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7일 월요일

잠언을 묵상하며

어려서부터 잠언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생각과 제 생각이 많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솔로몬에 대해 그다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서 일까요? 잘알지도 못하면서 반박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잠언의 어느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봉사하는 양로원에서 창세기부터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잠언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잠언의 중심단어는 '경외(敬畏)' 와 '근신(謹愼)' 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근신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먼저 경외에 대해 살펴보면, 히브리어로 경외하다라는 동사는 '야레' 이고 그 뜻은 '두려워하다' 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두려워하다' 라는 단어에서 어떤 다른 뜻을 찾아내려 하고, 때로는 경외라는 뜻을 호도하기도 하지만, 저는 경외란 그냥 두려워하다 라는 뜻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번역하면서도 아주 단순하게 'fear'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신학자들은 이를 '공경하여 무서워하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근신에서의 근(謹) 자는 삼가하다 라는 뜻이지만, 말이라는 자와 재앙이라는 자가 붙어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愼) 자 역시 삼가하다 라는 뜻이지만, 마음이라는 자와 진실하다는 자가 붙어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에 거짓이 없고,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샤마르' 인데, '지키다' 라는 뜻으로, 에덴동산을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하셨다 라는 부분에 사용되었고, 계명을 지키다라고 할 때도 쓰였습니다. 잠언 13장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생명을 보존하나." 에서 단어의 뜻이 잘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두려워하다' 라는 '야레'와 '지키다' 라는 '샤마르'를 경외와 근신으로 번역한 번역자에게 감탄과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단어만 가져도 인생을 성공으로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근신하며 살면 되는 것이죠.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면 우리는 그분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체의 정욕과, 시기와 질투, 게으름을 극복하기 굉장히 어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소욕까지도 그분 앞에 숨길 수 없으니, 우리는 그분 앞에 서기 두려울 수 밖에요.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그분에게 용서를 빌며 살아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에게 벌을 받지 않으려면, 근신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죄가 우리 입에서 나옵니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비방하고, 부주의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서 근신하며 산다!"는 것이 왠지 조금 약해보이지 않으세요? 조금 비굴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를 완성시키는 "예수님의 사랑" 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악하고, 약한 죄인인데, 그 죄인을 위해 창조주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나를 위한 희생의 사랑. 그 사랑의 감격으로 인해 근신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을 '하나님의 사랑' 이 잠언에는 들어있습니다.

조금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 날마다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잘살겠다고 맹세해야 합니다. 그러니 근신할 수 밖에요. 그런데 이 과정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 사랑으로 더 근신하며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이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성공적으로 끝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잠언을 통해 주시고자 하시는 메세지입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