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4일 일요일

한동안 ...

얼마 전에 한국에서 네분의 누님과 형수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눈물겨운 방문이라 하겠습니다. 제일 큰 누님은 무려 팔십칠세로 그나마 정정하시기에 다녀가실 수 있었습니다. 다섯분 중 세분은 13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지 13년이 되었다는 것이죠.

제가 한국에 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고, 제가 쓸데 없이 고집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누님들은 생전에 저를 한국에서 볼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기에 저를 보는 마지막일 것이라는 비장함으로 저를 만나셨습니다.

참으로 가족이란 묘한 것인가 봅니다. 눈물로 포옹을 했지만, 만난 지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13년의 간격이 없어지더군요.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요? 쇼핑도 같이 하고, 맨해튼 관광도 같이 다녔습니다. 악착같이 다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돌아가신 형님을 제외하고, 저희 남매가 함께 찍는 마지막 사진이 될 것이 확실했기에.

다행스럽게도 공항 이별은 없었습니다. 제가 워낙 바쁜 일들이 많아서, 콜택시로 공항에 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콜택시에 짐을 억지로 싣느라, 정신 없이 이별을 했습니다. 이미 인생의 후반부로 접어들어간 누님들과 형수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는 건축업의 생리상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기에, 야간에 맨해튼 델리에 우유를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야간에 트럭을 몰고 맨해튼을 몇시간 동안 누비고 다녀야 하고, 주문서에 맞춰서 우유를 챙겨야 하고, 폴리스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씻고 자기도 바빴습니다. 낮시간에도 공사가 계속 있어서 바빴구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공장에서 전기톱에 손을 다쳤습니다. 비록 왼손이지만 엄지와 검지를 다쳐서 두툼하게 붕대를 감고 있다보니 타이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글 자판은 머리는 기억을 못하고 손만이 알고 있다보니, 오른손만으로 타이핑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친지 3주가 지났고, 오늘 처음으로 다친 검지 손가락의 붕대를 얇게 하고, 밴디지로 여민 뒤 자판에 손을 대보았습니다. 조금 쓰릿하고 뻐근하지만 칠만 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누님들이 다녀가시고, 손가락을 다치고... 이 두가지 사건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되는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환이 제 삶의 마지막 전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마지막 전환점을 맞으시거나, 아니면 다시는 전환점이 없어도 될 삶을 영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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