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산상수훈의 세번째 복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복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온유와 양보를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유한 사람이란 적당히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양보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언제까지 양보하느냐 하면 아무도 달라고 하지 않을 때까지 양보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 이삭의 양보를 살펴보면, 그는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의 우물을 양보하고, 자기가 찾아서 판 우물을 양보하고, 또 새로운 우물을 파서 또 양보하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생명선과 같이 소중한 우물, 아버지가 물려준 것도 의미있는 것이므로 양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물론 자신의 노력을 기울여 판 우물도 귀하겠죠? 하지만 이삭은 무엇이든, 어떻든 양보합니다. 더이상 우물을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양보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얻은 결과는 그의 소유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세상에서 양보를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기업을 차지할 것이다. " 였다면 그나마 좀 이해가 갈 것인데, 이세상에서 양보를 하는 사람이 이세상에서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씀엔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수긍이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쉽지 않겠지만, 한번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양보에는 한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빼앗기는 것은 양보가 아니라는 겁니다. 양보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는 것이 양보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챤으로 살기로 다짐하여 한번 양보를 결정한 사람이 고민할 것이 바로 언제까지 양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조금 양보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양보를 결정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계속 양보를 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할 겁니다. 결국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갈 확률이 높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마지막 떡 한덩어리를 만들어 바치는 상황까지. 우리는 그 양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알고 있습니다.
양보는 이세상에서 기적을 낳습니다. 언제 기적이 나타나는 지에 대해 여러분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더이상 양보할 것이 없을 때 ! 더이상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 !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서 기적을 경험해 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꽤 겁이나고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2018년 2월 4일 일요일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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