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5일 금요일

룻이 '우연히' 보아스에 밭에 이르렀다 ?

저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음을 압니다. 그런데 룻기 2장3절에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성경에 '우연히' 란 말이 몇군데나 나와있는 지 모릅니다. 성경에는 흔치 않은 표현일 겁니다.

우연히 여서는 안되는데, 왜 우연히 라고 표현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이것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아마도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룻기를 쓴 저자의 입장에서도 우연이라고 봤기에 그렇게 썼을 겁니다.  하지만 룻에게 보리 이삭을 주으러 가게 한 나오니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요? 나오미는 룻이 보리 이삭을 주으러 나가면 잘하면 보아스의 밭으로 갈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면 룻이 보아스의 눈에 띄일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해 잘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보아스는 룻을 젊고, 예쁘고, 현숙한 데다가, 기업무를 자격이 있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보아스는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나오미는 연출을 했습니다.

성경에 우연히 라고 표현될 정도의 일에도 조금난 내막을 살펴보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 크리스챤은 '재수가 없다' '운이 좋다' '복도 많다' 라는 표현을 삼가하던지, 잘 가려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가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 마저 잃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사람들은 비난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미는 손주를 안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녀의 삶은 '해피 엔딩' 인 것입니다.

내가 시련을 당하던지, 아니면 내 옆사람이 시련을 당하던지, 내가 잘나가던지, 아니면 내 옆사람이 잘나가던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습니다. 잘나간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련에 손가락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내 시련에 주저앉아서도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평안함에 만족하지도 말아야 겠습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평안 뒤에는 징계가 있었고, 시련 뒤에는 구원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 생활 16년 째, 아주 큰 시련을 당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 시련 속에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쎄지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일, 아니 매 순간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경청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자신의 삶을 해피 엔딩으로 끝내시길 기원합니다. 지금 내 삶이 어떤 과정에 있는 지를 잘 살피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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