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교)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다면…

신앙이란 것이 뭔지도 모를 중등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믿는 사람? ” 80% 이상의 아이들이 믿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성경에 써 있잖아요! “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전제 아래 먼저 두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왜 창조하셨나? “ 이고 둘째는 “어떻게 창조하셨나? “ 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왜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셨나? “ 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생각해보기 귀찮다! “ 라는 부류입니까? “성경에 써있잖나! “ 라는 부류입니까? 아니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는 부류입니까? 혹시 당신은 “당연히 잘 알고있다! “ 부류입니까?

일단 우주와 그 안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그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그의 능력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를 아는 일에 저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일일뿐 아니라, 알려주셔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이나 물리에 나오는 간단한 공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공식을 써서 어렵지 않게 답을 찾고, 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공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우리 눈에 보이는 간단한 자연현상들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수준이고, 또 알려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수준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 기도를 해볼까요? “하나님 당신이 우주만물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알려주세요?" 아마도 알려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덧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원시인에게 5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을 알려준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가르쳐 준 사람이 욕을 먹을 것입니다.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은 아무 대답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라도 아무 소리 않할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생을 걸고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현상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과학자들에게 어떤 힌트를 주시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가 소위 ‘천재’ 라고 부르는 그들의 놀라운 발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어떠허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것을 찾아냈을까? 갈릴레이나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사회와 과학의 발전보다 조금 앞서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과학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이치와 신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주만물이 창조되고 운영되는 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에게 맡겨 놓고, 그들이 발견해서 잘 설명해 주는 것을 통해 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촛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지표를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몇가지로 모아집니다.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랑 받고, 사랑 하시려고.” 그리고 이렇게 비유를 합니다. 당신은 왜 자식을 낳으셨습니까? 모두들 쉽게 대답은 못하고 잠시 생각하시지만,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랑 받고, 사랑하려고 일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분신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도 이유가 일 것인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분신인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성장 발전하는 모습을 보시기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는몇가지 주요하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우리 자식만 집중적으로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에게 절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과 관계 없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 자식만을 끝까지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원칙을 지키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어쩌지 못하면서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선택한 종교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듯,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식에게 마음 상하지 않게 당신을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에 따라 살기 원하는 자식을 왜 내치시거나, 모른 척하시겠습니까!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왜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셨을까?” 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부분에 대해 민감한 이유가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성경에서 인간이 왜 불완전해 졌는가? 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은 거의 완전했다고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뱀이 유혹에 넘어가면서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왔다! 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이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 를 연 것과 흡사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그 설명은 해결치 못할 또 한가지의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모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는 사건까지를 연출하게 되셨나? 를 설명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셨다! 당연히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전제하지 말아봅시다. 이와는 전혀 다른 가정을 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에덴동산의 아담이 아니고, 지금 이대로의 인간이다. 착하게 살 수도 있고, 악하게 살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영이 항상 계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라! 양심대로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하고 계속적으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인간들은 구체적인 법을 원했고,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다. 율법에는 제재가 따르기 마련이고, 결국 인간들은 자신들이 원한 율볍에 의해 징계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인간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율법을 지키기도 쉽지 않은데, 인간 본성에 내재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 이대로 형벌의 날을 기다려야 하나! 아! 나는 죄인이다.” 하며 두려워하며, 탄식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기쁜 삶을 살지 못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회복시키시기로 하셨다. 거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더 이상 죄로 인해 인간들을 심판하지 않기로 하셨다. 그 증거로 죄없는 독생자 아들을 이땅에 보내어 가장 참혹한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러면서 그 아들의 3년 간의 공생애를 통해 모든 인간에게 본이 될 모범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셨고, 하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설 때의 기준을 바꾸셨다. 얼마나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었나? 를 가지고 너희들의 삶을 평가할 것이다.’

위의 간단한 설명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아담으로부터, 노아를 거쳐서, 모세의 십계명에 의해,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계속 변질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금 현재 이대로의 모습이, 이대로의 파라다임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본 모습입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인간, 지금 이대로의 나는 바로 하나님의 ‘걸작품’ 입니다. 하나님은방향을 바꾸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간절히 원하는 것에 응답하시기도 하고,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간섭하시기도 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믿는다면, 당신이 완전할 수 있는 존재임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은 바로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당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걸작품’ 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실패자’ 로 만들지 말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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