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금요일

예레미아 애가에서

예레미아가 말하는 소망은 왠지 다른 선지자들이 말하는 소망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시아 왕 때부터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까지 다섯 왕의 치하에서 40년에 걸쳐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던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보고, 바벨론에 지배를 받으며 고난과 낙심 속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저는 예레미야 애가 3장17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레미아의 특별한 소망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17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오화는 선하시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 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

구구절절이 제 마음에 와닿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능력은 안되지만 간단한 해설을 붙여보고자 합니다.

"내가 복을 내어 버렸음이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점령되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외세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초한 일이라고 단정합니다. 여호와로부터 끊어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로부터 멀어짐으로 힘도 소망도 모두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현재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당하는 고초와 재난의 원인을 인식하고 이를 통회자복하며 받아들였더니, 오히려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떠났기에 고초와 재난을 겪고 있지만, 여호와께 돌아가면 그의 긍휼하심이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여호와의 긍휼을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 왜 내 심령에 이를까요?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부터,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 최면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라고 표현함으로 우리가 이제 전적으로 여호와만을 바라고 산다고 규정짓고, 그러니 당연히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야 한다고 강청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 속에 인내하기를 바라십니다.환란과 시련을 극복하는 가장 원시적이자, 최고의 방법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십니다. 구한다는 것을 저는 간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을 반성하고, 같은 잘못을 두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  젊어서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하셨을까요? 멍에를 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선은 삶의 고난과 좌절 등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진 것을 멍에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일생과 멍에의 관계는 다음의 네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겠습니다. 젊어서 멍에를 메는 사람과 나이 들어서 멍에를 메는 사람, 그리고 평생 멍에를 메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 젊어서 멍에를 멘 사람 중에서 평생 멍에를 메고 사는 사람과 젊어서 멍에를 멨다가 나이들어서 멍에를 내려 놓는 사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사람서부터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사람의 순서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최악은 평생 멍에를 메어보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고, 다음은 나이 들어서 멍에를 메는 사람, 셋째는 젊어서 멍에를 멨다가 나이 들어서 벗는 사람. 그리고 최선은 젊어서부터 계속 멍에를 메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정반대인 이 순서에 대해 저는 확신합니다. 이 멍에를 메게하신 분이 하나님 이심을 인지하시면 됩니다. 멍에를 멘 기간이 하나님과 함께 한 기간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겠습니다.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으리로다." 입을 땅의 티끌에 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 절에 나오는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겠습니다.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입을 땅의 티끌에 대는 것. 저항도 못하고 뺨을 맞는 것도 억울한데, 반대편 뺨도 돌려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소망의 끄트머리를 접할 수 있고,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변치 않는 영원한 돌보심이 경험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본인이 땅바닥에 무릎을 끓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비참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본인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뺨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어떻게 해야 소망을 접할 수 있는 지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이 자신이 저지를 잘못 때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 보다 너무 큰 처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 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더 깊이 뉘우치는 것이 바로, 땅에 입술을 대는 것입니다. 뺨을 돌려대는 것이죠.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징징 짜고 있는 자들에게 인자하지 않으십니다. 뜨거운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주께서 우리에게 고생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생하시게 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는 "너 고생 좀 해봐라!" 하는 의도가 아니고, 고생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기대하라는 의미입니다. 주께서는 실수로 우리를 고생하게 하실 리가 없고, 능력이 안되서 우리를 고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못하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생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 그것이 고생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바라기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시길 바라고, 그 깨달음을 통해 평생을 감사 속에서 살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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