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에 교과서에서 친구를 대신해서 목숨을 걸고, 감옥에 갇히는 이야기에 대해 배웠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해야지! 또는 나도 저런 친구를 가졌으면... "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꽤 들어가면서도 저는 어리숙하고 단순하게, 아니 좋게 말하면 꽤 순수하게 친구란 개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떠나갔습니다. 아쉽게도 그들을 잡지 못했습니다.
나이 쉰을 넘긴 지금, 내 곁에 과연 친구가 있는 것일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보면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그 친구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와 저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얼마 전에는 "안보고 사는 것이 좋겠다!" 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친구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논쟁도 했습니다.
어릴 적 생각을 떠올려봅니다. "나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아니 반대로 "내가 기꺼이 대신해 죽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나?" 를 자문해 봅니다. 생각하다 보니 웃음이 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목숨이 여러개 있어야 겠구나!
언젠가 친구가 한명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슬프지만 "그래, 이대로 살지, 얼마나 더 잘살겠다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나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친구가 있다면? 내가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짠해옴을 느꼈습니다.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친구에게 아주 큰 슬픔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란 양방향이어야만 할까? 일방향이면 안되는 것일까?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꼭 그 친구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야 할까? 내가 그 친구를 위해서 죽어줄 수 있다고해서, 반대로 그 친구도 나를 위해서 죽어줘야 할까? 당연히 대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저는 진정한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제 목숨이 별로 가치없는 것이어서 그럴지는 모르지만, 저는 기꺼이 대신해 죽어줄 수 친구를 여러명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친구에 대한 기대치도 높을 수 있고, 가끔은 부딪치기도 했던 것이었습니다. 문득 저는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알까 몰라? 이 친구들도 '친구' 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저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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