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4일 목요일

이름 없는 종이 있을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입니다. 제가 이 찬송을 좋아하게 됐을 때는 개편 찬송가 387장 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부른 찬송가는 '저 장미 꽃 위에 이슬' 이지만, 항상 부르며 살고 싶은 찬송가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입니다. 

양로원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어르신들께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정하면 좋겠다고 수시로 말하곤 합니다. 이왕이면 자식들이 엄마나 아빠가 가장 좋아하신 성경과 찬송을 알게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하시기 어려우면 정하실 때까지 저와 같이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을 외워서 찬송하자고 말씀드렸고, 거의 삼개월 간 매주 불렀습니다. 이 찬송 부를 때는 찬송가 덮고 부르자고도 했습니다. 족히 수백번을 부른 이 찬송가를 오늘 수요 예배에서 부르는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라는 가사가 갑자기 마음을 찔렀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왠지 종 이라면 자기를 낮추는 느낌이지만, 어떤 사람의 종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은 자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겠죠?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 되길 원한다." 이어야 할겁니다. 

하나님의 종 이라면 이름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시대의 종들을 보면, 성도 없고, 이름도 주인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붙여지죠. 당연히 ㅣ족보도 없고, 호패도 없고, 이름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놈, 저 놈 소리를 들어도 당연하구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살죠. 종이 되려면 이런 정도의 각오는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이름을 남기라고 합니다. 물론 악명이나, 오명이 아닌,좋은 이름이겠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 처럼, 삶의 목적이 이름을 남기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으로 살려면, 이와 반대되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돈과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 같습니다. 끝 없이 부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이 유지되면 그 다음 부터는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교회던, 직장이던, 자기가 속한 어떤 모임에서도 인정받고, 대우 받고 싶어집니다. 목회자라도 예외는 아니겠죠? 아니 오히려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할 수 있을 겁니다. . 저도 일주일에 두번 씩 양로원에 갈 때면,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주의 종' 을 자처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은 '이름 없이' 살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름 없이' 를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일을 은밀하게 하자는 쪽으로요. 내가 베푼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야 하늘 나라에 온전히 쌓인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사랑을 베풀고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선행은 잊어먹는 병' 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일은 주홍 글씨 처럼 계속 남아서 나를 근신시키고, 사랑을 베푼 일은 모두 까맣게 잊어서, 사랑을 페풀어야 하는데, 한 것이 없으니 큰 일이다. 라고 조바심 내며 사랑을 베풀 대상을 애타게 찾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추구하지 않는 저이지만, 이름 없이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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