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인연, 그 시작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불교에서는 인연을 강조한다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나다 옷깃을 스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 있어야 한답니다. 지극히 불교적이지만, 이 말은 기독교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만남도 내 의지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만난다고 할 때, 그 만남의 순간까지는 기독교의 예정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보면 전생의 인연으로 설명하거나, 선 또는 악을 쌓음에 의한 결과로 설명해도 좋겠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은 만남을 '악연'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떠올리다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오래 전에 다른 누구에 의해 정해진 길로 가고있는 듯한 무기력함, 씁슬함이 느껴져서 일 것입니다. 어떤 만남이 시작될 때부터 안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있다면, 제 선택과 노력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슬픈 일이죠? 제가 중학교 때, 예정론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당황' 을 떠오르게 합니다.

인연에 의한 만남이던, 예정에 의한 만남이던 간에, 주어진(정해진) 것은 오직 시작하는 상황에서의 조건에 불과합니다. 만남 이후의 모든 결과는 우리의 의지와 행위에 달려있습니다. 욕심같지만 저는 모든 만남을 좋은 만남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있었던 수많은 만남을 떠올려봅니다. 아련히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왠지 이 밤에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기억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만남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우울했던, 상처를 주었던 모든 만남들에도 감사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삶 동안 이루어질 모든 만남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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