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묘하게 자살에 대해 많이 다루게 되네요. 어느날 같이 일하시는 분이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고 해서, 바로 다운받아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의 첫 느낌은 "참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구나!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였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감독이 누구인지? 보지도 않았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사로잡은 것은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들 이었습니다. 제목이 우아한 거짓말이니 만치, 대단한 말잔치가 있었습니다. 대사를 제대로 들어보려고, 몇일 뒤에 다시 한번 더 봤을 정도 였습니다. 영화의 대사 이외에, 제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영화 속에, 잘난 사람, 멋있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돈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악당 조차도 한명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두 딸. 남편과 사별을 하고, 수퍼마켓에서 두부를 판촉하는 직업을 가진, 적당히 생활력있고, 적당히 낭만적인(철부지 끼가 있는) 엄마. 한참 멋부릴 나이의 고등학생이지만, 속이 깊어서 엄마를 생각하는, 남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밴, 쿨한 언니 만지. 막내 답게 정이 많고, 여려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중학생 천지.
사건의 시작은 작고, 여린 천지 옆에, 소유욕이 아주 강한 화연이란 친구가 생기면서 부터였습니다. 화연은 천지와 절친인 것 처럼 하며, 천지를 다른 친구들로부터 격리시켰고, 은근히 천지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칭찬하기 보다는 헐뜻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한몫을 하여, 친구들은 한목소리로 천지를 조금 이상한 아이로, 따돌림을 받을만한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힘들게 '은따' 를 견디던 천지에게 잠깐 꿈같은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미라 라는 짝이 친구가 되어 준 것입니다. 둘은 마음껏 웃을 수 있었고, 짧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의 파국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닥쳐왔습니다. 미라의 아빠가 연애를 하는 상대가 천지의 엄마라는 것을 미라가 알게 된 것입니다. 가정을 파탄에 빠트리고, 언니인 미란이와 자기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천지의 엄마인 것을 알게 된 미라는 천지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미라가 천지와 절교하기 위해 한 말은 천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살을 결심한 천지는 다섯장의 쪽지 유서를 털실 뭉치에 넣어서 각사람에게 남깁니다. 만약 극중이 아니고, 현실이었다면 아마도 천지는 자신의 유서가 자신의 죽음보다 먼저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의 순간은 빨리 다가왔습니다. 천지는 화연이가 선물해 달라고 한, 받으면 쓰지도 않을 MP3 를 엄마에게 사달라고 합니다. 엄마는 "왜?" 라고 물을 수 밖에 없고, 언니는 엄마의 사정을 고려해서 "핸드폰 쓰지, 누가 MP3 쓰냐?" 고 합니다. 막내 딸의 부탁을 흘려들으며 출근한 엄마가 막내 딸이 안쓰러워서 MP3 를 사려는 그 시간에 천지는 집에서 목을 맵니다.
딸을 화장하고 돌아서며 엄마는 먼저 간 남편에게 독백을 합니다. "여보! 천지 만났죠? 잘 해줘야 해요. 그리고 '왜 왔냐고?' 묻지 마세요!" 가끔은 이유를 묻는 질문이 얼마나 상대방을 난처하게 할 수 있는지? 를 알게 된 엄마의 부탁이고, "왜?" 냐고 물어서 딸을 죽인 것으로 여겨져 후회하는 엄마의 독백이죠.
학교에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엄마! 나 오늘 하루만 학교 안가면 안돼?" 라고 묻는 딸에게, 엄마는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면 안될까? 정 견디기 힘들면 조퇴하고..." 라고 말합니다. 저도 저의 자식들에게 여러번 했던 그 대사 그대로 입니다.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자살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딸을 사지로 몰아넣은 그 대사를 우리는 쉽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언니 만지는 천지가 왜 자살을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동생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생의 친구들을 만나봅니다. 화연을 만나서는 화연이 때문에 천지가 힘들어 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미라를 만나게 되는데, 미라가 자신의 절친인 미란이의 동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거의 같은 상황, 아니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미란이 동생 미라를 살뜰하게 돌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천지에게 했던 것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깁니다.
미라는 천지와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자기가 천지 엄마를 잘못 판단해서 천지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미라가 천지에게 결별을 하며 화연이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며 말합니다. "걘 누구하나 죽어야 정신을 차릴 애야." 미라의 말을 듣고 멈칫했던 천지를 떠올리며, 그때 천지가 자살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미라의 눈물.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천지가 죽고 이사한 아파트, 옆집에 머리를 길게 기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살았습니다. 목뒤에 화상으로 인한 큰 흉터가 있어서 어릴 때, 반 아이들에게 '괴물' 이라고 놀림을 받으며 살아온, 그래서 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학교를 나온 청년이었습니다. 따돌림을 경험한 청년과 천지는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만나서 가끔 대화를 나누었던 사이였습니다. 나중에 만지가 알게 된 것이지만, 천지는 청년에게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도 했었고, 또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지의 죽음을 알게 된 청년도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습니다.
엄마는 이사한 아파트 바로 앞에 화연이네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천지가 짜장면을 싫어하게 된 그 원인이 된 화연네 중국 집에서, 엄마는 천지 때문에 잘먹지 못했던 짜장면을 시켜 먹습니다. 그리고는 괘씸한 마음과 아쉬움이 합쳐져서 산 MP3 를 화연이에게 전해달라며 화연의 엄마에게 줍니다. 애도의 말과 함께 사과를 하려는 화연 엄마의 말을 천지 엄마가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꽤 여운이 남는 말을 던집니다. "사과하지 마세요 ! 사과를 받을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에게, 말로만 하는 사과는 자신이 숨을 구멍을 파는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는 말하겠지. 나는 사과했어 ! 저 여편네가 안받았지 !"
화연은 천지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합니다. 조금은 위태로와 보이는 모습으로 방황하는 화연을 우연히 보게 된 만지는 화연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습니다. 친구 미란이 자매에게서 느꼈던 사랑의 영향도 있었겠죠? 그리고 만지는 꿈을 꿉니다. 자신과 엄마가 집을 향해 죽어라고 달려가는 꿈을. 눈물을 흘리면서 심장이 터져라고 뛰어서 도착한 집에는 천지가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언니와 엄마를 반기는 천지를 눈물과 함께 껴안습니다. 마치 천지의 죽음이 꿈이었던 것처럼 느끼며 말입니다. 꿈을 깨고 만지는 아마도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합니다. 꿈에 천지를 보았고, 안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물었죠. 천지는 어땠냐고? 천지가 활짝 웃고 있었다는 만지의 대답에 엄마가 말합니다. "잘 있나보네!"
영화 중에는 섬찍한 말들도 있었습니다. 천지가 죽은 후에, 같은 반 친구 아이 중에 하나가 말을 합니다. "그 정도로 죽어 ! 걔 원래 좀 이상한 애 아냐?" 말한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를 깨우쳐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지가 남긴 쪽지 유서에 있던 내용들을 써봅니다.
엄마에게 보낸 첫번째 유서 "멀리 가서 미안해요. 어디가나 밥 잘먹을께 !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약속해줘요. 안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사랑해요 엄마 !"
언니에게 보낸 두번째 유서 "언니에게, 항상 부러웠던 언니 ! 멀리 떠나도 잊으면 안돼 ! 사랑해 언니 !"
미라에게 보낸 세번째 유서 "그래도 용서하고 갈께, 처음 본 네 웃음을 기억하니까"
화연에게 보낸 네번째 유서 "그래도 용서는 하고 갈께, 너네 가족, 너는 남을 테니까,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나 때문에 그만 괴로워하기를..."
시간이 흘러서 볼 수 있게 도서관의 서고에 끼워놓은 화연에게 보낸 다섯번째 유서 "잘 지내고 있지? 지나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니지? 고마워 잘 견뎌줘서."
영화에 대해서나 제가 느낀 바에 대해 잘 써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지의 죽음을 통해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준 메세지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도 마찬가지구요.
끝으로 두가지는 짚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의 제목 '우아한 거짓말' 에 대한 것입니다. 화연이가 했던 것 처럼, 칭찬을 가장한 거짓말을 우아한 거짓말이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인지?
둘째는 자살을 미화하고 있는 영화는 아닌지? 천지도 아빠 옆으로 가서 잘있고, 만지는 더 열심히, 표현해가며 살기로 마음먹게 되고, 엄마도 좀더 사려깊게 주위를 챙기며 사는 사람이 되고, 화연이도, 미라도 많은 것을 깨닫고 잘살게 되는... 하지만 아니죠? "있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두고 두고 깊이 깨닫게 해주는 영화겠죠?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영화 '우아한 거짓말'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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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저도 우연하게 이 영화를 보았는데 여운이 길게 남아서 자료를 찾아 보다가 여기 들르게 되었어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 5번째 쪽지는 화연에게 보낸게 아니라
천지가 자신과 같은 사람 혹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쪽지로 생각됩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법 책 뒤에 남겨 놓았으니까요.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욱 슬퍼지는 그런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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