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자식 사랑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 쉽고도 어려운 문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자식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세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 말들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도 포기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잘생각해 보시면 여기에는 조건과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본인이 수영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물에 빠지면 물에 뛰어들어가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반사신경과도 같은 것이죠. 그런데 만약 10초만 생각을 한다면 수영을 못하는 부모는 물에 뛰어들지 않을 겁니다. 도구를 찾던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든지 할 것입니다. 잘생각해 보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데에는 자식의 나이도 관계가 있을 듯 합니다. 자식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할 나이 때에는 보통의 부모들이 목숨을 내놓는 본능적인 사랑을 보여주곤 합니다. 하지만 자식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환경과 조건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어 갑니다.

미국에서 돈 많은 유대인들은 60살이 넘어가면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잠깐 입원할 일이 있더라도 자식에게는 절대 알리지 않습니다. 부모의 재산을 빨리 물려받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자식이 나이들어 병원에 입원한 부모를 병 잘고치고 퇴원하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배은망덕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릴 부모는 없을 겁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많이 늘고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대안이 없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정말 원수 같은 자식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의 아들이 미군 특수부대에 갔다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탈영을 했습니다. 군에서는 그 아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을 거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아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도 듣지 않고 거의 집에만 있다가 가끔 이상한 친구들을 만나고 오곤 한답니다. 나중에는 가족들이 모두가 그 아들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한번은 자기가 그 자식을 죽이고 같이 죽으면 나머지 가족이라도 편하게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칼을 들고 아들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 나이 든 부모를 구타해가며 돈을 뺐어가는 자식들에 대해 듣곤 합니다. 자식을 죽이는 부모, 부모를 죽이고 돈을 뺐어가는 자식...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들이 이 사랑을 변하게 한다 할지라도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부모자식 간의 인연을 팔천겁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부부간의 인연이 칠천겁 임을 감안하면 그 인연의 깊이가 끊어질 수 없는 것이겠죠. 말을 안들어서 죽이고 싶을 때가 많은 자식일지라도 몹쓸 병에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근본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이 사랑을 변하게 하고, 막고 있을까요?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들도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그다지  확고한 원칙이나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왜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 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의 자식들이 스스로 우리를 부모로 선택해서 이세상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당연히 좋은 마음으로 선택했을 겁니다. 저 부모 밑에 가면 행복하게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좋은 가족을 이룰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결합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자신을 선택해 준 자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겁니다.

두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자식들과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엮여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덕과 죄가 다 자식에게 이어지고, 자식들의 삶이 부모의 삶의 평가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살면 자식들이 복을 받고, 내가 못살면 자식들이 벌을 받습니다. 자식들의 삶은 부모의 삶의 열매여서, 우리들의 삶의 최종 평가는 자식들의 삶을 통해서 끝이 납니다. 자식들이 잘살아야 내 삶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하여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경험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지극하게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는 사랑하는 연습, 자녀에게는 사랑을 받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연습인 것입니다.

자식 사랑은 나를 선택해준 자식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잘해야 자식이 잘되고, 자식이 잘되야 내가 잘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식들이 잘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며,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삶은 축복된 삶입니다. 왜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를 위해서!" 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미 너무도 잘알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제가 써보겠습니다.

첫째, 오래 참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참는 것이 오래 참는 것이냐구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생명 다하는 날까지죠. 우리가 죽기 직전에, 아니면 장례식장에 와서도 우리를 열받게 하는 것이 자식일 수 있습니다. 몇년에 한번 씩이라도 기특한 면을 보게된 것을 감사하며, 아니 어릴 때 우리를 보고 방긋 웃어주던 그 미소,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든 모습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던 그 순간들만 있어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그냥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둘째, 성내지 않아야 합니다. 첫째와 별로 다를 바 없지만, 또 쓰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성내는 것은 정말 손해입니다. 정말 화가 날때는 말을 닫고 자리를 피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첫째나 둘째나 사실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란 생각이지만, 그래도 계속, 끝까지 애써야 합니다.

셋째, 온유하면서 엄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겠죠? 그러기에 남이 아닌 내 자식에게는 엄격해야 합니다. 온유함과 엄격함의 조화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엄격하다는 것은 가르치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화를 내면서는 제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며 신나게 뛰어놀 경우에 아이 부모의 대응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죠 !
1. 잘 노네! 하며 신경쓰지 않는 부모
2. 아이에게 인상쓰며 얌전히 있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부모
3. 얼른 아이에게 가서 아이를 조용히 타이르는 부모
여러분 대부분이 3번 처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시겠지만 저는 3번처럼 하는 부모를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온유해야 교육효과가 높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떠올리는 우리의 모습이 늘 온유한 모습, 온화한 미소이면 좋겠습니다.

넷째,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아니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뭐든지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철저히 준비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걸음마도 가르치고, 자전거도 가르치고, 한글도 가르치고, 구구단도 가르치고... 더 나아가서 친구를 사랑하는 것도 가르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가르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가르치고, 참는 것도 가르치고, 용기를 내서 불의와 싸우는 것도 가르치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가르치고...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6장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엄중하게 권고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 남을 섬겨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등이 떠오릅니다.

자식들이 장성하면서 우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제한되어 갑니다. 다른 것 다 가르치지 못하게 된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될 것이 바로 주님의 교훈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주님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야 겠지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우리가 좋은 것을 얻게됩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돈 많고, 머리 좋은 제자들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교육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훈련시키셨습니다. 또 말로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사랑을 먼저 몸소 행하셨습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달아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찾아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흔히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몇살 이전에 끝난다고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이런 말들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예수는 물론이고, 석가모니,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 많은 성인들은 나이 꽤 먹은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다섯째, 자식들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키 크고, 잘생기고, 공부 잘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고, 작고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면 다르게 대하실 건가요? 아들을 기다렸는데, 딸을 낳았거나, 딸을 원했는데 아들을 낳았다고 차별하실 건가요? 수많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듯이 자식에 대한 차별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차별은 사랑을 더 받은 쪽에도, 사랑을 덜 받은 쪽에도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늘 즐겨쓰는 예수님의 오히려도리어를 여기서도 써보려 합니다. 자식을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자식들이 말 잘듣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모님들은 도리어 열심히 사랑을 베풀 기회를 잡지 못하신 분이구요. 자식이 하도 속을 썩여서 이를 위해 무진 애를 쓰시는 부모님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열심히 사랑을 베풀 기회를 잡으신 겁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식을 포기하지는 않겠죠? 그러니 속을 많이 썩이면 썩일수록 그 부모는 많은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자식은 부모를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섯째, 내가 할 일만 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에 대해서는 절대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우리 자식이 최소한 어떤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생각은 좋은 관계를 망치는 데에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내가 내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시작이고 끝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현재의 나 자신을 돌아보죠! 내 자식과 나는 어떤 정도의 사랑으로 묶여있는지. 혹시 포기하지는 않으셨나요? 도무지 답답하고 말이 안통해서 속만 상하시나요? 서로 간에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는 대치 상황이신가요? 아니면 혹시 우리 자식은 아무 걱정 없다고 자부하시나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식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회복하시는 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이고도 지극한 것이 정상입니다. 만약에 지금 자식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이렇지 못하다면, 이를 가로막는 여러 환경과 조건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식을 포기하는 것은 내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식이 우리가 감당 못할 일을 할 때, 화내고, 싸우고, 낙담하고, 포기하지 맙시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 자식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에 걸려서 어쩔 수 없는 자식을 야단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말 안듣는 자식을 얼마나 참아낼 수 있는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것이라면 기쁘게 감사하며 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 넘어야 할 강을 많이 넘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래도 다시 한번 시작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 사진을 꺼내보며,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다시 사랑해 보련다!" 고 마음에 힘을 주시고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뭐라 하던 미소지어 주기로 다짐하며.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아낌 없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됩니다. 아니 주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도 생명을 바치는 경우를 봅니다. 하물며 내 자식을 위해서 무언들 못주겠습니까 ? 생명도 내어줄 수 있는 자식을 위해 내 자존심, 내 고집, 내 계획, 내 의지, 내 체면... 이런 것 정도 못버리겠습니가?

내 자식들은 나의 분신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우리 자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할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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