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분 중에, 열아홉에 미국에 와서 20대 초반에 Jewish 와 결혼하여, 30여년 간 너무 풍요롭게 사시다가, 남편이 돌아가시고는 완전히 코리안 커뮤니티로 와서 네일살롱에 관련된 사업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사장님을 통해서 가끔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듣곤 하는데, 어제 잠시 만나 커피를 마시다가,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장님이 아주 오래전에 어떤 큰 기업을 운영하는 Jewish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가셨었답니다.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우유를 달라고 하니까, 그 아이의 엄마는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의 고급 크리스탈 잔에 우유를 따라 주더라는 것입니다. 사장님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한마디 하셨답니다. 그렇게 비싼 컵을 사용하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하니, 그 아이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저 아이를 CEO로 키우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장님은 돈 많다고 유세하는 것 아니냐는 마음에 조금은 언찮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아이 엄마의 다음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답니다. 아이 엄마는 주방에 있는 캐비넷에서 깨진 잔 몇개를 꺼내 보여주면서 "귀한 것을 다루어봐야, 깨트려봐야, 귀한 것을 느끼고 아낄 수 있는 마음을 키울 수 있죠. 무엇보다도 사람을 아끼는 CEO 를 만들기 위해서 신경을 쓰고 있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좋은 품성 하나를 키워주기 위해서 신경을 쓰고 투자하는 Jewish 들의 주도면밀함이 재삼 느껴지더군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품성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는 제게는 참으로 귀한 이야기였습니다. 교육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제 교육은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땅에서 Jewish 보다 더 부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꿈꾸는 저로서는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느끼게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이 이야기를 해주신 그 사장님은 이어서 자기의 작은 꿈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도자기를 만드셨었고, 최근에는 거의 사업도 신경쓰지 않으시고 도자기에 매달리고 계시면서 생각하신 것인데, 한국 사람들의 밥그릇을 큼직하게 바꾸어나가는 일을 하시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우리의 밥그릇이 점점 더 작아졌다고 하시면서, 작은 그릇에 꽉꽉채우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더 여유 없이 각박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도자기를 만드시면서, 큼직하고 여유있는 밥그릇을 만들고 있답니다.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 여유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수납공간을 조금 더 차지하고, 설겆이하기 조금 불편해도, 품위있고, 여유로운 큼직한 밥그릇으로 우리의 마음과 사회를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만드실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장님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제가 그 사장님에게 틈나는 대로 주장하던 것이었습니다. 그 Jewish 는 자기들을 위해서 좋은 품성을 키워주려는 것이지만, 그 사장님은 코리안커뮤니티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좋은 품성을 키워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장님과 저는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역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보다 너무 많이 앞서있는 그들에게 배우지만, 언젠가는 그들보다 더 세상의 주역이 되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며 살아갈 그때를 그려봅니다.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어떤 Jewish 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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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입니다. 특히 큰 밥그릇에 대한 이야기는 읽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설겆이를 자주하기 때문에, 큰 밥그릇 싫어했었거든요. 반성하며 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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