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눈과 추위로 인해 주어진 편안한 하루 !

이른 아침에 친구가 좋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고은 시인의 길 이라는 시인데,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어려서부터 항상 새 길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극민학교 때부터 당구를 쳤습니다. 중학교 때는 수업도 빼먹고 당구를 쳤는데, 고등학교 되서 아이들이 당구장 다닐 때는 당구를 끊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 수련회 장소를 찾는데, 남들이 안가 본 곳을 찾느라 광능에서부터 퇴계원까지 하루종일 물에 들어가 물을 따라 걸어너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모두가 종로로 몰려갈 때, 우리는 명동에 근거지를 만들고 놀았습니다.  

대학교에 가서도 써클을 만들었습니다. 올해로 40 주년이 되네요. 뿌듯합니다.

대학 동창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는데, 저희가 이벤트 업으로 등록한 최초의 회사였습니다. 어떤 회사 보다도 경쟁력 있고, 창의적인 이벤트 회사를 운영했었습니다. 

중국이 개방되자 아주 초기에 중국에 진출했습니다. 중국에 진출하는 대기업 직원들에게 컨설팅을 할 정도로 초기 중국에 정통했었습니다.  

택배회사를 만들었는데, 다른 회사와는 다른 새로운 모델이었습니다. 기업 고객의 제품을 물류센터에 미리 받아놓고, 주문이 오면 바로 송장을 찍어서 배송해주는 요즘 통용되는 비지니스 모델의 회사였습니다. 

한전 검침원들의 남는 시간을 가지고 해당 지역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LG 홈쇼핑 카탈록 등을 우체국 보다 싼 가격에 전국에 배송할 수 있었습니다. 한전에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걱정되서 금지시키지만 않았다면, 좋은 사업이었을 겁니다. 

미국에 와서도 남이 아무도 안하는 '네일살롱 컨설팅' 이란 것을 했습니다. 유일하니까 당연히 미국에서 최고의 네일살롱 컨설턴트 였겠죠? 뉴욕네일협회에서 세미나도 여러차례 했는데 당시 회장님께서는 "네일업계에서는 김 선생님의 말이 법이다." 라고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었습니다. 미국에 온 첫해에 커네티컷에 네일살롱 협회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네일살롱을 운영하는데에도 아무도 안간 길을 갑니다. 미국 사회에 한인 네일업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전력을 쏟고 있는 건축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들이 안해 본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 것으로 보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시작하고, 남이 안간 길도 겁없이 가는 제게 아직 시작하지 못한 길이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 것이 "내 양을 먹이라!" 고 끊임 없이 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온전하게 화답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정답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던 바로 지금 시작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핑계를 한가지 대자면 잘하고 싶어서 입니다. 

봉사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학교, 봉사자들을 양성하는 학교, 봉사자들에게 힘과 안식을  주는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한 10년 전에 전혀 여건이 안될 때에 말을 꺼냈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동조해 주셨는데, 지금까지 한걸음도 떼지 못했습니다. 여건이 안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길을 다시 떠올리는 오늘 아침도 여건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자금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작년 말에 적자를 본 공사가 두군데 정도 되서 주급도 밀려서 주고 있고, 재료 살 돈도 없어서 공사도 지체되는 악순환에 처해 있습니다. 잘 나가는 네일살롱도 공사 쪽에서 급하게 가져다 쓴 돈을 갚지 못해서 렌트를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 바로 지금 보다 더 좋은 시작 시점은 없다." 는 답이  또 들려오네요. 어쩔 수 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려 합니다. "이렇게 단점 많고, 문제도 많고, 돈도 시간도 없는 제가 시작해도 되나요?" 답이 없으십니다. 고은 시인이 답해주시네요. "지금부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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