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5일 토요일

거듭난다는 것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막상 요한복음 3장의 본문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보니 내용도 꽤 난해하고, 구성이나 흐름도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바꿀까도 생각할 정도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들여보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느껴졌었습니다. 설교했던 내용을 간단하게 쓰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종교생활을 아주 잘했을 니고데모란 랍비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바리새파 이면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유대교에 꽤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를 포함한 유대교 지도자들 중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환대를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늘나라와 하나님에 대해 말을 하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하늘나라를 알 수 없다."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납니까? 나이들어서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라는 것입니까?" 니고데모의 반문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직선적이고 자신을 대우하지 않는 듯한  말로 인해 상한 심기가 묻어나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너는 어떻게 랍비란 자가 그것도 모르냐 ?" 고 하며 핀잔을 주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니고데모를 몰아붙이셨을까요 ? 이글을 보면서 저는 예수님이 율법을 잘 지킨 청년이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네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는 도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의도 대로 그는 거듭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사도들 못지 않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도전을 준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도전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 외람되지만, 거듭나지 못하셨습니다. 물로 세례도 받았고, 뜨거워지는 성령을 체험했는데도 말입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 아니 거듭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듭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선 거듭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두 교회에서 네분의 목사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네분에게 저는 공히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은 거듭나신 체험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묘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네분이 모두 비슷한 답을 하셨습니다. 원했지만, 확실한 Sign 을 받지는 못했다. 어떤 분은 여전히 체험을 원하고 계셨고, 어떤 분은 어떤 계기를 체험으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미 제 블로그에 Born Again 에 대한 두번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본인이 세상에 온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에 합당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려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본향에서 삶을 살다가,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선택해서 이세상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자리에, 어떤 모습(적성, 재능)을 가지고 이세상에 올 것을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니 정해진 순리에 따라, 우리는 모든 것을 잊은체, 태어나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거의 정해진 것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면, 재벌의 아들로, 가난뱅이의 아들로 태어나면 가난뱅이의 아들로,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또 그런데로, 불화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면 또 그런데로,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타고난 성품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환경과 재능, 적성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후회하게 되겠죠 ?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세상으로 나갔는데,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진 것 쓰다가 돌아온 것과 같은 셈이니 말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깨트리는 것, 끊는 것 입니다. 석가모니가 왕자의 지위를 버리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는 깨달았던 것이고, 거듭났을 것입니다. 이글을 보실 여러분이 본향에서 어떤 수준의 삶을 유지하다가 오셨을 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모두는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은 본향에서의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본향에서 영생의 수준에 근접하신 삶을 사신 분도 계실 것이고, 어떤 분은 굉장히 힘든, 자유가 구속된 지옥 수준의 삶을 사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쨌든 모든 분들이 수준을 높이시길 원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 "나는 이세상에 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서 본향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하지만 지금처럼 살면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은 나의 환경과 내 유전인자가 만들어 놓은 산물에 불과하다.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우리 크리스챤의 금과옥조인 요한복음 3장16절에 나와있죠 ? 하나님이 세상을 자기 아들을 버릴만큼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겠죠 ? 나는 내가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 하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아서,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잘하면 상주시는 분이고, 못하면 벌주시는 분입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엄밀하고, 공정하게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에게 상주시고, 세상을 어둡게, 더럽게, 지저분하게, 정의롭지 않게 만드는 사람에게 벌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거듭나셔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말들까요 ? 다른 사람에게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았을 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조금 밝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았는 데도, 불평하는 사람은 세상을 조금 어둡게 만드는 사람이죠. 하나를 주고, 하나도 받지 못했는 데도, 불만을 가지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꽤 밝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본인은 아무 것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받았음에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세상을 꽤 어둡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는지 한번 뒤돌아 보시죠 ! 그런데 이런 것들은 여러분이 태어난 본성에 의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본향에서의 수준에 따라, 그 본성에 맞줘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됩니다. 플라톤은 반대로 이야기 하지만, 저는 본향에서의 수준이 비례적으로 나타난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거듭나셨다면, 여러분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을 깨달으신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본성을 숨기고, 나를 깨트리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를 주면서, 하나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래야 합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았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지만, 그래봐야 점수가 그다지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주고, 돌려받지 못했을 때, 불만을 가지기는 커녕 그 사람에게 더주고 싶은 마음을 품고, 실제로 더 줄 때, 바로 중요한 점수를 따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따귀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 화가 나고 참을 수 없겠죠 ?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동조를 구하고 싶고, 힘이 잇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물리적으로라도 한방 올려붙이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기회입니다. 왼뺨을 때린 자에게 오른뺨도 돌려대라 ! 겉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도 벗어주라 ! 오리를 동행하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도 동행하라 !"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겐 정말 귀중한 선물입니다.

최근에 부부문제로 고민하시는 분, 두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두분에게 공히 말씀드렸습니다. 거듭나셔야 한다고. 한분은 60대 후반이시고, 한분은 50대 셨는데, 두분에게 모두 거듭나기 좋은 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나이 들어 느끼게 되는 부부관계의 갈등은 바로 거듭남에 있어서의 최고의 기회가 됩니다. 내게 괴로움을 주는 배우자가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조건이 됩니다.

3~40 대에 거듭나기는 정말 어려운 것으로 느껴집니다. 50대가 넘어가면서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되면, 내가 애써봐야 별 것이 없구나, 없었겠구나 !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타고난 대로 살다 가게 마련이기 때문이죠. 앞으로의 삶도 생겨먹은 대로, 타고난 대로 살다갈 수 밖에 없겠지 ! 라는 생각이 들 그때에, 그때가 바로 거듭날 수 있는 여건이라는 판단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주는 괴로움과 상처. 나를 괴롭게 하는 부모, 배우자, 자식...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여러분은 점수를 딸 기회를 받지 못하신 분입니다. 반대로 여러분 주위에 도울 사람이 많고,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바로 여러분은 큰 노력하지 않아도 점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습죠 ? 제 논리에 의하면 우리가 복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복 받을 기회가 거의 박탈된 사람이고, 정말 복도 지지리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복 받은 기회를 잡은 사람이니 말입니다. 부모가 속을 썩이고, 배우자가 속을 썩이고, 자식이 속을 썩일 때, 감사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을 표현하는 것일까? 를 고민하시고, 그대로 하십시요 !

멀리 나가서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 안타까운 분들을 부러워하지 마시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 버릴 수도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풀어도 되는 여러분의 여건을 감사하십시요 !

인생역전 ! 거듭남이 주는 선물입니다.

*** 설교내용으로 시작했는데, 조금 내용을 삽입해서 산만해 졌습니다. 고민하다가 그냥 올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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