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키워드인 설교를 듣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두가지 점에서 입니다. 첫째는 용서에 관한 거의 모든 설교의 결론이 일곱번씩 일흔번, 즉 사백구십번이라도 용서해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상대방을 용서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전에 분쟁이 있었으면,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화해하는 방법을 '용서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어떤 다툼이나 분쟁이 있을 때에는 거의 대부분이 상대방이 잘못이 있다고 여기기 마련인데, 분쟁의 상대방이 와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당신을 용서합니다." 라고 말하고 간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사람도 욕을 먹고, 예수님도 욕을 먹겠죠!
둘째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용서받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종교죠?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하나님께 아뢰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깨끗히 씻긴다는 것이죠. 과연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안타깝습니다.
은혜란? 내가 용서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흉악한 죄가 보이면, 남의 죄와 허물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크기가 죄의 크기와 같다고 말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 은혜의 크기는 내가 깨달은 내 죄의 크기와 같다 라고 말입니다
"내 이 큰죄를 어찌할꼬?" 애통하지 않는 분은 은혜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은혜라는 말이 한가지 의미는 아니지만, 기독교의 은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깨닫는 것에 머무르지 마시고, 은혜의 마력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마력이 무엇이냐구요? 바로 이것입니다. 내 죄가 이렇게 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죄에 매여있지 않는 것.
은혜 가운데 거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요! 이것이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용서하십시요!" 와 "용서를 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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