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3일 금요일

왕의 감옥에서의 요셉 - 마지막 2년

왕의 감옥에서의 요셉은 두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당당할 수 있는 요셉과, 인간으로서의 현실적 한계인 노예이며, 죄수로서의 요셉을 봅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요셉은 그 두사림이 꾼 꿈을 해석해 줍니다. 이 장면에서 요셉은 당당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선포하는 듯 합니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내게 말해보십시요."

사실 두 꿈에 대한 해석은 요셉의 목숨을 건 해석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라도 결과가 맞지 않는다면 요셉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늠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로서 꿈을 해석한 요셉은 이어 아주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며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 합니다. "나는 이방 사람인데, 이유 없이 종으로 끌려오게 되었고, 또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 감옥에 까지 갇히게 되었습니다. 제 처지를 살펴주십시요."

요셉의 두가지 입장 차이를 보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더라도 이 땅에서 사는 한 우리는 현실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곳 미국에 와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큰 교회 성가지휘를 하는데, 평일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시는 분, 교회 부목사인데, 주중에는 콜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 교회 전도사를 하면서 주중에는 빌딩 청소를 하시는 분 등을 봅니다. 그리고 자립하지 못한 교회의 사모님들의 절반 이상이 네일살롱에서 일하신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현실 속에서의 생활고는 만만치 않습니다.

이와 같이 두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극히 정상적이라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빠른 시간 내에 벗어나야 할 역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아예 갖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하고, 세상 일도 열심히 해야 겠습니다. 조금 신경을 쓴다면,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 인데, 답은 당연히 하나님의 일에 비중을 두고 살면 삶의 두 면이 모두 형통함을 경험하실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느끼게 해주었던 요셉이 왜 자신의 처지를 밝히며 애원했을까요? 물론 빨리 벗어나고 싶었겠죠 ! 하지만 모양새만 구긴 셈이지,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꿈을 해석하는 요셉을 기억했지, 힘든 처지에 있는 불쌍한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사람 답게, 꿈을 해석해 주고, 늠름하게 "당신이 복직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세요 !"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현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떤 일도 당당히 해서, 현실적인 생활을 해결할 뿐 아니라, 남을 도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이 된 후 요셉은 하루 하루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을 겁니다. 이는 정말 인간적인 바램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빌어 내 형편을 면하고자 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고 하겠습니다. 형통케 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2년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2년은 요셉의 훈련기간 중 클라이막스였을 겁니다. 인간적인, 세상적인 기대를 모두 내려놓고,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자 드디어 바로가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떠올리고, 바로에게 요셉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요셉은 바로 앞에 서게 되고,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해준 후의 요셉은 2년 전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신 이유를 설명하며, 치리 방법을 권합니다. 만약 2년 전의 요셉이라면 바로에게 애원했을 겁니다. "당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으니 이제 나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요."

왕의 감옥에서의 마지막 2년은 요셉을 완성시킵니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환란을 벗어나는 삶이 아니라, 환란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만약 이 2년이 없었다면, 과연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온전히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크리스챤으로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꿈을 해석하는 듯' 한 충만한 은혜를 끼치곤 합니다.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꿈을 해석하는 듯한 일을 행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 이것으로 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준비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2년 간 내려놓은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기의 처지에 대한 한탄, 세상적인 기대, 인간적인 욕망 등일 겁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겠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 놓여진 환경 때문에, 특별히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인간적인 한계를 보이기 쉽습니다. 요셉을 생각하시면서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 모든 상황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의 당당함을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요셉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시고 완벽하신 배려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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