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던 글을 아들 때문에 쓰게 됩니다.
한달 전 쯤에 아들 부부가 개를 입양하려 한다는 글을 가족 카톡에 올렸습니다. 저는 반대하지만,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아이들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고 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가능하면 아이들과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 문제에 대해서는 말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바쁘기도 했고,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시간이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아들이 개의 사진을 카톡에 올렸습니다. 제가 정말 중요한 자식들의 교육에도 소흘히 하고 있구나 라는 반성이 되었고, 뒤늦게 아이들에게 사랑과 더불어 훈계를 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 입장을 말하자면, 저는 개를 키울 이유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개를 키울까요? 요즘은 개라고 하지 않고, '반려' 라는 표현을 쓰며, 거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외롭기 때문에? 사랑을 줄 대상도, 사랑을 받을 대상도 없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혼자 있어서 쓸쓸해 보이거나, 아니면 아이가 개를 사달라고 졸라서 ? 아주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떤 비싼 개들은 부의 상징으로 키워지기도 하구요. 요즘 제 주변의 몇분은 유기견이 불쌍해서, 구제하는 마음으로 키우시기도 하더군요.
어떤 이유던 저는 좋은 방법도 아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저를 충격에 빠지게한 두가지 사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거의 20년 전에 저희 교회 어떤 집사님이 "개를 키우면서 보험도 안들어주고 키우는 매너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을 때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말은 개를 키우려면 그정도의 준비 또는 희생을 감안하고 키워야 한다라는 뜻이 었을 것 같은데, 당시 저에게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당연히 건강보험을 못들었고, 따라서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 데려가기가 힘들었던 저로서는 "개를 키우면 보험은 들어야지!" 라고 주장하는 집사님이 황당해 보였습니다. 당시에 들었던 개의 보험료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뉴스를 듣는데, 미국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차에서 개가 뛰어내릴 경우, 50% 이상이 차를 세우지 않고 그냥 개를 버리고 간다고 하는 통계였습니다. 가족이니, 반려견이니 해도 결국은 '유사(Pseudo)'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개 때문에 수술비 천불 들어갔다고 징징대던 분도, 수술비 7~8천불 들어가는 병이 걸리니 안락사를 택하더군요.
우리가 살면서 외로우면,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봐야 합니다. 몰론 인간 관계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항상 트러블이 있습니다. 개를 키우면 외롭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느낌으로는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왠지 이것도 인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통계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우울증 환자나, 불안증 환자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외로워 보이면, 친구를 찾도록 권해야 합니다. 개를 통해서 뭔가 얻는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으로 그 얻는 것이 인간의 삶에 득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개는 조금만 베풀어주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친구나,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개는 오히려 아이가 건강한 인각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주는 인간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저는 개를 통해서 뭔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허상 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뭔가 베푸는 마음으로 개를 키우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 여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바깥 일도 많고, 집안 일도 많을텐데. 보살펴야 할 부모님도 계시고, 돌봐야 할 아이들도 있을텐데. 유기견 쎈터를 찾기 보다, 고아원을 찾거나, 먹을 것 없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우면 어떨까?
개를 돌보면서 사회적으로 기여를,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허상 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저는 가끔은 개를 보면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듭ㄴ디ㅏ. 개는 분명히 늑대에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한 종의 동물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개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그 모습을 바꾼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개는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인간은 개에게 거처와 양식을 제공했고, 개는 인간의 사냥을 도왔고, 야생 동물로 부터 인간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인간은 개의 이런 기능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용도가 다한 개는 멸종하지 않고, 용도를 바꾸어 오히려 폭발적으로 개체수를 증가시켰습니다. 종류로 따져도 수백종이 될 겁니다. 거기에 소위 잡종이라는 것 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는 종류의 개가 있을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모습, 다른 크기의 동물이 개라는 한 이름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개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늑대는 사는 지역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조금은 다르겠지만, 거의 비슷한 외형과 본성을 유지하고 있어 보입니다. 여우도, 양도, 염소도, 소나 돼지도, 원숭이나 침팬지, 고릴라도 그럴 겁니다. 제가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아마도 유일하게 개 만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인간이 개를 만들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개 스스로가 자신의 모양을 바꿔가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개는 주인을 닮아가는 것 같아 보이구요. 단언컨데, 아마 개들은 점점 사람을 닮아갈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더 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죠.
한 20년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유혹' 이고 '방해'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막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를 키우는 집이 안키우는 집 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혹시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개를 키우는 것이 성서적인가요? 하나님이 좋게 생각하실까요?" 라고 물어보시면 어떻게 답을 하실까요? 아마도 개에 대해 생각을 어느 정도 해본 목사라면, 이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명이자, 목적인 크리스찬이 동물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 시간을 뺐기고, 동물에게서 정을 느끼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삶에 동조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목사님들은 대답을 회피할 겁니다. 이미 교인들 중에 개를 키우는 가정이 많을 것이고,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집에 베쓰 라는 이름의 독일산 세퍼트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한살 많은 이 개는 제가 일곱살 때 집을 뛰쳐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개와 잘지냈습니다. 수없이 많은 빵을 베쓰에게 뺏기면서도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 집에 쥐가 하도 많아서,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십이년 동안 두마리의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끔찍한 쥐를 없애주었고, 고양이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동물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동물에게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동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도 없었구요. 다행히 와이프와 딸은 개를 무서워했고, 아들은 중학교 때, 개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알러지도 있고 해서, 큰 무리 없이 말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이 알러지 약을 먹어가면서 개를 키우겠다고 합니다. 몰론 며느리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신혼이지만, 곧 아이도 낳을 것이고, 둘이서 일하면서 아이 돌보기도 어려울텐데 말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둘 중 한사람이 하루에 30분 정도는 개에게 투자를 해야 할건데, 이로 인해 트러블은 없을지? 개에게 쏟을 노력과 돈을 이웃에게 사랑를 베푸는 데에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의 수천배의 열매를 거둘텐데.
이제 저는 개를 이세상의 가장 큰 유혹 중 하나라고 규정하려 합니다. 술의 유혹, 도박의 유혹, 게임의 유혹, 유투브의 유혹, 골프의 유혹, 드라마의 유곡 보다 훨씬 교묘하고,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대부분의 이런 유혹들이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돕고, 또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듯한 명분을 주기도 합니다. 또 대부분의 유혹들이 조절을 잘하면 큰 문제도 없고,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절은 결코 쉽지 않고, 결국 건강한 삶을 해치는 유혹이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개가 점점 더 섬뜩해 짐을 느낍니다. 개를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사탄에 맞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개의 유혹에 빠져서,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합니다. 개에 데힌 저의 첫번째 글인데, 좀더 정리하지 못하고 서둘러 마무리 합니다. 제 아들에게 빨리 읽게 하려는 마음에서 입니다. 물론 아들과 며느리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개에 대해 생각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요.
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인간 관계에서, 사람을 통해서 얻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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