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일 일요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6절의 이 말씀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을 '예수를 믿어야' 로 해석했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를 통해서만' 으로 해석했습니다. '아버지께로 올 자' 를 천국에 가는 것으로 해석했죠.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과 예수님이 하신 많은 말씀 모두를 제쳐놓고, 이 한 구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때문에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무조건 잘못 되었다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 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는 천국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는 예수님 믿어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겠죠? 아브라함도, 모세도, 엘리야도 하나님께 가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시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로지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는 있었고, 경건하고 신실하게 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나 가르침이 명확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가운데 살아갔고, 이유를 모른체 상을 받기도 하고, 이유를 모른체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떤 곳이고, 어떻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을 바꾸셨습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은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감히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만이 정결하게 준비를 하고,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뵙기를 청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죠.

예수님의 구원은 온 인류에게 미칩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의 전통이나 규정 아래서 죄인의 삶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인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고 영접해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기독교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교회에 나와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설교를 들으며,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우리는 계속해서 그 가르침을 깨닫고, 합당한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 명령을 수 없이 들으면서도 그 명령을 따르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진주를 받았음에도 가치를 모르는 돼지는 더 책망을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을 기독교가 가진 재산이나 무기 인냥, 휘두르며, 분란을 일으키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뵐 수 있게 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으며, 뵙기를 즐거워하며, 그 분을 말씀을 따라 살도록 힘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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