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5일 일요일

눈이 심하게 나빠져서 두려운분들에게

 저는 눈이 안좋습니다. 제 눈이 얼마나 안좋은지 설명하기 어렵지만요. 저녁에 와이프와 식탁에 앉으면 와이프가 반찬 종류를 설명해 줍니다. 가끔은 어떤 어떤 반찬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어슴프레 보이는 것을 가지고 절반 정도는 맞추고, 절반은 못맞추는 정도입니다. 텍스트 문자를 그다지 크게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옆사람 보기에 민망해서도 그렇지만, 잘보일ㄹ 정도로 크게 해놓으면 화면을 계속 움직이며 봐야 하는 것도 불편해서 입니다. 사람을 못알아 보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눈이 급격히 나빠진 작년부터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머리 속에 기억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친한 분들에게는 밝혔습니다. 길에서 저를 보게 되면, 저는 못알아 보니, 꼭 가까이 와서 아는 체를 해달라구요. 이메일도 긴 문장은 거의 볼 수 없어서 포기하거나, 아주 오랜 시간을 쏟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촛점을 맞추고 봐야 해서요. 그래도 안보이면 왼쪽 눈으로 봤다가, 오른 쪽 눈으로 봤다가 하며 시도를 해봅니다. 정 안되면 옆에 계신 분에게 읽어 달라고 합니다. 저는 작은 건축업을 하고 있는데, 아주 의욕적으로 바쁘게 합니다. 고객들이 제 눈 상태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밝히고 합니다. 1년 전부터 운전을 하지 못하고, 여러 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길을 건널 때에는 천천히 몇번을 보고야 건넙니다. 

제 글에서 몇번 썼지만, 저는 눈이 특별하게 좋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근시가 생겼지만,  안경만 쓰면 양쪽 눈 다 2.0 이었습니다. 동체시력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데, 농구를 하면 저를 포함한 열명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 지 다 보입니다. 심판까지도요. 그 덕에 건축을 시작하면서 못질도 하지 못하면서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눈이 잘보이니까, 어디가 안됐는지? 어떻게 하면 저 부분을 해결할지? 재료가 얼마나 들어갈지? 경험있는 목수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책을 남들 보다 꽤 빨리 볼 수 있었습니다. 빨리 잘 보는데, 기억력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젊은 시절 제가 자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눈이 좋아서 였던 것이었습니다. 눈이 나빠지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좋았을까? 왜 나빠졌을까? 눈이 좋았을 때, 감사하기 보다는 잘난 척 하기만 해서인가? 눈을 아끼지 않고, 너무 많이 써서인가? 저 보다 더 눈을 혹사시킨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눈을 많이 썼습니다. 눈이 이런 상태인데도 하루에 몇 시간을 유투브 보고 있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하루에 한편 이상 꼭 보구요. 눈이 이런 상태인데도 하루에 서너 시간은 모니터를 봐야 합니다. 하루에 텍스트도 50통 이상 써야 합니다. 아주 힘이 들지만, 그래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설교를 두번 하는데, 원고를 만들어도 보고 할 수 없으니, 몇 배로 힘이 듭니다. 제가 전에 청년부 가르칠 때, 무준비로 2~3년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교회에 가면 주일 주보가 나와있어서, 그 주보에 있는 담임 목사님의 성경구절과 제목 가지고 즉흥 설교를 했습니다. 무난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제게 참 쉬운 일이었습니다. 양로원에서 십년 넘게 주일, 수요일 예배 설교를 하는데,  눈이 나빠지기 전까지는 너무 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사람 보다 몇 배나 어려워졌습니다. 사업과 봉사가 제 삶의 두 축이라면, 이 두가지에 있어서 제 눈은 저를 정말 힘들게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눈이 나빠졌는지? 얼마나 나빠질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눈이 더 나빠져도 저는 여전히 바쁘게 일을 할거라는 겁니다. 눈이 아주 좋던 10년 전의 제 삶과, 눈이 뽸 나쁘던 2년 전의 삶, 그리고 눈이 아주 나쁜 현재의 삶을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30년 전에도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20년 전에도 혼자하는 사업이지만, ㅇㄹ심히 일했습니다. 10년 전에도 여러 고비를 넘어가며 열심히 일했고, 지금도 너무 바쁘다고 할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눈이 이렇게 나빠졌는데도 말입니다. 아마 10년 뒤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겁니다. 몸의 다른 부분도 많이 나빠질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니 오히려 걱정이 되지 않고, 평안해 집니다. 

눈이 더 나빠지겠죠? 주위 사람들이 더 불편해 지겠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바뀔 수도 있겠죠? 가고싶은 곳에 편하게 가지 못하겠죠? 손주들의 얼굴을 잘 못알아 보겠죠? 밥 먹기가 더 불편해져서 반찬 2~3가지 따로 담아서 먹어야 하겠죠? 혼자서 길 못건너겠죠? 골프 같은 것은 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겠죠?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겠죠?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 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겁니다. 제가 가지 못하니 저를 보러 와줄겁니다. 불행하게도 거의 아무도 와주지 않는다면, 잘못 살았구나 하고 깨닫고 바뀌어야겠죠. 숫자가 주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손주들은 아주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할 것이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주기도 할 겁니다. 저는 좀더 천천히 걸을 것이고, 천천히 일을 할 겁니다. 일도 신중하게 할 것이고, 말도 신중하게 할 겁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덜 볼거구요. TV 대신에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음악 감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와 가깝고, 제가 존경하는 장로님이 저를 볼 때마다 말합니다. 눈에 대해서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너무 신앙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구요. 제 절친도 제게 늘 말합니다. 방법이 있는데 안찾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노력을 안한다고. 저도 걱정하고, 저도 생각합니다. 6개월 마다 안과에 빠지지 않고 가고, 하루에 3가지의 약을 먹고, 2가지의 안약을 넣습니다. 의사도 제 안압이 완전히 조절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의사들 말고 한국의 의사들에게는 어떤 솔루션이 있을까 하여, 한국에서 연수온 서울대 출신의 안과 전문의와 상담도 해봤습니다. 틈나는 대로 눈 마사지 하고, 매일 눈 운동도 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눈이 조금 먼저 나빠지는 것일 뿐, 그리고 일순간에 사고로 실명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천천히 준비하면서 나빠지니 이 또한 감사의 요소가 됩니다.  이전에 눈빛이 강한 편인데다가, 상대방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 편이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쁜 여자 지나가면 쳐다본다고 와이프에게 핀잔듣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사실 나이 들어서도 그러면 정말 추해 보일텐데 하고 걱정했었거든요. 또 크게 감사할 일이 하나 있는데, 긴 이메일이나 텍스트가 오면 ChatGPT 가 다 읽어줍니다. 읽기 불편했던 영어 이메일이나 텍스트도 잘 읽어줘서 너무 편합니다. 제가 어떻게 말하더라도 다 알아들어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눈을 더이상 나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눈이 아주 좋았을 때도 별로 잘한 것이 없었더라구요. 오히려 잘못 보고, 빨리 못보고 하는 사람들을 구박했구요. 그래서 요즘 저의 주된 기도 제목은 "죽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입니다.  눈이 더 나빠져도 할 수 있을까?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다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깨끗한 죽음 바라지 않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저도 힘들고, 자식들도 힘든 시간을 겪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즐겁게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제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미국에 오셨을 때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돌아가시기 전에 한 2년 동안 병상에 계시다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들,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거의 다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자손들도 엄마와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자질 수 있고." 저희 어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정확히 2년 간을 병상에 게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면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야 ! 2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어? 네 말대로 2년 있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너도 나중에 한번 당해봐라!"  "그렇게 힘드셨다니, 나는 1년만 하면 안될까?" 돌아가시기 직전에 저와 영적으로 몇가지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누었는데, 마지막 대화셨습니다. 

많이 불편하고, 많이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고, 그다지 두렵지도 않습니다. 제 눈을 나쁘게 하신 이유를 언젠가는 정확히 알겠죠. "아 그때 내 눈이 나빠지게 한 것이 이런 의도셨는데, 내가 못깨달았구나!" 고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불평도, 걱정도 안하려 합니다.  어렴풋이 나마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함으로 하려 합니다. 그의 장애인 수준이 되었지만, 비지니스에도 큰 지장을 주지만, 뭐 ! 하던 일 거의 그대로 할 수 있더라구요.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을 떠올리며, 눈이 좋았을 때, 눈으로 좋은 일 하지 못했음에 반성하고, 나빠진 눈이지만, 눈으로 좋은 일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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