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좋을 때 감사했으면

 제목을 정하느라 잠시 고민했습니다. '좋을 때 감사했어야' 와 '좋을 때 감사했으면' 을 가지고. 둘다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를 담고 있지만, '했으면' 다음에는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말이 이어질 것 같ㅌ고, '했어야 ' 다음에는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지경이 되었네." 등의 부정적인 말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왠지 "감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에는 "이제라도 감사해야지!" 라는 기회와 희망의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제 눈이 아주 안좋아졌습니다. 정말 눈이 좋던 사람에서, 정상 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이 좋을 때, 눈 으로 감사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눈 때문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았던 것이 나빠지면, 우리는 두가지로 반응할 것 같습니다. 대개는 근심 걱정으로 기도하다, 실의에 빠지고, 포기하거나, 원망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전에 좋았을 때 감사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지금이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았을 때 감사할 사람이 많지 않듯이, 점점 나빠지는데 계속 감사하며 살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저는 어떠냐구요? 저는 눈이 아주 좋았을 때, 눈 좋은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인냥, 눈 나쁜 사람들 흉보기 바빴습니다. 당연히 감사하지 않았죠. 거의 빵점에 가깝게 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이 나빠지고 나서는 백점에 가까운 삶을 살아야 본전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 나빠지는 눈을 통해 더 감사하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언제까지 이나마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고, 안보여서 많이 불편할 때는 슬쩍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또 감사하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보통 몸의 어떤 부분이 안좋아지면, 걱정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불안이 엄습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부정하기도 할 겁니다.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죠! 감사하지 않고 다른 할 것이, 다른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감사 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어쩌면 곧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감사할 겁니다. 절망하지도 않을 거구요. 날 때부터 보지 못하거나, 어려서부터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죠. 그러면서 기대해 봅니다. 이러면 과거에 눈 좋은 것 가지고 잘난 척하여 까먹은 점수를 어느 정도 만회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좋을 때 감사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감사해야지 !!

** 지금 이 글은 얼마 전에 올린 '자랑하는 그것으로 때리시는 하나님' 과  소제가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을 정할 때와 같아, 비슷하지만 다른 깨달음이 있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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