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일요일

운전하면서 1 - 6

오래 전에 운전하면서 느낀 점들을 몇가지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몇일 전에 우연히 제 블로그의 목록을 보다 보니 거의 읽으신 분들이 없더군요. 특히 세번째로 쓴 '운전하면서 3' 은 아무도 읽으신 분이 없으시더라구요. 매일 하는 운전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꽤 마음을 썼던 글이었고,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글들입니다. 그래서 잘쓴 글은 아니지만 한번 다시 게재해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전하면서 1

전에 굉장히 빨리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누구보다도 급하게 하고 다녔었습니다. 어쩌다 제게 차를 빌려주게 되는 경우에 사람들은 "내 차는 최고속도가 얼나마 나와?" 하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대구 톨게이트에서 서초 인터체인지까지 중간에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고도 2시간에 온적이 있고, 전주서부터는 1시간 30분이면 넉넉히 오곤 했습니다. 차들이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던 시절에도 가끔 시속 200km 를 넘게 운전하곤 했습니다. 가끔 밤늦게 인천 쪽을 다녀오게 되면 그 무섭다는 총알택시들을 추월하면서, 그들을 놀려가며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고속도로에서 저를 추월해간 차가 3대 밖에 없다고 확실히 기억할 정도로 미친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어느날 친한 선배 한분이 제게 심각하게 경고하셨던 적도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 운전을 카레이스 처럼 하는 사람이 셋 있는데, 그중에 두명은 차사고로 이미 죽었고, 저 혼자만 남았으니 정말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제 와이프는 제게 혹시 당신이 운전하다가 죽으면 주변에 사람들이 대부분 "운전을 그렇게 하고 다니더니 그럴줄 알았다!" 고 할 것이니, 특별히 더 조심하라고 항상 말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제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조금 빨리 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그러기에 운전하면서 새치기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차를 추월할 경우에도 제가 추월한 차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뒷차 보다는 앞차에 바짝붙여서 제가 리스크를 안는 방식으로 추월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빨리 가면서도 양심적이고, 매너도 있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30대 중반의 어느 날, 정확히 36살의 어느 날 ,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 라는 구절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운전하면서 새치기를 하면, 그 새치기로 인해 수십명 또는 수백명의 사람들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보다 빨리 간다는 것도 결국은 남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빨리 운전한 나는 남들의 시간을 엄청나게 도둑질한 죄를 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빨리 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천천히 달린다는 것은 제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규정속도를 생각하며 운전했고, 빨리 달리는 차들에게 길을 비켜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잠깐만 다른 생각을 하거나, 전화통화를 한다든지 하면 여지 없이 빨리 달리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가끔은 속도가 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찰이 앞에 있어도 놀라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속도로 달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빨리 달리며 남의 시간을 도둑질하던 10 년 정도의 시간 동안 2 년에 한번 꼴로 여지 없이 사고가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빨리 달리며 절약했다고 생각한 시간의 두배 쯤을 사고로 쓰게 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두배’ 라는 공식이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분이 알던 모르던 남에게 피해를 주면, 여러분은 두배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돌아올 것을 생각지 않고, 남을 위해 복을 빌면, 여러분이 빌어준 축복을 두배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베푼 사랑도 두배로 돌려받게 됩니다. 단, 돌려받을 것을 마음 속에 두고 베푼 사랑이나, 남들에게 보이려고 베푼 사랑은 이 공식에선 제외됩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나에게 돌려줄 것이 전혀 없는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쏟으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입니다.

운전하면서 2

운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어릴 적에 하루에 착한 일 한가지 씩 하기로 하고,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자고 하고 과연 얼마나 많은 이웃사랑을 했는지? 요즘 저로 하여금 이웃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운전입니다.

아침에 나오면서 다짐하면서 핸들을 잡습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양보를 해보자. 신경 바짝 써서 뒷차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양보를 해보자! 양보 받은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양보란 정말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다. 상대방이 나를 기억할 일도 없고, 내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랑을 베풀 뿐이다."

저는 운전을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운전이 없었다면 제가 남에게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또 있었을까요? 집에서 와이프가 하는 일을 나누어 하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은 아닙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구요. 그래서 바쁜 날일수록 더 다짐을 해봅니다. "내가 바빠도 양보하자! 내가 꿈지럭 거리다 늦은 것은 내 책임이다. 이것을 운전하면서 만회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잘못한 만큼 가서 정직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근신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양보하기 보다는, 양보를 받으셨던 분들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정말 간편하고도 귀중한 기회를 잃으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크리스챤으로서의 행동의 최고의 덕목은 ‘사려 깊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려 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주변에게 상처를 주기 쉽고, 자기도 모르는 잘못을 많이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운전에서도 이 ‘사려 깊음’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신호에 걸리고 시간이 지체됨으로 나에게 곱지 않은 시선과, 욕설(?) 을 보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로 인해 그사람은 하루를 망칠 수도 있고, 버터플라이 이펙트와 같이 큰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운전을 하면서 좀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을 운전한다고 불평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것에 감사합니다. 사랑을 베풀 기회가 더욱 많아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 운전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선물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주신 체력과 건강에도 특히 감사 드립니다. 아멘 "

운전하면서 3

오래 전 일입니다. 한국에서 ‘Tres Dias’ 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시절입니다. 한번은 첫날, 첫 로고스(강의)를 맡았는데, 서울에서 중요한 약속을 마치고 가느라 시간이 조금 늦었었습니다. Tres Dias 를 하는 장소는 강원도 화천이었습니다.

출발하면서는 잘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거의 강원도로 들어오면서 시간을 보니,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무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꼬불꼬불한 1차선의 산길이었는데, 달릴 수 있는 한 최대한 달렸습니다. 앞차가 있으면 무조건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을 이용하여 추월을 했습니다. 커브길이어서 건너편에서 오는 차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도 무모하게 추월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때문에 프로그램을 망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러 가는 거잖아요? 나는 무조건 달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다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였습니다. 잘한 일일까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다 보고,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사고 없이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 이십니다. 하찮은 피조물이지만 우리의 사소한 생각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 판단하시고, 때에 따라선 야단치시고, 때에 따라선 칭찬하십니다. 경우에 따라선 처벌을 미루시기도 하시고, 칭찬을 미루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이후로 다시는 이런 억지를 쓰는 기도를 하지도 않았고, 다시는 이렇게 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맞추어 사고 나지 않고 가게 해주신 하나님,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마음 쓰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로 하나님께 점수를 잃고, 걱정끼쳐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운전하면서 얼마나 양보를 하는지? 얼마나 남의 앞에 끼어드는지? 신호를 몇번 걸리는 지, 교통법규를 몇번 위반하는 지, 다 알고 계십니다. 보시면서 가끔은 즐기시고, 가끔은 화를 내시기도 하실 테지만, 어쨌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빠짐 없이 드러나고, 기록됩니다.

그래서 저는 운전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옆자리에 모시기 위해 노력합니다.

운전하면서 4

오늘은 출근하면서 남에게 양보할 타이밍을 두세번 놓쳤습니다. 그러면서 한 3~4마일 정도의 직선 2차선 길을 들어서면서 오늘은 빨리가려고 차선변경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시속 40마일 정도로 달려가는 출근길에 20~25마일로 달리는 할아버지 운전자가 앞서 가셨습니다. 제 앞의 몇차가 피해서 다른 차선으로 넘어갔고, 저는 천천히 할아버지 차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제 뒷차는 U-Hawl 의 차였기에 뒷차도 큰 부담을 느끼진 않을 듯 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가는데도 굉장히 갑갑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갑갑한 날들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죠. 하지만 갑갑한 날도 제게 주어진 날이니, 이럴 때는 천천히 갑갑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조금 참다가 결국 옆차선으로 가서 아주 잠깐 빨리 가봐도 여지 없이 신호에서 걸리고 맙니다. 제 앞을 가로막아 저를 짓누르는 듯한 차가 언제까지 저를 막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것보다 조금 더 저를 막아서 저를 힘들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저를 5분 이상 지체하게 하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계획한 길을 갈 것입니다. 상황이 저를 가로막고, 갑갑하게 하고, 절망을 느끼게 할지라도 고민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갈 것입니다. 저를 천천히 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또 저를 가로막은 사람이 저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일수도 있음을 알기에, 저를 가로막는 사람들과 상황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봐야 잠깐임을 알고 있고,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안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임도 안다. 그래서 운전석에 앉는 시간 마다 쉬는 마음으로 즐기며 갈 것입니다.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오늘 하루는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운전하면서 5

운전을 하면서 버릴 습관을, 행동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의 일입니다. 어떤 차의 뒷 유리창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 답답하지유? 지는 더 죽겠슈! “ 화를 낼 틈 없이,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이 제게 다른 운전자들을 생각해 보게 해주었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욕먹어 마땅한 운전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데도 잘 안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다 보면 저도 80살이 될 것이고, 누가 항상 라이드 해주지 않을 경우에는 불안하지만 차를 몰고 나올 것입니다. 급해서 잠깐 나온 길에서 수많은 욕을 먹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딸내미가 운전을 합니다. 딸의 운전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고, 속도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천천히 가는 초보운전자가 그다지 밉게 보이지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내 기준으로 다른 운전자를 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우리의 운전습관 중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운전하면서 우리는 흔히 다른 차의 운전자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그냥 차와 동일시 하는 어떤 물체로 보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자기 기준에 맞기 않게 운전하는 차가 있으면 운전자가 누구이냐에 관계 없이 "쟤  왜 저래! " 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저런 놈이 다있어?" 이라고도 말하곤 합니다. 10 여년전 일입니다. 한국에 있는 당시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는 저보다 한 살 적은 분이었는데, 굉장히 운전을 급하게 했습니다. 교회는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 앞을 난폭하게 끼어드는 차가 있어서, 어떤 놈인지 한번 보자는 화가 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는데, 그차의 운전자가 제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부목사였습니다. 민망해서 저도 얼른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그 목사님은 저의 화난 표정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도 한 두번 정도 그 차와 마주쳤고, 그러면서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의도적으로 차에 대고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차의 운전자를 생각하며 이야기 하려고 신경을 쓰곤 했습니다.

가능하면 차선을 왔다 갔다 하며 운전하지 말고, 조금 더 길게 늘어섰더라도 제 차선으로 가자! 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차선을 변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보통은 어떤 차가 이렇게 버벅대냐! 도저히 갈 수가 없네! 하면서 차선을 옮겼었습니다. 오늘 정말 안풀리네! 오늘 정말 재수 없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정 차선을 옮겨야 할때엔 “따라가기엔 너무 막히는데, 다행히 이쪽 차선으로 옮겨갈 수 있네!” 하며 옮깁니다. 차선을 옮겨가면서 조금 미안하면서, 동시에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모르는 어떤 사람을 욕하고, 원망하고, 재수가 없어서 이 차선을 탓지, 쯧쯧쯧… 하지 않고, 즐겁게 차선을 옮길 수 있습니다. 감사하며.

운전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함께 가며 하는 운전은…

운전하면서 6

준비된 자가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시간이 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최고의 시간과 도구라고 거듭 말했는데, 이 좋은 일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골리앗에게 죽음을 당한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도 여호와여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싸우러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참하게 죽음을 맞으며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좋은 일임에도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좋은 양보를 하려면, 먼저 사려 깊은 운전자가 되어야 하고, 신경을 써가며 계속적으로 양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양보를 받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양보했다고 기분이 좋을 지 모르지만, 뒷차의 운전자를 심히 불쾌하게 만들 것이고. 아주 여러 사람들이 피곤해 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사랑을 베풀었다고 만족해 하면, 아주 큰 착각이라 하겠습니다.

이 차, 저 차를 살피는 ‘사려 깊음’ 을 연습합시다! 그래서 운전할 때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주변 사람도 잘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하나, 하나 연습을 해봅시다!

운전이란 쉽지 않듯이, 운전하면서 하는 양보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남을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쉽게 기분 좋게 양보하는 운전자를 보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돈만 있으면,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아니 더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남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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