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5일 월요일

또 한분의 자살 앞에 서서

몇일 전에 저희 교우 한분이 자살로 삶을 마치셨습니다. 저희 교회에 4개월 가량 출석하신 분인데 사실 교회에서는 인사말 이외에는 나눠보지 못했고, 제가 주일 예배로 봉사하는 양로원에 매주 같이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시기 때문에, 양로원 복도를 걸으며 1분 정도 이야기 나눈 것이 그분에 대한 관계의 전부였습니다.

중풍으로 걸음이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조금 천천히 걸으셔야 하기에, 제가 여쭈어 봤습니다. "언제부터 불편하셨어요 ?" "한 3년 되었습니다." "운동 열심히 하면 훨씬 좋아지신다던데, 운동은 좀 하세요 ? " "많이는 못하고, 그저 조금씩 합니다." "평소에는 주로 뭘 하고 지내세요 ?"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 이것이 그분과 제가 나눈 대화의 골자였습니다. 그리고 약 3주 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세들어 살고 계시던 집의 지하실에서 목을 메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된 상황은 이랬습니다. 50대 중반인 이 교우께서는 오래 전에 이혼을 하셨고, 자식이라곤 아들 하나인데, 20대 중반인 아들은 몇년 전부터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답니다. 멀리에 연세 드신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누님과 여동생이 계신데, 여동생이 가끔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 더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고, 남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까요? 저세상에 가시면 바로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저렇게 많았다니 ! 하고 말입니다. 일년, 아니 한달만이라도 더 살면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한두 가지만 더 하고 삶을 마쳤더라도, 그분의 삶의 평가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분 외에 제 가까이에 계셨던 분들 중에서 세분이 자살로 삶을 마치셨습니다. 세분은 공교롭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고, 세분의 죽음이 모두 제게 깊은 자책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블로그를 만들게 된 동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분은 1956년 생으로, 커네티컷 주에서 소문이 자자한 크게 성공한 네일살롱을 운영하시던 분이셨습니다. 편의상 김사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김사장님은 인상이 험악하고, 성격이 괴팍해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이 있으셔서, 형이 소년 가장으로 어린 김사장님과 막내 여동생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그 형 마저 십대 후반의 나이에 일을 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김사장님은 국민학교 5학년 이었습니다. 시골에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어린 나이에, 먼 친적 한분 믿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성수동에서 구두 닦는 일을 했답니다. 중학생 나이가 되었울 때부터는 그 동네 킥복싱 도장에서 청소를 하며 먹고 지냈답니다. 가슴 속의 한과 외로움을 킥복싱을 통해 풀었고, 점점 거친 삶을 살기 시작했답니다. 사고를 치고 감옥을 드나들다가, 20대 후반에 큰 사고를 치고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외항선을 탔고, 그야말로 배에서 뛰어내려서 미국에 발을 딛게 되었답니다. 신분도 없고, 영어도 한마디 못하면서, 물어물어 뉴욕으로 왔고, 그때부터 식당의 버스보이로 시작해서, 빌딩 청소, 봉제공장 공원을 거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게 되었답니다. 겁없이 운영하다가 실패를 하고, 콜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잇다가, 한 여자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후에 부인과 네일살롱을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네일살롱을 정말 잘 운영하셨습니다. 외곬수이고, 단순무식한(죄송!) 강점을 활용해서, 다른 네일살롱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네일살롱 컨설턴트인 제 표현으로 '다른 네일살롱보다 20년은 앞서 간 살롱' 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네일살롱에서 3년 이상만 일하고 나와서 네일살롱을 차린 사람들은 다 성공했다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김사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2003년 가을일 것입니다. 2003년 여름에 저는 커네티컷에 있는 네일살롱들을 위한 '커네티컷 네일협회' 를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협회 회원들을 이야기를 듣는 중에, 어떤 네일살롱 남자 사장이 직원들에게 욕을 일삼고, 가끔은 때리고, 성희롱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말을 안들으면 출퇴근 길에 고속도로에 내려놓고  가버리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서 한번 따져봐야 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괴팍한데다가, 사납기 까지 해서 가면 봉변당한다고 만류하셨습니다. 가끔은 불의를 못참는 제 오기가 발동을 해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 바로 그 살롱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김사장님을 처음 본 제 느낌은 '정말 만만치 않게 생겼구나!' 였습니다. 저는 "네일협회에서 왔는데, 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김사장님은 "직원들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고 하며, 건물 뒷편 작은 공터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마주하자 마자 저는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김사장님은 어이가 없어하며, 도대체 들으신 이야기가 어떠한 것들인지 다 말씀해 보시라고 했고, 저는 하나 하나 다 따져 물었습니다. 김사장님은 제 질문에 대해 상세하게, 긴 시간에 걸쳐서 다 해명을 했습니다. 해명을 들으면서 저는 항간에 들리는 소문이 김사장님 살롱에 대한 주변 살롱 오너들의 시기심과, 해고된 몇몇 직원의 앙심이 만들어낸 음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한번의 만남 이후로 우리는 오랜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한글도 완전히 뗐다고 하지 못할, 더구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말도 잘 못하는 김사장님이, 맨정신에 저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참으로 의아해 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지만 말입니다. 부인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가족사와,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제게는 편안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처음 김사장님을 만났을 때는 부인과 별거한 상태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재결합을 하였었습니다. 그리고는 채 2년을 지내지 못하고 다시 완전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본인 표현으로 '씨 없는 수박' 이어서, 천지간에 가족이라고는 부인 밖에 없다고 해도 좋을 김사장님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김사장님을 교회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제가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바쁜 일이 생겨서 한 1년간 발길을 끊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점이, 제가 김사장님과 작은 논쟁을 한 이후여서, 김사장님은 제가 삐져서 자기를 찾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즈음에 잘나가던 살롱을 매각하였고, 매각대금으로 동종의 큰 비지니스를 벌렸습니다. 새 비지니스의 오픈을 위해 우여곡절을 겪는 중에, 제게 연락이 왔고, 김사장님이 혼자 사시는 작은 아파트 앞의 술집에서 만나, 김사장님의 하소연을 듣고, 하지도 않았던 오해를 풀었습니다. 매일 밤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듣고만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연락을 하지 않고 육개월 쯤이 흘렀는데, 우연히 만난 어떤 네일살롱 사장님께서, 지난 달에 있었던 김사장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김사장님과 각별했다고 생각하셨기에 제가 장례식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김사장님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에게 가득찬 암울한 그림자를 느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제 사업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번 하지 못한 저를 돌아보며, 깊은 자책감에 잠겼습니다.

이로부터 3개월 쯤 지난 어느날, 어떤 네일살롱에 들어갔더니, 그 살롱의 사장님께서 저를 보자마자 "그 김ㅇㅇ 사장에게 전도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 중심을 찌르는 말이었고, 저는 "그러게 말입니다. 후회가 막급입니다." 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난 어느날,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그냥 지나다가 네일살롱 간판이 보여 들어갔더니, 사장의 얼굴이 낯이 익었습니다. 바로 김사장님의 살롱에서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했던 여자분이었습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의 입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김사장님 전도할 사람은 김사장님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를 또 한번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말이지만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왜 교회 이야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나 모르겠어!"

김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쓰는 이유는 그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지 모르는 그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바램이라고 할까요. 이 글을 쓰면서 그의 어색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제가 그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의 죽음이 제게 주는 메세지는 "민첩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된다!" 였습니다.

두번째 죽음은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만난 노ㅇㅇ 형제의 죽음입니다. 저와 동갑인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실의에 잠겨있다가, 도망치는 마음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상업미술을 했던 그는 초상화를 그리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뉴저지에 방을 정하고, 맨하탄의 소호지역 인근 공원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에 온 지, 한달 정도 되었을 때 저희 교회에 왔는데, 자그마한 체구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밤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매일 교회를 드나들다 시피하는 저와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았습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그는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교회의 여러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교우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보기도 하고, 비행기표를 끊어주며, 한국으로 가는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터인가, 그 친구 눈에서 가끔 광기가 번득이기 시작했고, 우리 교회에 사탄, 마귀가 너무 많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던 분들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담임목사님에게도 대들었습니다.  목사님을 포함해서 모든 분들이 손을 들었는데, 묘하게도 이친구가 제 이야기는 계속 존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이 교회의 마귀 사탄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들을 다 짊어지고 죽는 방법 뿐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친구에게 "노 ㅇㅇ 형제, 만약에 이 교회에 마귀 사탄이 넘친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야! 여러사람들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서 힘을 합쳐서 물리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지 않겠어? 그런데 그것을 형제 혼자 감당하겠다고 하면 안되지. 우리 힘을 합쳐서 같이 싸우자고..."

어느 토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로비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그 친구의 표정이 너무 안좋아 보였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다가가서 안좋은 일이 있냐고 물으니, 그 친구는 괜찮다고 하면서,  자기를 집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했습니다. 저는 약속이 있었기에, "미안한데 내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버스 타고 가야겠는데!" 라고 말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로 가려고 집에 왔는데, 제 처가 저를 보더니, 왜 이렇게 인상이 어둡냐고 했습니다. 저는 노 ㅇㅇ씨를 봤는데, 표정이 너무 안좋아서 걱정이 되서 그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가보니, 그친구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교회 보일러실 파이프에 목을 맨 것입니다.  매일 적어서 보여주던 파란 스프링노트 일기장에 유서를 남긴 채 말입니다. 오로지 내말 밖에 듣지 않던 친구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부탁한 것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었고, 제가 라이드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친구의 자살을 '의사 순교' 라고 규정했습니다. '잘못 된 순교' 죠.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생을 희생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순교도 자살의 일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순교가 곧 자살이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 친구는 주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위하여 죽음을 택했으니 하늘나라에서 심판받을 때에, 인정을 두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에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세번째의 죽음은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오랜동안 같이 신앙생활했던 여자 집사님의 죽음입니다. 꽤 능력있고, 사교적이며, 밖에서 사업하느라 애쓰면서도, 가정적이기도한 남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주 활동적이고, 성적도 좋은 딸, 그리고 엄마를 흐뭇하게 하는 스위트한 아들을 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 교회생활, 이웃과의 관계에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주부였습니다. 교회생활도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부끄러운듯한 미소가 아름다운 집사님 이셨습니다. 또 같은 타운에 사는 교인들과 너무 사이가 좋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고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사님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리가 같은 타운의 교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약도 먹고, 병원에도 가고, 입원해서 검사도 받고....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같은 타운의 교인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집사님을 혼자 두지 않으려고 순번을 짜서 남편이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밀착해서 보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와보니, 제 와이프가 꽂감을 한상자 내밀면서, 그 집사님이 마트에 갔다가, 제가 꽂감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한상자 샀다고 하며 저희 집에 내려주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오랜동안 가까이 지냈지만, 저는 그 집사님과 개인적으로 1분 이상 대화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게 꽂감을 사다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관계였기 때문에, 저는 뭔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우기 제 기억으로는 제가 꽂감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결론은 그 집사님의 영이 제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내려졌습니다. 서둘러서 만나봐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교회에서 영성이 깊다는 권사님, 또 여러 목사님들이 수시로 찾아가서 기도하고, 상담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몇일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집사님은 제게 꽂감을 사다준 지, 일주일 만에 호수에 몸을 던지셨습니다. 밀착해서 보호하시던 분들이 엇갈리는 잠깐 사이에 집을 빠져나가, 차를 몰고, 30분 거리에 있는 세븐 레이크 라는 호수에서 삶을 마친 것입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집사님이 굉장히 두려워했다는 것을요. 그 집사님을 자살로 몰아넣은 그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한가지는 자신이 정신병이라는 것이 주위에 알려지면, 아이들이 결혼하는 데에 지장이 있을까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그 집사님을 무서워서 자꾸 어디에 숨으려고 하게 만든 요인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조금은 짐작하시겠지만, 아마도 사탄의 짓이었겠죠?

독실한 크리스챤이고 싶어하는 제가, 어떻게 보면 기독교에서 아주 많이 떨어져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지금 쓰려는 내용도 그런 류라고 느끼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미리 말씀을 드려 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향에서 이세상에 왔다가 다시 본향으로 갑니다. 어떤 사람은 본향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간절히 원해서 이세상에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한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좋은 평가를 받을 삶을 살아야 겠다는 목표아래,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선의 위치를 선택해서 이땅에 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는 변하지 않는 기준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세상에 오면서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사랑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노라고 다짐하고 오지만, 아쉽게도 태어나면서 본향의 모든 기억을 까먹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내가 왜 이세상에 왔는 지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영' 은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몰고가려고 항상 드라이브하지만, 우리의 욕심과 욕망은 우리를 결코 좋은 방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질서 속에 있는 '조우커' 와 같은 존재인 사탄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유지의 도구이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창조질서의 수행자 입니다.

사람들이 이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내적 장애물이 욕망과 욕심, 또 육체의 한계라면, 외적 장애물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사탄의 임무는 이세상에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영적존재이고,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조정할 수 있습니다. 조정이라기 보다는 미혹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탄은 이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과 자유는 제한적입니다. 이세상의 삶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우리는 사탄의 존재와 그의 무기, 그의 성향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위의 네분을 통해서 보면, 사탄은 우리를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조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제로 우리 몸이 무겁다고 느껴지게 되고, 어딘지 모르게 아프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심지어 내가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속에 있게도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외롭다고 느끼게 만들죠.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는 사람이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끼게 합니다.

사탄은 또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능력에 회의를 느끼게 하고, 현재의 나쁜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게 합니다. "나는 이것 저것 아무리 해봐도 되는 것이 없다." "나는 정말 운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조금만 여유가 있는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내가 예뻣더라면?" "조금만 더 키가 컷더라면...?"

사탄은 또 우리의 단점이나, 잘못한 점을 물고 늘어져서 그것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위의 시선이 무서워서 사람들을 피해 숨게 만듭니다. 자기 남편이나, 부인이 바람을 핀다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돈과 물질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명예에 집착하게 만들기도 하구요. 성적욕구에 집착하게 하기도 하고, 먹는 욕구에 집착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이외에도 사탄이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이 있겠지만, 그는 창조주 하나님의 설정 속에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훼손할 수 없습니다. 이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탄이 파고 들 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틈에 사탄이 오래 머물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사탄에 대한 예방방법은 내게 일어나는 일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적유혹, 도박의 유혹, 게임의 유혹, 술의 유혹 등 각종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끊임 없이 노력해야 겠지만, 누구나 견디지 못하는 자신만의 유혹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런 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빠져나오지 못할 유혹은 없다 라고 확신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 같으면, 친구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다보면, 쉬면서 보충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100미터를 뛰듯이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폐기능이 정지하고, 근육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몸이 알아서 움직임을 막습니다. 이 쉬어야 하는 시간을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에너지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달리는 것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한 근육을 가지고 뛰지도 못하면서 경주를 계속할 것입니다.

누구나 혼자라고,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는 본향에서부터 당신과 친구가 되어서 뭔가를 도모하기 위해 이세상에 왔고, 당신은 우연히,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모의 자식이 되기로 선택해서 이세상에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자녀도 당신을 부모로 선택해서, 당신 밑에서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세상에 왔습니다. 당신의 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죠. 그런 당신이 혼자일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이 가난한 가정을 선택했던, 부유한 가정을 선택했던, 당신이 그럴듯한 외모를 가졌던, 당신이 뛰어난 머리를 가졌던, 아니던, 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장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선택했더라도 사실은 당신은 어떤 분명한 것을 보고,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과 적성, 성향을 고려할 때, 이세상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자리와 조건을 선택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의 선택에 자신을 가지십시요.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것이 바로 최고의 것입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그리고 그 잘못을 가지고 평생 괴로워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저히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도 꽤 계셔서 도저히 갚을 수도 없습니다. 이 잘못들 중에 상당부분은 공개가 되어서, 저를 엄청나게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저는 제 인생 성공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홍글씨로 인해, 평생을 자만하지 않고, 근신하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탄이 파고들어올 거의 모든 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시로 사탄의 미혹을 받습니다. 몸이 찌푸둥해도, 날씨가 찌푸둥해도, 안좋은 일이 생겨도, 시간이 남아도, 남의 흉을 보고 싶을 때에도, 어떤 사람에게 시기심을 느낄 때에도, 만화를 보고 싶을 때에도, 게임을 하고 싶을 때에도, 예쁜 여자를 쳐다보고 있을 때에도... 사탄과도 동행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탄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사탄은 쉽게 봐서는 안되는 대상이지만, 상대에게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으면 이길 수 없겠죠?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의 유혹에 견디기를, 아니 사탄을 물리치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보던 프로레슬링을 생각해 보세요! 심판이 있어서, 반칙을 하면 제재를 가하죠.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또 공격을 당하던 선수가 로프를 잡으면, 심판은 공격을 멈추게 하구요. 하나님이 심판을 보시면서, 사탄과 저희를 레슬링을 시키시는 것으로 생각해 보세요. 심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싸워보자구요. 사탄이 우리를 죽일 급소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경기의 룰이죠.

'자살'에 대해서 저는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 는 식의 기독교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살했다고 해서, 자살하신 분이 쌓으신 평점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살하신 분은 저세샹에서 땅을 치면서 후회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저세상에서 당신의 삶을 평가하는 재판관이 "쯧쯧쯧! 당신은 태어날 때 벌써, 오십대 중반, 바로 그 시점에서 자살하게 되어 있었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다가 세상에 나가더니, 그걸 못넘기고, 다시 본전이라니... " 그것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당신 인생의 평점이 뒤바뀝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글을 쓰면서 여러분께 두가지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당당하게 사탄과 맞아 싸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여러분 주변에 힘겨워 하시는 분이 계시면, 여러분이 그분들의 힘이 되어드리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기회를 놓쳐서 후회하지 마시길 기원합니다.

아픈 마음으로 그분의 죽음 앞에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는 우울증에 걸린 분들과 상담하길 원하지만,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먹고 사는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저와 대화나누길 원하시는 분은 제 이메일 sungamos@gmail.com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복잡하고 산만한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자주 그러네요. 올해도 4월1일에 어김없이 시작된 심한 알러지 탓으로라도 돌려야 겠습니다. 알러지로 고생하시는 분들 힘내세요!

댓글 2개:

Oldman :

근래에 장애우들을 위한 모임에 봉사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우울증을 앓는 분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좋네요. 자주 들리겠습니다.

SYK :

예전에 좋은 댓글 달아주셨었는데, 제가 주의 깊게 보지 못해서 감사드리지 못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다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애우를 위한 사역과 우울증을 앓는 분을 위해 틈나는 대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