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3일 목요일

애굽의 삶, 광야의 삶 그리고 가나안의 삶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세곳의 ( The Three Stage of Life) 주어집니다.
애굽에서의 , 광야에서의 그리고 가나안에서의 삶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애굽 백성에게는 이런 삶이 주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원하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곳에서의 삶이 주어집니다.

먼저 애굽 삶의 특징은 힘든 노역과 쾌락 그리고 재앙으로 정리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주 힘든 노역 속에서도 애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내 아이는 태어나는 대로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핍박도 가해지고 있었습니다. (따지기 좋아 하시는 분들은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계실겁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부터 모세가 애굽으로 다시 들어가기 까지 80년간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였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아마도 애굽을 떠나지 못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브라함 때부터 주어진 그들의 고향,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있습니다.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가나안을 그려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굽을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당장 그들의 앞에 다가올 것은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기 때문일 겁니다. 광야 없이 가나안은 주어지지 않습니다.아이러니 것은 애굽 삶에서 주어지는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애굽 생활에서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 아니라, 재앙의 하나님인 것이죠. 하나님은 애굽에서 사는 우리를 보시고, 들으시며 우리가 애굽을 떠날 때까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는 세상의 권력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있을 같아 보이는 세상의 힘은 하나님의 자녀를 광야로 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보다 강한 하나님의 힘은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바로 광야의 삶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것을 선택하신 여러분은 광야로 내몰릴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이 우리를 광야로 몰고갑니다. 우리는 언제 떠나느냐 만을 선택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가지의 재앙이 이를 설명해 줍니다.

사실 열가지 재앙에 대한 부분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으면서 조금은 짜증이 나고 의문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재앙을 내리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 애굽의 모든 생축을 죽이는 재앙도 몇번에 걸쳐 내려집니다. 다섯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습니다. 그리고 일곱번째 재앙으로 들에 있는 애굽의 생축이 죽습니다. 그리고 열번째 재앙으로 모든 생축의 처음 것이 죽임을 당합니다.) 실제로 네번째 재앙인 파리의 재앙에서부터 바로는 완전히 항복합니다. 너희 백성은 애굽을 나가서 너희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하시고, 다음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열가지 재앙을 살펴보면 재앙이 모두 애굽의 각종 신들을 물리치는 재앙인 것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신들을 혼내주기 위해서 시간을 끄시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모든 재앙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한명도 남김 없이 떠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한명도 남김 없이 애굽을 떠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뜻이 담겨있는 성경구절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11:1  입니다. “내가 이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쫒아내리니 ( I will bring one more plague on Paraoh and on Egypt. After that, he will let you go from here, and when he does, he will drive you out completely).” 

우리 대부분은 거부할 없는 하나님의 힘으로 광야에 나왔습니다.
광야 라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물이 없고, 양식이 없고, 낮엔 덥고, 밤엔 춥고, 둘러싼 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고
광야의 삶의 특징은 시련과 인도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렸던 광야의 현상들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그런데 시련들을 열거하면서 보면 우린 금방 하나님의 섭리를 떠올릴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는 날부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물이 없으면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셨고, 쓴물을 먹을 있게 하셨습니다. 매일 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40년간 의복과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적을 만나도 여호와를 의지하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하나님의 놀랍고도 섬세한 배려 속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인도할 길을 미리 준비하시고 나서,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실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앙과 시련을 잘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재앙에는 항복하고 돌이켜야 하고, 시련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별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 삶에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 돌이키라는 것인지? 싸워서 극복하라는 것인지? 하나님이 구분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이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방법 중의 한가지는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는 겁니다. 내가 지금 계획하고 가고 있는 길이 돈을 쫒거나, 쾌락을 추구하거나,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애굽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고, 내게 닥치는 힘든 일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그것이 재앙인지 시련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자기 나름의 확실한 기준을 정하고 하나님께 여쭙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이렇게 결과가 나온다면 이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가던 길을 돌릴 것이고, 저렇게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극복해야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내겠습니다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위해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결혼하자 마자 바람을 피는 겁니다. 참으로 암담한 일이죠. 어떻게 할까요? 먼저 내가 이남자와 결혼했나? 돌아보는 겁니다. 남자의 돈을 보고 결혼했나? 멋있게 생겨서 남들이 부러워하라고 결혼했나 ? 남자 주변의 배경을 보고 결혼했나 ? 그랬다면 남편의 바람은 재앙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러면 결정을 위해서 하나님께 여쭙니다. 하나님 제가 결혼을 유지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노력 해보겠습니다. 노력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에 따라 방향을 결정하겠습니다. 만약 재앙 쪽으로, 이혼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난다면 이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잘못된 결혼을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고, 그리고 이를 돌이키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시련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들지만, 여자가 결혼을 이유가, 배우자를 사랑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면배우자를 돕기 위한 결혼이었다면 남편의 바람은 재앙이 아니라 시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화가 나겠죠! 내가 이런 마음으로 결혼을 해줬는데 감히 네가 바람을 !! 라고 괘씸한 생각이 들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의 마음으로 결혼한 여자에게는 시련이 상이고 기회라고 확신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과정에 벌어지는 모든 어려움은 모두가 우리 삶의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 그러면 이제 어떻게 광야의 시련을 극복할까요 ? 이스라엘 백성은몇일 치의 물을 준비했고, 한달 치의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의 준비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 수준의 준비로는 광야를 성공적으로 지날 없습니다. 이후로 그들이 한것은 계속되는 불평불만 이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일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우습게 생각할 모르는 우상은 사실 굉장히 위력적이고, 매력적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누구나 불안합니다. 그리고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고, 쾌락을 주는 것이 있다면 빠지지 않겠습니까? 의지할 존재인 우상을 만들어 놓고, 밤마다 앞에서 파티를 벌립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적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바로 이것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광야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쾌락과 즐거움은 없는 같습니다. 그러니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때문에 아무도 죽지 않았고, 양식이 없어서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그리고 춥거나 더워서 죽지도 않았습니다. 우상을 의지했을 그들은 죽기 시작합니다. 물론 전쟁을 통해서 많이 죽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한곳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4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 The Lord will fight for you, you need only to be still. )”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 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가만히 있지도 못해서 죽어갑니다. 광야를 지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지지 못하느니라. “ 말씀하십니다 1037절에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5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 가족, 애인, 취미, 오락, , 도박, 게임, 인터넷, TV, 드라마, 명예, 권력 등이 모두 우리의 우상이 있습니다.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우리로 하여금 광야를 지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적인 모든 것을 털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먹는 , 입는 , 모든 불안과 걱정들을 말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지지 못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시련을 극복하고 빨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갑니다. 만나야 시련이라면 빨리 맞닥드려서, 빨리 극복하고 다시는 같은 종류의 시련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주셨을까요? 얼마전에 블로그에 올린 중에 땅에 남겨두신 사람들이란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나안에 시험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서 이제 우리는 비로서 우리 삶의 결과를 얻을 있는 시험의 장으로 것입니다. 광야에서 얼만큼의 준비를 하고 시험장에 왔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에 들어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냥 묻어서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시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만히 있으면 빵점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섬기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논리가 적용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빵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자극하십니다. 수시로 우리를 채찍질 하십니다. 채찍질이 사랑이십니다. 채찍질의 은혜로 많이 사랑을 베풀면 됩니다.


지금 당신은 삶의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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