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영화 '곡성' 을 통해 본 악마

곡성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제게는 꽤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곡성을 보신 분들이 악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리뷰는 아닙니다.

세상에 악마는 존재합니다. 귀신이나 미신도 존재하지만,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혹시 귀신이나 미신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만, 악마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악마는 접하게 되면 큰일나는 존재로 생각하시지는 않나요?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이나 미신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나타나지만, 악마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자주, 아니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귀신이나 미신은 이세상을 떠돌다가 저세상으로 가거나 소멸되는 존재입니다. 기도로 몰아낼 수도 있고, 굿이나 부적으로도 떨어낼 수 있습니다. 저세샹으로 보내줄 수도 있죠. 하지만 악마는 영적 존재이고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이세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존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고, 형체도 없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아 조정하며, 귀신이나 미신들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굿이나 능력있는 사람들의 기도로도 물리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악마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이세상 삶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곡성을 통해서 보면 악마는 일본 사람을 통해 나타났고, 그리고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무당 황정민을 조정합니다. 무당이란 직업 자체가 귀신이나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의존해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당은 무조건 악마에 대항하지 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에 반해 착한 귀신이 들린 미친 여자 천우희도 등장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귀신 정도가 아니라, 악마가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인간에게 기회를 주는 영적 존재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악마와 타협해 보려는 부제도 등장하고, 악마에 너무 겁을 먹는 주인공의 동료 경찰도 나옵니다. 나이 들은 신부는 악마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절대자 하나님은 어디 있냐구요?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자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룰을 정해놓시고 지켜 보고 계십니다.

곡성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두가지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악마를 상대해서 실패하는 비결(?)입니다. 악마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미혹과 공포 입니다. 악마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어 주인공으로 하여금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것은 악마가 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인공과 친구들은 일본 사람과 좀비를 죽이는 것으로 됩니다. 사실은 한명도 죽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구요. 그들은 모두 악마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씻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큰 죄를 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악마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삼촌의 파멸에 대한 분노와 알량한 신앙심으로 악마를 찾아나선 젊은 부제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우스광스런 타협을 악마에게 제시합니다. 악마가 아니라고 말하면 돌아가겠다고 말입니다. 만약 일본사람이 악마라면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것이므로  찾아가서는 안되었고, 악마가 아니라면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므로 그를 찾아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나 특별한 준비도 없이 호기롭게, 아니 무모하게 악마를 찾아가서는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 처럼 느껴지자 타협해 달라고 사정을 하다가 악마에게 사로잡힙니다. 무모한 사람도, 악마와 타협하고자 하는 사람도 다 악마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악마가 공포의 대상임에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겁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악마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아예 회피하면 어떻겠냐구요? 성직자로서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안위만 챙기려는 사람도 악마의 덫에 걸릴 사람입니다. 그 보신적인 나이든 신부의 말로가 가장 비참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둘째는 악마의 덫에 걸렸다 할지라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말입니다. 악마와의 싸움은 악마를 이기거나 죽이는 싸움이 아닙니다. 악마의 미혹에서 나를 지키고, 끝까지 견디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스스로 나와 내 주변에서 떠나게 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영화에서 "악마는 낚시를 한다." 는 표현은 참 좋은 표현이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의 앞에 항상 악마가 드리운 미끼가 놓여 있습니다. 그 미끼를 주인공의 딸이 물었는지? 주인공이 물었는지? 아니면 가족 중에 누가 물었는지? 는 잘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악마가 그 가정에 개입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 지에 촛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 약 먹여서 되냐고 와이프를 윽박지르는 주인공의 태도에서 그 가정이 가진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에는 소극적이고 게으른 것, 반면에 자기 가족에 관련된 것에 있어서는 적극적이고 물불 안가리는 이런 불일치도 악마가 개입할 틈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린 딸 앞에서 부부의 정사장면을 자주 들키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저를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보는 아빠의 단면들입니다. 우리는 이 평범함 속에도 많은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인공의 엄마는 용한 무당의 도움을 받자고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남의 도움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생각은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목사나 무당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은 충고로서 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충고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 된 것이 있으면 고치면서 버텨야 악마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축사에 재능이 있는 목사나 신부, 용한 무당은 귀신이나 미신을 쉽게 쫒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악마를 쫒아내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귀신이나 미신의 숙주가 되었던 사람이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악마는 우리가 이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저세상으로 보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묵인 아래,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마에게 넘어갈 사람과 넘어가지 않을 사람을 구별하시길 원하시죠. 그래서 하나님은 악마를 이길 힘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넘칠 때, 우리 가정에 사랑이 넘칠 때, 악마는 근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내 안에 사랑이 회복되면, 악마를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이 곡성이란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 아닌 지는 모르지만, 악마와 세상과의 관계를 참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설정은 멀리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주변에 쉽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 속에서 모든 것은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실 수 있는 안목도 키우시기 바랍니다.

부다, 사랑의 힘으로 악마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오래 참으시고, 악마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온유하시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만하지 마시고, 질 것 같아서 겁이 날지라도 끝까지 버티시고, 항상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감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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