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4일 토요일

방언기도 못하시는 분께

일전에 방언기도 하시는 분께 쓴 글이 있었습니다. 오늘 그 글에 들어가보니 이백여 분께서 읽으셨더군요. 방언기도 하시는 분도 읽으셨겠지만, 방언기도 못하시거나, 안하시는 분도 읽으셨겠지요? 지금 쓰는 이 글은 방언기도 못하시는 분께 드리는 글입니다. 물론 방언기도 하시는 분이나, 방언기도 안하시는 분이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요즘은 제가 기도하는 모임에 거의 참석을 안하고 있습니다만, 아주 어린시절부터 수많은 기도모임에 수많은 시간을 쏟았었습니다. 제가 고등부 시절에 제가 기도모임을 인도하다가, 숫자를 세어보니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저와 제 1년 후배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방언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방언기도를 못하는 그 후배가 아주 깊은 실의에 빠져서 왜 자기만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하는지를 제게 물었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랑 나는 한국방언 하나보지?" 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저도 방언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그 후배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을 겁니다. 저는 소리내서 기도할 때,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방언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데, 그것이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방언처럼 들렸을 겁니다. 자기만 방언을 못한다고 실의에 빠져있던 후배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저도 방언을 못한다는 말에 큰 위안이 되었을 겁니다.

사실 저도 방언을 못한다는 것에 꽤 신경이 쓰였었기에, 방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방언을 못하시는 분들께 더 공감이 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글에서 저는 마음 가는 대로 방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소수의 사람들만이 방언의 은사를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 쓴 대로라면 성령의 은사는 9가지 입니다. 한사람이 한가지의 은사를 받는다고 볼 때, 성령을 받은 사람 아홉명 중에 한사람이 방언을 하는 것이 평균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에 성령의 은사를 받을만한 사람이 몇 분이나 될까요? 열 분? 스무 분? 이렇다면 한 분이나, 두 분이 방언을 하면 적절한 것이겠지요?

둘째,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계속 해오신 분 보다, 갑자기 뜨겁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저는 이를 통해 처음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는 하나님의 귀한 섭리를 깨닫습니다.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께 울리는 경종이고, 늘 새로와지라고 주시는 선물입니다. 반대로 신앙의 연조가 오래지 않은 분들께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분발의 격려가 될 것입니다.

셋째, 어떤 사람이 받은 방언의 은사는 내게도 어떤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중거가 됩니다. 아니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셔야 되고, 그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의 은사를,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 행하는 은사를, 예언하는 은사를, 영들 분별하는 은사를, 방언의 은사를, 방언 통역하는 은사를. 이 은사들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랜 신앙생활 했음에도 방언을 받지 못했다는 일종의 시기심 어린 시각으로 방언하시는 분들을 바라보시지 마시고, 저사람도 은사를 받았는데, 나는 당연히 어떤 은사든 받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방언하시는 분들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중기도 시간에 방언기도 소리가 나오면, "아! 이시간 이자리에도 성령이 임재하시는구나!" 라고 느끼시고 더 경건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의 은사의 증거가 교회와 방언 못하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다섯째, 어떤 방언인지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외국어 방언이 맞는지? 하늘의 언어가 맞는지? 자신에게만 덕을 세우는 방언인지... 혹시 사탄의 방언은 아닌지?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방언하는 사람들이 너무 잘난 척하고, 방언 못하는 사람들이 실의에 빠졌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분명히 외국어 방언을 들었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제가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확신할 수 있는 외국어 방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방언은 지구상의 언어가 아닐 것이라고 여겨지는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방언들입니다. 어떤 방언은 듣기에도 거북한 방언도 있구요. 비록 가끔은 어떤 분들의 방언기도가 대중의 기도를 방해한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방언은 충분히, 당연히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섯째, 대부분의 은사는 주위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유발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하는 은사를 받은 분 옆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예언하는 은사를 받은 분들 옆에 계신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하지만 이런 차이가 부정적으로 작용을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훈련인 것입니다. 방언기도 하시는 분 옆에서 이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120명 중에 몇명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을까요? 저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모두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이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행2:15)" 라고 말한 글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구요. 요점은 모두가 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저의 고등부 시절에 22명 중에 20명이 방언을 했듯이 말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부어주셨을까요? 물론 필요하시기에 주셨겠지요. 그 개인을 위해서도, 집단을 위해서도. 저는 여기에서 한가지를 더 짚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행 2:39)"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령의 은사는 우리의 상식에 따르지 않고, 서로 시기하고 뺐을 필요가 없을 만큼, 무한하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방언기도 못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논리도 순서도 없이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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