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요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제가 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나님이 세사을 운영하시는 원칙 중 가장 확실한 것이 '공의' 인데 이것을 쉽게 풀어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해야 할 말을 남에게 하며 살아가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 보다는 남이 더 잘보일테니까요.  그래서 이 좋은 말도 말 자체가 남에게 하는 투로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보통 이 말을 남들에게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좋은 일 뒤에 안좋은 일이 따라오면 쓰곤 했죠. 남에게 일어난 공짜는 일단 덮어두고, 이 말을 우리 자신에게 해야 겠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이 좋은 말' 뒤에 두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공짜가 어디있겠어? 이거 내가 잘해서 받은 거 맞아?" 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행운이, 주어졌을 때, 보통 우리는 자신이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아니ㅏ면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자신과 그 행운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공짜가 어딨겠어?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더 노력해야겠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일이 잘 안풀릴 때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의 이세상 삶이 하나도 숨겨지거나, 빠트려지지 않고, 철저하게 심판되고, 상벌을 받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심지어 힘든 이웃을 도왔다고 할 때도, 자만심으로 했느냐? 힘듦을 함께 하는 마음으로 했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제 삶은 아주 확실한 증거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예를 들어보면, 국민학교 4학년 때, 여름 방학 시작 부터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방학이 끝나고도 두달 지날 때 쯤에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간 날 공교롭게 중간고사 시험 날이었습니다. 그냥 시험지 받고 대충 답을 적었는데,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3개월 동안 교과서 한 줄도 들여다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쩧게 이런 황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담임인 이찬무 선생님이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 아픈 중에도 놀지 않고 공부한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정말 쑥스러웠던 이 장면도 제 삶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집중력과 암기력이 꽤 있는 편이어서, 학교 수업시간에 들은 것 가지고 예습 복습도 하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버틴 편입니다. 그런데 두달 동안 수업도 듣지 않고, 교과서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비록 어린 나이지만 생각해 봤었어야 했습니다. 그냥 머릿 속에 "나는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야." 라는 인식을 새기는 데에 일조를 했다 할까요. 

제 어렸을 때, 젊었을 때의 삶은 공짜로 얻은 삶이 었다고, 제 블로그에도 가끔 언급했지만, 서른일곱의 어느 초여름 밤에 들은 하나님의 음성  "지금까지 참 잘놀았지? 이제 부터는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들을 갖지 못하는 시간들이 올거야." 그날 이후로 제 삶은 바뀌었습니다. 참 친절하신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장말 열심히 뛰어다닐 수 밖에 없는 삶으로 바뀌더군요. 한국에서 하루에 1,600 km 를 운전하며 일했다면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새벽 3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밤 12시 조금 넘어까지 전국에 있는 18개 지사를 하루에 돌아보는 황당한 일을 했습니다. 거의 한달에 한번 씩 일년 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부터 이전에 공짜로 받은 삶을 갚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고 기다리다가, 포기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은 갚고 있는 중인지, 열매를 맺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중인지 헷갈리지만, 그냥 제 삶이다 싶어서 받아들입니다. 아니 받아들이는 데서 발전해서 Welcome 하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공짜로 받기만 하다가 삶을 마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애쓰고 고생만 하다가, 열매를 보지 못하고 삶을 마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두가지 경우 모두 자신이 타고 난 운명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라고 보겠습니다. 공짜로 열매만 거두다 간 사람의 저세상에서의 삶은 후회와 고통으로 일관될 겁니다. 반대로 고생만 하다 간 사람은 어떨까요? 이세상에서 힘들게 살았다고 해서 하늘나라에서 무조건 상급이나, 보상을 받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 있었느냐? 어떤 자세로 살았느냐? 입니다. 공짜로 많이 받은 사람이,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고, 이웃을 도우며 살다 갔다면, 하늘 나라에서 충분히 상급을 받을 겁니다. 고생만 하다 간 사람이 매일 신세한탄만 하며, 불평 불만으로 가족과 이웃에게 부담만 주고 갔다면, 하늘 나라의 상급은 없겠죠? 지금 내가 고생만 하고, 애쓰는 모든 수고가 내가 이세상에서 보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지라도 하늘 나라에서 보상을 더 크게 받을 것이고,  자손들에게도 복이 될 것이라고 깨닫는다면, 고생스럽지만 소망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가지만 더 말씀드린다면, 아주 작은 것들도 아주 정확히 평가를 받을 거라는 겁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밥이나 간식을 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돈을 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몇년 간 모든 사람들이 제게 밥이나 간식을 사더군요. 고맙지만 마음을 꽤 불편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제가 남들에게 대접을 하면서도 자랑하거나, 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잖아요?" 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바로 대답을 주시더군요. "그래서 너를 대접하는 사람들이 기쁘게 대접하잖아?" 양로원에서 봉사를 하면서, 저는 우리 삶의 종반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말년을 맞게 될까? 양로원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제 와이프가 앉아있는 자리 근처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와이프는 자주 오늘은 냄새가 너무 나서 정말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흐뭇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당신이 참고 봉사하는 그것으로 당신이 얻을 것이 보이네."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것 하나도 공짜가 없습니다.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빠른 결론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겠어?" 라는 말을 남에게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내 삶을 수시로 비춰보는 데에 사용되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노력 없이 많은 것을 얻고 있나?" "내가 노력 없이 많은 겻을 바라고 있나?" 이렇게 수시로 우리를 경계하고, 힘들 떼에도 "내가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거야 ! " 라는 확신으로 흔들리지 말고 달려가는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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