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일 월요일

왜? 목사들은...

카셋 테잎 10개 짜리로 된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와 조금 뜻이 맞는 듯하여 아마도
모든 테잎을 최소한 5번 이상 씩은 들었습니다.
교회의 변화와 개혁에 대해 외치는 목사님
이었는데, 처음엔 배울 점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아주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인들은 교회에서 놀지 말고,
"나가 놀아라!" 고 했습니다. 처음엔 밖에서 사랑을
베풀라는 이야기로 느껴졌었습니다.
그런데 나가 놀아라! 는 말의 의도에는 교회 일은
목사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도들은 방해하지
말라는 본심이 담겨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종교 개혁의 주된 요구였던 '만인사제주의'
에 대해서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제이되, 교회에서는 목사가 사제(주연)이고,
사회에서는 교인들이 주연이니, 교인들은 사회에
나가서 사제 노릇하고, 교회에서는 목사가 하자는
데로 순종하라! 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교인들이 헌금만 걷어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한 자세였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들은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한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는 자신이 돈에 대한 계산이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목사가 자랑할 것인지?
이런 그의 본심은 기성 교회에서는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너무나 뻔하므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칙을 세우고 개척한 교회이니 우선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재직도 안뽑았으니 재직회의도 없을 것입니다.
재직회의 없이 어떻게 예산을 쓰고 있을까요?
재정부원 몇명 뽑아 놓고, 그들에게 승인을 받고
있을까요? 아마도 본인이 편의대로 정해 놓은
원칙일 것입니다.
교회 개척할 때, 물주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는
물주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학교를 빌려서 예배 드리고, 동역자를 비싼
급여를 주고 쓰는 결정을 자금 확보 없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고도, 영성도 깊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고가
깊을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인기를 끌었고, 자기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또 급했기 때문에,
그런 그에게 조용히 앉아서 사색할 시간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의 목적이 그 목사님을 비방하는 것은 아닙
니다. 이 글의 동기가 되긴 했지만요.
왜? 목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왜? 목사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자기들끼리 주고
받은 안수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주장할까요?
왜? 목사들은 자신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왜? 목사들은 고사리 손으로 낸 헌금을 받아
먹고 살면서도 부끄럽지 않을까요?
왜? 목사들은 성도들이 우스워보일까요?
왜? 목사들은 강단에 서면 반말을 하고
싶을까요?
왜? 목사들은 성공하고 싶을까요?
왜?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지 섬기려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 최소한 섬기는 척도 하지
않을까요?
왜? 그들은 자신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치 못할까요? 아니 오히려
버린 것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천주교 신부 처럼,
무엇 한가지라도 버렸다면 정말 눈뜨고 못봐줄
어마어마한 위세를 부렸을 텐데..
걱정입니다. 이러다간 '목사' 라는 타이틀이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존경 받는
성직이라는 직업 이미지에서,
지탄 받는, 탐욕스런, 누구에게나 욕을 먹는
모기지 브로커(죄송!) 같은 직업을 가르키는
대명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요?
꿈 같은 일이지만, 목사가 직업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라는 호칭이 자기들끼리 어느
과정을 거치면 주고 받는 타이틀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존경심이 우러나와서 본인
스스로 알아서 붙이는 '어르신' 같은 '존칭어미'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탄식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도대체 이 목사들을 어찌할꼬!!!"
이 참담하고, 암담한 현실 앞에 눈물이 납니다.
제가, 아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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