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들

 2025년 성탄을 맞으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왜 오셨을까요? 그리고 양로원 예배에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라구요. 저는 여기에 '죄에서' 라는 한 단어를 더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죄에서 구원하려 함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 1:21 )

기독교의 막연한 구원관, 아니면 의도적인 구원관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고 말하게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막연한 구원관은 영생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모든 기독교인의 금과옥조인 요한복음 3장16졀로요.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라고 말이죠. 당시 모든 유대인들의 꿈은 '영생' 이었습니다. 그 영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구요. 모든 율법을 지키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구제와 선행에 힘썼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힘들었던 일반 사람들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에서 요한은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는 말을  남깁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것입니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 믿는다' 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세례를 받는 것? 그를 따라다니는 것? 그의 제자가 되는 것? 아마도 요한은 이 정도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이 믿는다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나요? 예수를 믿는다고 말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가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 영생이 천국과 동일시 되는 기독교에서는 아마 이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막연한 구원' 에 대해 이야기 하려다가 곁길로 나갔는데, 이만 멈추려 합니다  이미 지겹도록 많이 쓴 내용이기도 하구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주로 주장한 '원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저는 예수님의 죄의 용서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죽음 직전의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오른편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형수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한가지를 더 하겠다고 하며 질문 했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꽤 여러분이 "우리는 죄인입니다." 라고 답하시더군요. 저는 일부러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셨는데도 아직 죄인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함께 만점 짜리 답을 찾아보자고 했고,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라는 답을 만들었습니다. 용서 받았지만, 우리의 죄를 잊어서는 안되고, 또 그 용서의 감격과 기쁨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하기에 '죄인' 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 가지 답을 하시는 분들께 제 생각으로는  '근신과 감사'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내 죄가 용서되었듯이 다른 사람의 죄를 보려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살면서, 항상 나를 돌아보며, 삼가하고,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이번 성탄은 저의 죄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려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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