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일요일

내 삶의 51번째 부활절

 양로원에서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벌써 51번째의 부활절을 맞았더군요. 제가 성령을 체험한 것은 국김학교 6학년 겨울 성경학교 때인, 1973년12월20일 경이었습니다. 이로부터 몇년 간은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신실한 크리스찬이 되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부활절이 51번째의 부활절인 셈입니다. 물론 국민학교 들어가기 이전부터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 어머니와 누나들과 함께 빠지지 않고 참여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찬으로 살기 원하면서 맞게 된 부활절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 쉬흔한번의 부활절을 통해 나는 얼마나 부활을 기뻐하고, 감사했을까? 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치 않습니다. 

저는 감리교인이기 때문에, 예배나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교회력을 참고합니다. 교회력은 대강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년이 되면 신년 예배를 드리지만, 1월1일부터 6주간은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6주 간은 사순절로 예배를 드립니디ㅏ. 그러면 종려주일을 맞게 되고, 고난주간을 거쳐서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부활주일 이후 6주 간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드디어 성령감림절을 맞이 합니다. 성령강림이 기독교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성령강림후 첫째 주일로 시작해서 무려 스물일곱 주일을 성령강림의 이름 하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습니다. 성탄절까지 5주간을 성탄을 기다리는 예배를 드리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림으로 한해가 끝이 납니다. 매년 이 순서를 반복하며 예배를 드려온 겁니다. 

생각해 봅니다. 뜨거웠던 학생 시절의 부활절과 지금의 부활절은 어떻게 다른가? 내 신앙은 해를 지날 수록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해를 지날 수록 열정이 사라지고, 퇴보하고 있는지? 고난주간에는 어떤 마음이고, 성령강림절을 맞을 때는 어떤 마음인지?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불편해 집니다. 매년 성숙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속시원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예배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절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은혜받고, 이미 기뻐했고, 이미 동참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냥  이런 절기에 또 같은 행사를 하고, 설교를 듣는 것 다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당연히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때 어느 교수님이 School 의 어원이 Screwing  에서 나왔다고 하신 것을 들은 것 같습니다. 나사가 박힐 때 고점과 저점을 반복해서 지나면서 앞으로 진전하듯이 이렇게 서장해가는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우리는 Up 될 때가 있고, Down 될 때가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서 깊숙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Up & Down 을 반복해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활절은 정말 감격하며 기쁘게 맞기도 하고, 어떤 부활절은 바쁜데 귀찮게 뭐 행사기 이렇게 많아? 하면서 맞을 수도 있겠죠. 저도 매주 설교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부활절 설교를 열번 이상은 한 것 같습니다. 비숫한 설교를 또 해야 하나? 하는 부담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부활절에는 뭔가 조금은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설교한 자료들이 남아있으니, 작년이나 재작년 설교 때의 내 마음을 알 수 있옸습니다. 그러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 맥락이 연결이 잘안되지만, 쉬흔한번 째의 부활절을 지나면서의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앞으로 맞게 될 부활절을 생각하기로. 쉬흔한번을 맞으면서 이정도 밖에 안된 나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몇번 남았을지 모를 부활절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앞으로의 부활절은 왠지 좀더 새롭고 감사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제가 맞을 남은 부활절이 제가 지난 부활절 보다 훨씬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다가 올 성령강림절도, 대강절도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꼭 기록을 남겨놓으려 합니다. 내년과 후년, 그리고 마지막 부활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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