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형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요셉이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편안하게 살 때, 본인이야 정말 좋았겠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때 형통이란 단어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면서 부터 형통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는데, 요셉은 힘들게 고생을 하고,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편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 부모로부터 편애를 받으며 살던 좋은 시절과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자기는 금수저에서 노예로 전락하는 상상치도 못했던 역경에 처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힘들게 노력하게 되는데,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로 인해 편하게 되는 것을 형통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두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깁니다. 첫번째는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이고, 두번째는 자기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심히 노한 보디발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입니다.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 한 것은 '가장 극형에 처해질 죄' 임에 확실하고, 보디발이 군대 장관인 것을 감안한다면 심히 노한 보디발의 칼에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잣집 도련님으로 모든 것을 누리며 잘살다가 갑자기 노예의 신분으로 먼나라에 팔려가는 상황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 점입가경이라고 할까요 ? 노예의 신분이지만 정말 열심히 일해서 조금 자리를 잡을만 하니까 시험과 유혹이 오고, 그 시험과 유혹에 대해 100점 만점으로 잘 견디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한탄스럽겠습니까 ?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 엄청난 역경을 형통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형들을 무시하고 잘난 척히며, 고자질을 일삼으며 살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라고 성경에 쓰여지게 된다면 어떨까요? 또 그 위기를 넘긴 후에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 능력있고 잘생긴 탓에 주인의 부인의 유혹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 유혹에 너무도 잘 대처했다. 하지만 너무나 억울하게도 주인의 부인의 모함이 있었고, 이 모함에 심히 노한 주인에 의해 칼로 베어 죽임을 당했다." 라고 쓰여지게 되더라도 크게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음으로 삶을 마칩니다. 따라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요셉의 역경에는 형통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역경이 형통은 아니지만, 어떤 역경이라 하더라도 죽음 보다는 감사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요셉의 역경을 통해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혹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역경을 살펴보면 그 역경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형통의 요소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역경은 하나님의 형통의 계획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경에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셉과 같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노예로 팔려가 단기간에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게 될 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겁니다. 왕의 감옥에 갇힌다면 우리의 능력으로는 간수장에게 인정받지도 못할 것이고, 또 꿈도 해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요셉 자신도 꿈을 해석해서 단숨에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을 때나, 왕의 감옥에 갇혔을 때,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열심히 일 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생각지도, 꿈 꾸지도 못한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 삶에 역사하셔서, 역경을 겪게 하시면서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형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역경을 원망하고 한탄하지 말고, 감사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요셉의 형통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요셉을 형통하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 또는 계획 안에서 요셉의 형, 르우벤과 유다, 그리고 주인인 보디발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삶을 살지만, 남의 삶에 조연으로서도 삶을 삽니다. 요셉의 삶이란 드라마의 조연인 르우벤과 유다 그리고 보디발은 그들이 당시에 처한 상황에서는 요셉을 죽이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시게 합니다. 우리는 좋은 조연이 되어야 겠습니다. 죽이는 조연이 아니라, 살리는 조연,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 지 기도하며 지켜볼 수 있는 조연이 되어야 겠습니다.
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요셉의 형통을 살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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