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일 일요일

책을 안 읽는 사람

 어떤 분이 한달 쯤 전에, 제게 책을  많이 읽냐고 물으셨습니다. 책을 거의 안 읽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니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나는 왜 책을 안 읽고 있는지? 

제가 책을 안읽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책을 읽은 권 수로 따지면 저를 따라올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장난으로 하는 이야기죠. 만화책과 무협지를 말하는 거니까요. 일곱살 때 만화를 접하고 삼십대 초반까지 약 25년간 몇몇 순정 만화를 제외하고, 한국에서발행된  모든 만화를 다 봤다고 해도 될겁니다. 연재 만화를 보기 위해 새소년과 소년중앙을 매달 발간된 첫날 사서 봤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 도서관 관리를 맡았은데, 하루에 반나절을 도서간에서 책만 봤습니다. 당시에 조흔파 라는 작가의 '얄개전' 을 다 읽었던 것 같다. 소위 '명랑 소설' 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던 작품일 겁니다. 짱구라고 불리운 나두수 라는 주인공이 기억이 나네요.  이 당시에 묘한 것은 저는 백과사전을 익었다는 겁니다. 작은 글씨로 쓰여졌고, 양도 2천 페이지 되는 백과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화가게에 있는 무협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고 3 때까지 최소한 하루에 3권씩은 봤을 겁니다. 재미있는 책은 한시간에 한권, 별로 재미없는 책은 40분에 한권 정도를 읽었고, 학교 갈 때, 가방에 4권 정도 넣어가면 학교에서 다 읽고 왔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만화가게를 다 흩고, 하교 근처, 그리고 평화시장의 헌책방 까지 다 흩어서 무협지를 끝장을 냈습니다. 학기 중에도 하루에 무협지 열권을 읽은 날이 허다 했습니다. 무협지를 써볼까 하고, 무협지를 쓰는 자료 책을 사서 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한국에 성인만화 라는 것이 발간되었었는데,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손의성 이란 작가의 복수 라는 만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주간경향과 선데이서울 이라는 잡지도 빠지지 않고 본 것 같고, 고등학교 때는 스포츠동아 라는 주간지도 나와서 이도 빠지지 않고 봤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심재근이란 친구 집에서 소위 '빨간 책' 이란 것을 처음 봤습니다. 불법으로 만들어서 유통되던 아주 저질의 성인 야설과 만화를 일컽는 이름인데, 책 겉장이 재생지로 만든 붉으스레한 종이를 써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재근이의 고등학생 형이 숨겨 놓은 것을 찾아서 읽었는데, 한달 동안 대여섯 권 정도를 보고 들켜서 끝났습니다. 중 3 때 반에서 빨간 책을 돌려 읽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당시 세운상가 3층에 가면 이십대 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 학생들에게 책을 팔았습니다. 불법 유통인데다가, 단속이 심해서 극장 암표 팔듯이 학생들을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서 가격을 흥정해가며서 팔았습니다. 세운상가에 가서 책을 사 온 아이들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큰소리 치며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되팔기도 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세운상가는 걸어갈 거리에 있었고, 저는 옆 건물인 삼풍상가를 자주 갔었지만, 책을 사러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우연히 고3 때 쯤 그 판매장소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청년들이 중학생 데리고, 겁도 주었다가, 농담도 하다가 하면서 책을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3 때는 사복을 입으면 ROTC 인 척하고 다니는 것이 몸에 베어있어서, 제게는 책팔이 들이 말을 걸지 안더라구요. 책을 사오던 아이들이 무용담 처럼 떠들어 대던 것이 저렇게 쩔쩔 매가며, 농락당하며 사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쨌던 저도 국민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때 까지는 이 빨간 책의 팬이었습니다. 물론 가방에 넣어보지도, 소유한 적도 없습니다만요. 

고등학교 시절 그나마 책이라고 할만한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나가 사온 박완서 작가의 '휘청거리는 오후' 라는 책은 묘하게 저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왠지 옆집 누나나 젊은 이모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 시절까지 따지면 이 작가의 책을 대여섯 권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견 때, '페이터의 산문'에 나오는 금욕주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제 삶의 근간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로 철학 책에 빠졌었습니다. 당시 계몽사 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발간한 서양철학자의 대표작을 번역 출판한 50권 짜리 전집을 다섯권 정도를 제외하고 다 읽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 시작해서 로크와 루소... 아 그러고 보니, 공자와 맹자도 있는 전집이니 서양 철학 전집은 아니었네요. 사서오경이 다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서는 확실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족히 300 페이지 되는 책 50권을 고2, 고3 때 다 읽은 셈이네요. 유교 서적 중에 몇권과 현대 서적중에 몇권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어서, 다 읽어야 하는 제 성격과 다르게 시도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괴테에 빠졌다가,  니체에서 끝을 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건적인' 이라는 책은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의 책도 한 2권 정도 밖에 읽지 못했습니다만, 당시에 이해가 어려워서, 연필로 줄치며 읽고, 한번 더 읽을 때는 지우개로 지우면서 읽고 했습니다. 속독이 몸에 베어있던 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독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 3 겨울에, 이문열 작가의 '사람의 아들'이란 책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삼국지나 수호지가 나오기 전까지 10년 넘게 이문열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사주와 관상, 수상 등을 보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 때, 추명학 이란 역학책을 아주 열심히 봤습니다. 역학책 열심히 읽은 것 가지고, 나중에 ARS 에서 오늘의 운세 말해주는 사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생긴 변화가 한가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깐 흥사단에 나가면서 당시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책들을 보기 시작했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책들이 금서가 되었고, 노래들이 금지곡이 되었었죠. 대학교 때도 금서들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ㅗ다니다가, 압수 당하거나, 잡혀가는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고3 때 부터 읽었던 신학서적들도 일부는 금서 목록에 들어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매주 모여서 토론을 하고, 주위에 알리는 모임이었는데,  대여섯 명 모여서 몇달 하다가 한계를 느끼고 그만두었습니다.  당연히 은밀하게 모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선생님들 중에서 이 모임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러니 저도 대학 시절에 금서를 조금은 가지고 있었고, 가끔 불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가니, 이런 책들이 전공 서적이어서, 마음 놓고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게 되더군요. 학교 도서관에서도, 국회 도서관에서도,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문 같은 책들은 물론이고,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한 책들도 당당하게 빌리고,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또 읽고 싶은 마음이 덜하게 되더라구요. 대학원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꼭 읽어야 하는 전공 서적 외에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졸업 논문을 위해서 읽은 책도 채 5권을 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중고등학교 때 읽은 무협지가 족히 3천권은 될 겁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30대 때까지 익은 만화는 최소 3만권은 될거구요. '남아수독 오거서' 를 만화와 무협지로 이미 중학교 때 쯤에 넘어섰죠. 저는 책을 안읽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만화나 무협지를 제외하고도, 20대 까지는 꽤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보는 욕심이 누구 보다도 강산 사람인데다가, 중학교 때 무협지를 읽으면서 생긴 속독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노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쏟았고,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0대 때부터는 읽은 책이 거의 없습니다.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요. 한 4년  전쯤에 제가 운영하는 사업의 파트너가 신학교 졸업을 위해서 책 3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대신 써주느라 3권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현대 신학계의 거장들이 쓴 유명한 책들이었습니다. 파트너에게 고맙단 소리도 들었지만, 사실 제게도 의미가 있었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성경을 제외하고는 어떤 책도 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빠친코 라는 책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책도 읽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을까요? 분명히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지식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을 추구할 겁니다. 어떤 책은 궁금해서 읽기도 하겠죠? 과시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시간이 남아서, 할 것이 없어서 읽기도 하겠구요. 근심, 걱정,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재미있어서 읽기도 할 것이고, 감동을 위해서 읽기도 할겁니다. 책을 읽는 모임에 가입해서 읽으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읽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수업 때문에, 자격증을 위해서, 또  공부를 위해서 읽기도 할겁니다.  

반대로 책을 안앍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전에 책을 안읽는 것과, 일고 싶은데도 못 읽는 것은 다를 겁니다. 글짜를 몰라서 못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눈이 나빠서 못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못읽을 수도 있고, 책을 사서 볼 돈이 없어서 못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도서관에서 책을 얼마든지 빌려주니까, 돈 때문에 못읽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긴 하지만요.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까요? 

혹시 나는 의도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인가도 생각해 봅니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흥미가 없다는 겁니다. 어떤 책이 인기를 끌어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업에 많은 시간을 뺐기고 있고, 잠시 시간이 나면, 글을 쓴다거나, 설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는 데에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지 모르지만, 저는 성경 이외에 다른 책을 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석을 볼 때도 있긴 합니다만, 오랜 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주석책들을 몇년 전에 싹다 버렸을 만큼,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책을 읽는 목적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서 찾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런데, 흔히 책을 읽으시는 분은 계속해서 책을 읽고, 그것이 생활이 되는 것 같더군요. 남들이 보면 좋아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본인도 뿌듯할 수 있을 거구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런 각도에서도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혹시 내가 책을 읽느라고 못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 "내가 책 읽으려고 세상에 왔을까?" 게임 중독, 도박 중독... 은 부끄럽고, 문제가 되지만, 독서광, 독서 중독은 전혀 분제가 없는 걸까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사실은 유투브 중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투브에 빠집니다. 지금 1주일 째 유투브를 끊고 있는데, 앞으로도 여차직하면 유투브를 볼거고, 또 한번 보면 시간가즌 줄 모르고, 할일을 제쳐둔 체 몇시간 씩 유투브를 보고 있을 겁니다. 


어렸을 때, 성격 형성을 위해서, 전반적인 인격 형성과 교양을 위해서 독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어린아이들이 게임 증에 빠지지 않고, 독서에 열중한다면, 정말 감사할 일일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겠죠? 또 학업에 까지 연장하여, 아이들이 커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겁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어서 독서에 메달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독서를 하시는 분에게 책 접어두고, 밖에 나가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시라고 한다면, 그것도 좋은 반응이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겁니다. 어떤 책을 통해 귀한 교훈을 얻었고,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면, 그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행하는 것이 ,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이 준 감동이 감동으로 끝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감동만 받는다면,  오히려 그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는 것을 방해할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30대 후반에, 한주에 열다섯 편 정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한국 중견교회 목사님들의 주일 설교를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당연히 좋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가며 들었겠죠? 안타깝지만 약 4년간 들은 3천 편이 넘는 설교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저로 하여금 무엇일가를 행하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3천편을 통해 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설교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주옥 같은 설교들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많은 영감이 전달되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제 주장은 설교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쫓아다니는 설교 광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제 삶을 통해서 들은 수많은 설교 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이 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책을 안앍는 사람입니다. '책을 안읽는 사람' 이것은 별로 안좋아 보이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의 목표는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언제까지가 될 지는 모르지만 일주일에 두편의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책은 열심히 봐야 할겁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부디, 여러분의 독서가 여러분의 삶에 유익이 될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이웃에게도 유익이 되는 독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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