이고, 아랫층의 짐들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세명과 여자 두명이 한시간 가까이 짐을 윗층으로 옮겼습니다. 이미 아랫층은 발목까지 물에 잠겼고, 지금 밖의 수면을 고려할 때, 잠깐 사이에 허리까지 물에 잠길 것이 확실했습니다. 전원을 차단하기 위해 아들의 도움으로 아울렛과 등을 확인하며, 감전의 위험 속에서 부분적으로 전원을 차단했습니다. 물은 무섭게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무섭다기 보다는 마음 아프게 차올랐습니다. 아랫층을 포기하고, 윗층으로 올라오는 문을 닫으면서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가 침수되기까지 10센티미터 정도 남았습니다. 아랫층 손님 남자와 비를 맞으며 차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다른 지역의 예를 보더라도, 높은 지역의 물이 낮은 지역으로 몰리기 때문에 비가 그친 후에 홍수의 위험은 더 컸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보니 10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예보를 종합해볼 때, 최소한 3시까지는 물이 더 불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시간이 빨리 가주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모든 경고에 안일하게 대처한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집이 잠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차량이라도 조금 높은 곳에 세워놓았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였습니다. 전화통화 중에 11시부터 2시까지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정보가 들려왔습니다. 마음이 더 심란해져서 밖으로 나왔는데,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우리 집은 고립된 상태인데, 우리 집 주변이 우리 타운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었으므로 혹시 집 전체가 물에 잠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이때 아마도 제 표정은 심각하게 궂어졌을 것입니다. 애써 편안한 모습을 보이며 쓸데 없이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윗층에서 두가정이 피난민처럼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며, '기도' 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기도가 잘 되지 않았었습니다. 전원을 차단하며, 제발 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차가 물에 잠기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걱정일 뿐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기도했습니다. 아주 조금 평안이 몰려왔습니다. 11시가 넘었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물은 불지 않았습니다. 집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 10분에 한번씩 밖으로 나와서 확인을 했습니다. 12시가 가까와 지는데, 수위가 5센티미터 정도 내려갔습니다. 뉴스에서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뉴저지 주지사가 나와서 1시에는 뉴저지턴파이크를 개통한다고 비교적 밝게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물론 감사의 기도를 드렸죠! 수위가 점점 줄어 3시 쯤에는 차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동네 사람들이 나와있었는데, 저희 집을 포함한 세 집만 물에 잠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시간을 더 기다려서 아랫층의 썸펌프를 가동시켰습니다. 아랫층을 욕조로 만들었던 물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친구들과 통화하는 데, 친구 아이들이 태풍이 너무 싱겁게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랫층에 손님들은 옆타운에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자신들의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사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 간 자리에서 과연 얼마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을까? 십여명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수많은 가옥이 물에 잠겼답니다. 저희 집은 1/3 정도가 물에 잠겼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아랫층은 외관적으론 참담했지만, 제겐 감사로 보였습니다. 미국 생활 9년째,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보며, 저는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연 재해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허리케인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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