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나도 성추행범이 될 수 있다

지난 봄에 저희 교회에서 주일 낮시간에 한국어로 드리는 예배를 만들기로 하여, 몇명의 사역자가 모였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정도 준비한 끝에 드디어 첫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두주일 쯤 지난 주일 예배에 40대의 한 자매가 새롭게 나왔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그 자매는 한국에서 살다가 홀홀단신으로 작년에 LA에 왔고, 올 봄에 뉴욕으로 왔는데,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저희 교회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저희 교회가 소재한 맨해튼 다운타운의 특성 상, 젊은 청년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미국에 익숙하지 않고, 또 연령차이도 있을 이 자매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아니 사회생활에서도 제 대표적인 단점이 말끝이 짧다는 것입니다. 제 또래나 저보다 젊은 또래들에게 말을 하면 절반은 반말을 하고, 절반은 높임말을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물론 제 어투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분에게는 정중하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상대방의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에, 제 말투는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저와 열몇살 차이 나는 이 자매에게 늘 하던 대로 했고, 의도대로 조금 더 친밀하게 대했습니다. 그것이 그 자매가 교회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자매는 제가 그렇게 대하는 것이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나이를 물은 적이 있는데, 자기 나이가 꽤 많다고 대답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한번 더 물었을 때, 자신의 나이를 이야기 했지만요.

제 기억으로 그 자매와 같이 예배드린 것이 대여섯 번 정도인데, 만나면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 어깨를 두드린 적이 두번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매의 말로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한 것이 두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번은 제가 예배시간에 먼저 와서 앞줄에 앉아 성경을 읽다가 보니, 그 자매가 와서 제게 아는 척도 안하고 제 뒷줄에 앉아있기에, 반갑기도 하고, 왜 아는 척 안했느냐 라는 제스츄어로 그 자매의 무릎을 툭 친 일인데, 변명같지만 왜 무릎을 쳤냐 하면 그 자매가 제 오른쪽 뒷쪽으로 앉았기 때문에 제가 팔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무릎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번은 제가 교회 밴을 운전하여 뉴저지에 있는 교회에 예배들 드리러 갔다 오면서, 청년들이 앞좌석에 앉으려는 것을, 그 자매가 제일 연장자이기도 하고, 또 앞자리에서 뉴저지의 풍경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 자매를 위해서 비워두었는데, 그 자매는 제일 늦게 차에 오르면서 앞좌석이 비어있는 데도 뒤쪽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앞에 타 !"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앞에 탔고, 교회로 잘 돌아왔습니다.

몇번 만나는 중에 제가 근황을 물으면 평범하게 대답하는 짧은 대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달부터 제가 같은 시간 대에 양로원 사역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 되어 그 자매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한달 정도 참석하지 못했구요.

지난 주가 교회 창립기념예배여서 오랜만에 함께 모여 예배들 드리려는데, 저를 보자마자 그 자매는 표정이 굳어지며 제게 할말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자마자, 격앙된 소리로 자기를 어떻게 보고 그렇게 대하냐고 했습니다. 자기가 나이가 많다고 밝혔는데도 왜 자기에게 자주 반말을 하며, 왜 자기 무릎을 쳤냐는 것입니다. 특히 무릎을 친 일에 대해서는 성추행으로 고소를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소리에 저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저는 아주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내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자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자매에게는 특별히 더 정중하게 대하겠다고 덪붙였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니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자매에게 잘해주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창립예배가 끝나고 뒷풀이를 하는 곳에서도 그 자매를 쳐다보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그 자매도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봅니다. 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잘못으로 나는 한사람을 잃었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그 자매는 저의 행위로 인해 상처를 입었고, 또 제게 말한 것으로 인해서 또 한번의 상처를 입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속시원히 하고, 제 사과를 듣고는 마음이 조금 풀렸다면 정말 다행이지만요.

추측이지만 조금은 제 미안한 마음을 줄여준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와 함께 드린 예배를 책임지는 젊은 목사님께 이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렸더니, 즉각적으로 "사과는 하셨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고 했더니, "그럼 됐습니다." 하시는 것입니다. 왠지 목사님의 대답이 너무 쉽다라고 생각하다가 제 편한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자매가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말씀드렸고,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이 그렇게 마음이 상했으면 제게 말씀드려서 사과를 받으라고 어드바이스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성추행' 이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교회 내에서 있었던 그 자매와의 몇번의 만남에서 0.1% 의 성적 생각도 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자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돌아올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고 할 경우에도 정말 언행에 신경을 써야겠구나 라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그 자매가 정말 저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교회는 정말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어떤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여신도를 성추행했다.' 고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겠죠. 저는 코트에 서게 된다면 변호사를 쓰지 않고, 제 스스로 담대하게 있는그대로를 말할 것이고, 혹시 그로 인해 제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하나도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교회는 큰 시련을 겪게 되겠죠?

한국의 어떤 잘나가던 젊은 목사가 여신도를 성추행했다고 해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던 사건이 있었죠? 그때 저는 그 목사를 욕하지 않았었는데, 그랬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좀더 근신하는 마음으로, 좀더 행동과 생각을 분별하며 신중하게 살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 사건이 제게 주는 것,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이 사건을 보시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남을 비난하는 일을 조금은 더디하는 기회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그 자매의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실 것을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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