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요일

왕년의 이야기

 과거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잘난 척 좀 해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특히 열다섯 살부터 스물다섯 살 까지의 교회 생활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절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엄청 많이 놀러다녔다는 겁니다. 이 두가지가 어떻게 가능했나를 생각해 보면, 공부 안하고, 잠 조금 밖에 안잔 것이 이유일 겁니다. 집에 와서 책가방 안건드린 적이 더 많을 겁니다. 밤 11시 넘어 들어온 날이 더 많구요. 잠은 원래 아주 적게 잡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잤을 겁니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잔 날은 오래 잤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항상 친구들고 많이 있어서 놀기가 편했습니다. 

제가 언젠가 글에도 썼듯이 저는 비정상적인 친구 관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절친이 5명이 넘습니다. 이 다섯 명이 한 그룹이었던 것이 아니라, 다섯명 모두를 각기 따로 만났는데, 어떻게 시간적으로 가능했는지? 철호, 정호, 주휘, 지선이, 기웅이, 영국이는 아마도 서로 간에 100% 절친이었을 것이고, 봉구, 득훈이, 창석이, 성준이, 구봉이, 수철이, 철완이, 인창이도 저와 절친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집을 오픈하는 것을 아주 꺼려한 철완이와 구봉이를 빼고는 이 친구들 집에 수시로 놀러갔고,가정사도 꽤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국민학교 때였는데도 말이죠. 

고 3 때 담임 선생님이 신학기 첫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와,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을 적어내라고 하셔서, 적어냈는데, 다음 날 저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반에서 저를 절친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무려 7명 이라고 했습니다. 20년 교사 생활에 지금까지 가장 많이 표를 받은 학생이 3명 이었는데, 저는 상상을 초월하게 받아서 느낌이 이상할 정도라고 하셨고, 특별히 저를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들이 많으니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녔습니다. 한참 공부해야 할 고 3 때, 강동구의 천호동에 살면서 강남에 있는 영동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제가 놀러다닌 저희 나와바리(?)는 천호동, 잠실, 강남, 반포, 영등포, 숙대 앞, 신당동, 화양리, 명동 이었습니다. 명동에는 예그린 이라는 유명한 음악 다방이 있었고, 여기에서 저희 절친인 현상이가 여름 방학 때 디제이를 봤습니다. 크고 유명한 다방인데, 고등학생이 디제이를 본다는 것이 상상도 안되지만, 현상이는 아주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나중에 80년대 후반에 MBC 에서 음악 전문 PD 를 공채로 선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단 한명 뽑는 자리에 들어가서 20년 넘게 음악 전문 PD 로 일했었습니. 친구 이야기가 이 글의 메인에서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이 블로그가 제 삶의 기록이기도 한지라, 그냥 남겨두고 가려 합니다. 

왜 왕년의 이야기를 했냐 하면, 제가 살아가면서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열심을 기억하셔서 이 시기를 넘어가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실제로 제게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치 "그래 그 때 참 좋았다." 라고 받아주시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과거를 팔아 먹고 살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할 날들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바로 마음 먹었습니다. 나의 60대는 과거의 어떤 때 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때로 만들어야 겠다고. 그리고 바로 양로원 예배에서 노인 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께 가는 날까지가 여러분의 전성기가 되어야 합니다." 지나간 어떤 모습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왕년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앞으로의 좋은 이야기로 왕년의 이야기를 덮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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