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일 화요일

시작과 다른 끝

 지난 글에 쉰들러 리스트에 대해 썼습니다. 30년 전에 이 ㅣ영화를 보고, 사실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양로원에서 매주 거의 두번 씩 설교를 하지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이 이야기는 깊이 숨겨두고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주 전에 같은 교회에 다니던 김 집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양로원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활짝 웃어주시는 분이셨고, 돌아가시기 열흘 전에는 저희를 보시고 두팔을 머리 위로 올려서 하트를 보내주셨었습니다. 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권사님을 생각하니,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양로원 어르신들에게 어떤 말씀을 아껴둔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꺼내기 두려운 내 삶의 고백을 왜 남겨두고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은 그렇게 간절하게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지난 주일에 숨겨둔 설교를 했습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수요일에 이 글의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쉰들러의 이 사건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쉰들러는 아주 세상적인 삶을 사는 머리 좋은 사업가였습니다.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건비 없이 쓰는 기발한 생각을 했고, 여자, 술, 뇌물 등을 이용해서 독일군 간부들을 매수하여, 성공했습니다. 그이 시작은 이랬습니다. 그런데 쉰들러는 수용소 사람들의 불쌍한 삶을 보고,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좋은 쉰들러는 계획을 세우고, 자기의 많은 것을 희생하여 1,100 명이나 되는 유태인의 생명을 구합니다. 이것이 중간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은 쉰들러가 오열하며 하는 고백입니다. "한명은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흔히 많은 사람을 구해서 칭송을 받는 이 중간을 끝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저는 '쉰늘러의 오열'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쉰들러가 이 오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오열은 그의 삶을 끊임 없이 채찍질했을 것이고, 이 오열이 없이 칭송받고, 상받는 상황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양로원 어르신들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양로원에 오시기로 결심하셨을 때, 자식들의 권유를 받아들였을 때,  어떤 생각이셨나요? 아마 본인 보다 자손들의 편의를 생각하셔서 양로원을 선택하셨겠죠?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가까운 곳으로 가니, 매일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아니면,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찾아오겠지? 라고 생각하셨겠죠? 어떤 분은 자식들에게 크게 인심쓴다는 마음으로 들어오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계셔 보니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몇번 씩 찾아오던 자손들이 일주일에 두번, 한번 으로 점점 횟수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이때부터 중간이 시작됩니다. 중간은 섭섭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오면 반갑다가, 돌아가면 쓸쓸하고, 보고 싶은 손주들은 1년에 한두번 볼까?... 이것이 반복되면서, 더 우울해지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내 삶이 실패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라는 좌절에 빠집니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면 되지. 자식들이 와도 반가운 마음 속에 자꾸 상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겠죠? 어떤 끝을 만들어야 할까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허락하신 것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자식이 있다. 이 양로원에 올 자격이 안되서 오고 싶어도 못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이곳에 와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기도해 줄 자식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가끔 찾아와서 얼굴을 보여주니 감사합니다. 자식들과의 추억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전화가 오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밝고 힘차게 말하고, 좋은 말 해주고, 너희들을 위해 기도한단다 라고 말해서 자식들을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스탭 들에게 기분 좋게 대하며,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검사도, 약도, 주사도 다 알아서  해주니 감사합니다. 몸이 아프고, 죽음이 걱정되는데, 예배 드리고, 말씀 들으므로 조금은 평안을 얻을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내 삶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게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시면 좋겠습니다. .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양로원에는 4~50 분 정도가 예배를 드리는데, 이 말씀을 들으며 아주 많은 은혜를 받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작은 얼마든지 세상적일 수 있고,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시작과 다른 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끝은 넘치는 감사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간절함으로 끝을 맺어야 겠습니다.  아니 항상 간절하게 "내가 한번은 더 사랑을 베풀 수 있을거야." 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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