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교)하나님이 주시는 훈련

훈련에 대하여… 김 성 윤

훈련의 정의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봅니다. 훈련이란 어떤 목표를 정하고 이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지도하며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이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훈련’과 ‘제자 훈련’에 대해 구별하여 간단히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요구하고 인도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자녀로서의 훈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지금 ‘삶’이라는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병인 것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나를 위한 ‘훈련 과정’ 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훈련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 한가지는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를 도달시키기 원하시는 그 지점이 어딘가? 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렴풋이 짐작하시던 그 지점을 확실히 알아야 우리는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공부라는 훈련 코스를 거칩니다. 우리는 유치원때부터 점수를 받습니다.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평가점수는 세상의 점수와는 다릅니다. 공부를 놓고 볼 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 중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느냐? 가 하나님의 평가 방법일 것입니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해야 했던 사람,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조금 노력해 보다가 포기한 사람, 머리가 좋아서 이를 믿고 거의 노력하지 않은 사람, 머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시간을 투자한 사람. 그리고 노력하지 않고 컨닝 등의 편법을 써서 점수를 받은 사람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머리가 나빴던 것이 축복이었을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몸이 약해서 하루에 많은 시간을 잠을 자야만 했던 사람과, 몸이 건강해서 하루에 4시간만 자고도 충분한 사람을 비교해 보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유리한 위치에 있나? 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어린 시절 부모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많이 배우시고, 부유하신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더 많이 주었을까요? 아니면 못배우시고, 가난하신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더 많이 주었을까요? 우리가 가난한데다가 매일 술을 드시고 들어오셔서 싸우시는 부모님 아래서 사는 것과, 모든 것을 넉넉히 제공하시고, 사랑까지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부모님 아래서 사는 것 …..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여건이었을 까요?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사람, 조건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결과를 가져온 사람, 나쁜 조건 때문에 나쁜 결과를 맺은 사람, 나쁜 조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맺은 사람.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시나요? 여기서 말씀드리는 결과라는 것은 장래의 성공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조건 하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애인이나 부부간의 관계에 대한 훈련일 것입니다. 혹시 전에 내가 그사람을 선택했더라면 내 삶은 훨씬 좋아졌을텐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우리의 단순한 선택으로 우리의 삶이 달라졌을까요?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시진 않으실 줄 압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에 따른 아주 적절한 훈련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 확실합니다.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된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틀리지 않을 확실한 선택 기준은 사랑을 베풀 대상을 찾으라는 것일 것입니다. 선택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것을 계산하지 말고, 선택을 통해서 우리가 줄 것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좋은 선택을 한 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서, 기대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를 단련시키실 것입니다. 몇번이나 분노하였는지? 몇번이나 싸우셨는지? 몇번이나 헤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셨는지? 몇번이나 마음 속에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으셨는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셨죠? 대부분이 하나님의 이 테스트에 실패합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부부생활을 서로간에 화를 내지 않아야 하는 게임을 하는 시간이라고. 한사람은 상대방을 화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화를 내지 않아야 이기는 게임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편안하고 흥미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화를 돋우기 위해 상대방을 사용하시는 것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넷째로 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일을 할 뿐이고, 돈을 벌게 해주시고,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돈을 조금 벌면, 본인이 대단한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게 되고, 돈을 벌지 못하거나, 손해를 보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좌절합니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고, 돈을 번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말로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아실 줄 압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나 형벌에 가깝다고 봐야합니다. 조금 뿐이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금전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돈을 던져주시고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테스트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테스트에 통과하려면 주신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필요하고, 다음으로 주신 것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잘 사용하는 것인가는 정말 어려운 것이지만 거리낌도 없이, 미련도 없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지 않으실 경우는 어떨까요? 사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깨닫지 못해서일 뿐, 이런 일은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심는 만큼 주십니다. 어디를 파야할지? 어떤 아이템으로 결정해야 할지? 이런 모든 우려에 관계 없이 노력한 양만큼 주십니다. 주님 안에서 헛일이란 없습니다. 열심히 하면서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자녀의 문제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말 잘듣고 공부 잘하는 자녀를 주시기도 하지만, 정말 어려운 자녀를 주시기도 합니다. 자녀를 통해서 얼마의 기간 동안, 얼마 만큼의 강도로 우리를 훈련하실 지 모르지만 사랑을 잃으면 실패하는 것이고,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귀엽고 사랑스러우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말을 안듣고, 엇길로 나간다고 해서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입니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나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그 명령이 우리에게 주신 해답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께 바쳐보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가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은 성공입니다.

여섯째로 병과 고난으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고질병을 주시고, 불치병도 주시고, 여러가지어려움도 주시고…. 우리는 그 대단한 바울이 자신의 고질병은 고치지 못했던 것을 압니다. 아니 고쳐주지 않으신 것이죠. 예수님이 병을 고치실 때, 이유 없는 고침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병자를 다 고치시지는 않으셨으니까요. 경고하시기 위해 병을 주시기도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벌을 주는 차원에서 병을 주시기도 하고, 뭔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병을 주시기도 하고, 성장을 바라며 병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드물게는 병이 낫는 과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하기 위해 병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의연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병과 죽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건강은 감사할 내용이지 자랑할 것이 못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건강을 본인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911 로 수천명의 사람이 죽었고, 수천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금도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결과는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반대로 병도 감사할 것이지 슬퍼할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병과 건강, 시련과 고난, 모두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불경기가 여러분을 시련으로 이끌지 못하고, 어떤 사람 때문에 여러분이 고난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풀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사람들에게 죽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또 우리의 자녀나 남겨진 사람들을 훈련하실 것입니다.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고 할 경우에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직 훈련이 덜 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실 확률이 높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남겨진 자녀도, 남겨진 사업도, 남겨진 사역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한 여러가지를 가지고 평가를 받아야겠지요! 남겨진 부분들에 대해 걱정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러가지 것들을 다 행해야겠지만,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예수님의 절대 명령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를 지켰는지?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과제이고, 훈련인 것입니다.

아직 살아계시므로, 여전히 기회가 주어져있는 여러분! 여러분의 실패를 깨달으신다면, 그순간부터 여러분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또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질 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기회를 잡으셔야 합니다.

윗부분에서 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훈련은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하나님은이땅의 모든 인류에게 이 훈련을 시키실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훈련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훈련입니다. ‘제자’ 라는 단어가 예수님의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훈련은 너무도 무서운 훈련일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바치고, 끝내는 목숨까지 바치는 훈련입니다. 새신자훈련도 아니고, 집사훈련도 아니고, 장로훈련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훈련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쳤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셨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서 제자는 12명 만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가족도 재산도 명예도,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인 아버지의 제사도 치르지 못하게 하시고 당신을 좇게하셨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도 다 예수님의 제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 중에는 그분들이 과연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좇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 요즘 범람하는 수많은 ‘제자 훈련’ 이 무엇인지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떤 교육 프로그램의 이름으로 생각하기에는 ‘제자’ 라는 말이 너무 부담스러운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왜? 제자훈련을 시키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밟으면 제자라고 계급장을 달아주는 것인지? 제자 훈련이 몇개월 동안 책 몇권 읽으며, 강의 들으며 마쳐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혹 제자훈련이 교회부흥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자훈련을 마쳐야 Cell Leader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인 것 같구요. Cell Leader를 무시하는것은 아니지만, 그 기준은 마치 ‘특수부대 훈련을 마쳐야 동사무소 방위가 될 수 있다!’ 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Cell Leader를 만들기 위한 훈련은 ‘Cell Leader훈련’ 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고, 사역자를 만드는 훈련은 ‘사역자훈련’ 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제자의 길이 어렵지만, 제자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만약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원하는, 준비된 사람이 있다면, 교회는 그를 위한 어떤 적합한 훈련을 제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훈련이란 교육과는 달라서 어떤 목표를 정하고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기에, 흔히 말하는 숙달된 조교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제자훈련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따르는 사람 모두에게 무척 힘든 일일 것입니다. 훈련을 받으려면, 많은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야 하고, 결국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하여야 하고, 항상 약한 자의 편에 서야 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줄 수 있어야 하며, 주님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을 두려워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 가야 하고, 교회는 합심하여 적극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한다면, 교회 일에 열심히 봉사하는 사역자를 만드는 어떤 교회의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1년에 30~40명씩의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을 제자로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제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쉽게 권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한 명만 제자의 삶을 산다면, 그로 인해 교회가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켰노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젊은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난 후,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있나요?

위의 훈련에 대한 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훈련이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훈련이든 순전히 개인적인 저의 소견에 불과합니다.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보시기에 언찮은 부분이 있으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려니 하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끝으로 제 개인의 삶의 소원을 적으며 훈련에 대한 저의 글을 마치려 합니다. 저 자신을 생각해 볼때, 저는 아직 제자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명령 따라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주님 오라시면 감사하며 주님께 가고 싶습니다. 언제 불러주실지? 기대하면서,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면서, 주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주님이 주시는 훈련을 구비구비 맛보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해 짚어보며 쓴 글입니다.>

댓글 2개:

Ike :

참 좋은 글입니다. 제 자신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

SYK :

댓글을 3년이 넘어서야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