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에 나유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비유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라고 시작하십니다.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한도시에 재판관, 하나님을 두려워하시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하다고 할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어떤 과부가 자꾸 찾아와 번거롭게 했습니다. 과부의 소원은 ‘내 원수에게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과 아주 사소한 원한. 이에 대한 재판관의 결정은 이렇습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원한을 풀어주리라." 이 과부가 한 것은 계속 소원해서 재판관을 귀찮게 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하나님은 물론 들어주실 것이다 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무엇이던 간에 들어주실 수도 있다. 물론 언제? 어떤 방법으로 들어주시는지? 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낙망치 말라고 하신 것은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7절의 전반부에 이렇게 확실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거기에 제가 오늘 발견한 기가 막힌 말씀이 이어집니다. 성경 본문은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입니다. 이 번역은 조금 보완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KJV 를 보면 “though he bear long with them?” 되어 있습니다. "비록 그들과 함께 오래 참으실지라도" 가 어떨까 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 기간 동안 기도자와 함께 기도하는 상황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8절로 이어지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고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미인 8절 후반부에 예수님은 우리를 긴장시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풀이하고 싶습니다. "너희의 기도에 오래 끌지 않고, 속히 풀어주실 것인데, 그렇게 해줌에도 불구하고, 인자가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도하고 있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하나님의 이 한탄을 듣지 않으려면, 우리가 우리 삶의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할,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진정한 기도가 무엇일지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는 과연 어떤 기도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역시 주기도문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나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게 하시고,
오늘도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 마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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