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0일 수요일

부활만 있었다면

 
부활은 엄청난 사건이고 기독교인 모두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열두 제자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어 부활은 마냥 기쁜 일 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흩어진 유대 민족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믿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유대민족의 구원을 위해아무런 힘도 쓰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슬픔, 절망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자신들의 생명도 위협을 받게 되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예수님을 부정한 베드로나, 예수님의 곁에 있지 못하고 도망친 제자들에게는 죄책감도 더해졌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상상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천군천사와 함께 오시지도 않았고, 영광스럽게 변화하지도 않으신, 알아볼 수도 없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셨습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시고, 평범한 말씀 나누시고 자신이 예수님 이심을 입증하시는 일이 전부라고 할 만큼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슬픔과 죄책감을 거두어주시고 실낱같은 희망을 주시는 정도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라고 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더니 무책임하게 다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당부였기에, 그리고 몇 날만 기다려보면 될 것이기에 그들은 모여서 기도했을 겁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조차 뿔뿔이 흩어졌었습니다. 대부분이 그들이 있던 곳,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은 그들에게 놀라움이었지만, 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당부하시고 그들을 다시 떠나신 지 열흘도 못되어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머물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제자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일이 기도한 지 열흘도 못되어서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그 열흘이 한계였던 것이겠죠? 예수님의 유언도 그들을 열흘 밖에 붙들어 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 들을 포함 몇몇은 평생이라도 했을 수 있겠지만, 모두가 함께 참을 수 있는 기간은 열흘 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기록한 것이 없지만 '그들이 다' 라는 표현을 통해서, 또 성령이 '온 집에 가득하며' 라는  표현에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셨다고 판단합니다. 사도행전 1장15절을 보면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자의 수는 "약 백이십명이었더라" 고 되어 있습니다. 
이 백이십명 모두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바뀌었고, 세상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최선을 다한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보여주신 기사와 이적도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으로 우리는 이정도 밖에 못합니다. 많이 깨닫고, 많이 은혜 받은 우리들의 삶은 어쩌면 성령 받기 이전의 제자들의 삶과 같은 수준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동역하던 제자들에게 비교하는 것은 너무 제자들을 낮게 본 것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 비슷한 수준으로 비교해도 좋겠습니다. 
성령은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성령의 힘은 그들을 순교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당당하게, 기쁘게 삶을 버렸을 겁니다. 어떤 제자에게는 몇년 간의 사역을, 어떤 제자에게는 몇십년 간의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수많은 위기를 피하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하면 됐다." 고 하시며 그들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고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성령’ 입니다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성령을 어떻게 받았느냐가 아니고, 성령을 받은 후에 변화된 그들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백이십 명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들이 다락방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취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은 당장 예루살렘 성으로 갔습니다.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에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들 모두는 격앙되어 있었을 겁니다. 근심, 걱정, 슬픔 등은 더이상 그들을 붙잡지 못했을 겁니다.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국민학교 6학년 때 확실히 성령을 체험했는데, 그때의 느낌을 정리해 보면 온몸에 열이 있는 듯, 왠지 모르게 흥분되어 있었고, 머릿속에 온통 예수님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흥분은 몇일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뭔가를 해야 하는 갈급함은 몇년 간 저를 사로잡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깨달음에 성령의 뜨거움이 더해지지 않으면, 성령의 뭔가 하게 하는 힘이 더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인해 제자들이 변화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일 겁니다. 결국  깨달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사랑이 성령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 그들은 세상을 이기었던 것이죠.  

'부활만 있었다면' 그들은 세상을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한때의 깨달음과 은혜를 떠올리며 그냥 사라졌을 겁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원하는 우리 모두는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아니 내 안에서 인도하시고, 명령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은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며 살기 위해 잃을 것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을 믿고, 우리 삶을 맡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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