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방언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생각하게 된 이유를 먼저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국민학교 6학년 겨울 성경학교 때,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때부터 얼마나 뜨거운 삶을 살았는지? 중학교 때 어른들이 모이는 속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도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70년대 중반의 한국교회는 정말 뜨거웠었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여의도 집회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기도원이란 곳을 가보았습니다. 오산리 순복음 금식기도원이었는데, 교사도 부모님도 없이 중3 한명, 중2 한명, 중1 네명이 갔었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한 2박3일의 금식기도, 둘째날 실패하고 말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장면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처음 시도한 작정 금식기도의 실패가 약이 되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작정한 만큼은 다 성공적으로 버티었더군요. 물론 자주 작정하지도 못하고, 크게 작정하지도 않았지만요.
교회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냐하면, 고등학교 3년 간은 보통 방학이 되면 집에서 자는 날보다, 교회에서 철야하는 날이 더 많을 정도 였습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보통 밤 11시 정도에 기도회를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쉬지 않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4시에 마치면 30분 정도 쉬다가 어른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린 후에, 교회에서 자거나 집으로 가거나 했었습니다. 당시 저희 교회는 중고등부가 합쳐서 100명 정도 되던 규모인데, 이중에서 30명 정도는 기도회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편이었는데, 당시에 저희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냐하면, 저희 기도회에 2~3번만 참가하면 방언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30명 중에서 정확치는 않지만,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서너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서너명 중에 한명이 바로 저였습니다. 남들이 듣기에는 저는 분명히 방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소리내서 기도할 때, 제 기도가 남들을 방해할 것 같거나, 남들이 들어서는 안되는 내용을 기도할 때, 제 기도는 영락없는 방언처럼 들립니다. 기도회에 참가한 시간보다 기도회를 인도한 시간이 많을 정도로 남들 앞에서 설쳐댔던 제가 방언을 못한다는 것이 어린 시절 저에게는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그러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방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방언 기도 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받은 축복을 잘 간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있는 참으로 귀한 분들이십니다. 물론 방언을 받고도 기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여기에서 제외되겠지요. 저는 방언을 기도의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방언 받으신 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쉬지 않고, 10시간도 기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방언 받고 기도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은사를 낭비하는 사람입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방언을 통해서 여러분은 이전보다 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방언은 여러분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정확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확실한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대부분, 아니 전부가 남을 이롭게 하는데에 사용되어지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방언은 흔히 자신만을 위한 은사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방언을 가지고는 어떻게 남을 이롭게 해야 할까요?
이전에 어떤 목사님이 오히려 방언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문제를 자주 일으킨다고,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저도 은연중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교회에 그다지 오래 나오지 않고, 신앙적으로 그다지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분들이 쉽게 방언을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희 기도 모임에 들어오기만 하면 방언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쉽게 방언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방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거꾸로 그 목사님의 말씀을 반박할 방언의 기능과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방언의 힘은 중보기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중보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방언은 교회를 뜨겁게 합니다. 방언을 받으신 분들은 부디 시간을 투자하셔서, 교회의 기도 모임에 적극 참여하셔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나를 항상 돌아봐야 합니다. 다음으로 방언은 은사의 다음 단계로 인도하는 디딤돌입니다. 방언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방언에만 머무르는 것, 오직 방언만 받았을 뿐, 삶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십시요! 방언을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십시요!
눈에 보이는 신령한 은사를 받으신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요!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방언 기도 하시는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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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방언을 하지않으시는분으로서 이렇게 방언하는사람들을 격려해주시고 사랑으로 권면해주시는모습이 참아름답습니다. 저는 대부분이 거부감을느끼고 적대감마저 보이는분들을 많이보아왔습니다. 제개인적으로는 5년전에 집에서 혼자회개기도하다 방언을받았지요. 충격그자체였습니다. 원하지도 기대하지도않았고 그때까지들었던 모든설교말씀들은 방언에대해 인정치도않으며,했을지라도 부정적이었기때문입니다. 그후로 많은영적인 경험들을하게되었습니다. 다시말해서 방언은 영의세계를 열어주고 영적존재들즉 하나님과 천사들 그리고사단 마귀들이실제하며 영적전쟁이 격렬하게 지금도일어나고있다는것을...실감나게 깨닫게해주시는 통로의역활을 해주었습니다. 성령께서 전신갑주를입혀주시며(이말은 말씀들을 점차적으로 기도중에 깨닫게해주시며 차례대로 알게해주셨어요.나중에보니 그것이
전신갑주였지요.) 기도로 싸운다는것등을 알게해주셨지요.즉 영적무기들을주시고 깨어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죄를지으면 능력이 사라진다는것도요. 저는 신앙생활을하면서 한번도 마귀를대적한다는것을 실제로 생각해보거나 경험해보지도 않았는데 꿈에서 3번 이런일이있고서 성경이 다시보이기시작했습니다.소그룹에서 방언얘기만나와도 거부감을보이고 잘난척한사람들의얘기가 쏟아져나옴을보며 충격받았지요. 저는그것으로 잘난척할수있다는생각조차해보지못했는데....어쨌든 나중생각해보니 받기를원했는데 그렇지못했을때 상처가되었구나하며 이해가되었지만요.기도많이하라는격려의말씀감사드리며 방언의은사받게되시길 기도합니다.감사하고 축복합니다.
구하지도 않은 방언을 새벽 기도 중에 받았지요. 그후에 각 나라 방언으로 점점 지경이 넓혀지게 되었는데, 통변을 사모하게 됩니다.중보도 주신 사명이나 통변의 은사를 많은 분들이 사모하게 되기를....물론 은사는 주께서 주셔야 누릴수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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