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1일 토요일

새로 쓰는 천지창조(교)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죠. 하지만, 뱀의 유혹에 빠진 하와와 하와의 유혹에 빠진 아담은 선악과를 먹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악을 알게 된 대신, 에덴동산에서 쫒겨납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주된 이유는 "이제 선악과를 따먹어서 우리 중 하나 같이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어서 영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 입니다." (창 3:22)  따라서 인간은 죽게 되는데, 선악과를 따먹어서가 아니라,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죽지는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지 않고 생명나무 열매만 먹을 수 있었으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선악과를 따먹은 관계로 죽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쫒겨났습니다. 어디로 쫒겨났을까요? 에덴동산 밖에 있는 세상으로죠. 에덴동산 밖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가족은 그 다른 세상에서 섞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에덴동산만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그 바깥 세상과 사람의 자식들은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은 것일까요? 아마도 모세는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두는 그 바깥 세상과 그곳 사람들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 바깥 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 바깥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혹시 그들 중에 아담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사람은 없었을까요? 생물학적으로 아담은 아직 자식을 낳지 못했고, 바깥 세상에 창조된 사람들은 자손을 꽤 번식시켰다고 본다면, 아담 보다 먼저 만들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담을 인류의 시조라고 말하려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만드시고,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 아이를 낳지 않고, 수천년 동안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살다가, 어느 순간에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사이에 바깥 세상에 하나님이 아담 보다 늦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분이시라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한참 지나서, 에덴동산이란 곳, 즉 신들의 세상과 인간 세상의 중간 쯤 되는 곳에, 시험적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놓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형상을 닮게 손수 만드신 완전한 인간이 그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영원히 살게 하려고 하셨는데, 실패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상은 말이 아닌 것이죠.

한번 생각해 보시죠! 선악과를 먹기 전의 인간, 아담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벌거벗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노동을 할 필요도 없었죠. 그저 좋은 자연 속에서 먹고, 싸고, 자고, 마음껏 쎅스하며, 짐승처럼 지내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근심 걱정은 없었을 지 모릅나다. 하지만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이런 인간을 만드셨을까요?

제가 주장하는 천지창조는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그의 창조작업도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똑같은 인간, 즉 선악과를 먹은 이후의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실패작이 아니라, 의도한 대로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완벽하게 맞는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이죠. 선악과를 따먹은 후의 인간, 바로 선악을 판단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노동을 해야 하고,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도 같은 의미라고 봅니다. 최초의 여자(여신이 아닌)인 판도라는 인간세상에 내려오면서 신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주신이면서 판도라를 만들게 한 제우스의 선물은 '상자' 였습니다. 상자를 주면서 제우스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열지말라고 했죠. 말도 안되는 일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었죠. 어떻게 열어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판도라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상자를 열자 상자 속에서 가난, 증오, 슬픔, 전쟁 등이 나와 세상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급하게 상자 뚜껑을 닫았더니 상자 속엔 '희망' 만 남았다는 것이죠. 그리이스 신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편하게 판단을 합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것은 제우스의 뜻대로 된 것이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것이다 라고 말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크리스챤입니다.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 세상엔 슬픔과 가난과 전쟁과 증오가 가득하고,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지? 왜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거야? 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대에도, 모세가 살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여호와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써야 하는 모세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는데, 인간들이 망가트렸다. 그래서 모세는 이전에 자신과 같은 고민을 했던 현자들이 남긴 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택했을 것입니다. 뱀과 하와와 선악과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 썼을 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모세 수준의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5백년 전의 과학수준을 최대한 반영해서 쓰여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주만물의 창조를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느 과학이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글로 써서 알려주시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비유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모세는 우리들 보다 하나님에 대해서 더 몰랐을 확률이 큽니다. 하나님, 아니 여호와가 자기네 히브리 민족만을 위한 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떤 신보다도 힘이 있는 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쓰고 싶었겠죠. 모르면 그냥 태초에 여호와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라고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모세가 애굽의 왕실에서 꽤 많은 학문을 배웠다는 것이 오히려 악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시니라.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빛과 물과 공기를 두셨고, 물과 땅과 공중에 온갖 생물이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셔서 식물과 동물을 취하며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게 하셨다. 그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선악을 판단할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도록 만드셨다. 정도로 쓰여졌다면 어떨까요?

하지만, 사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성서의 저자들 조차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다. 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실패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결국은 하나님은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고, 인간을 왜 이렇게 만드셨는가? 라고 불평을 터트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이세상이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얼마나 완전하고 아름다운지? 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 즉 이성(한 단어로 표현하려고 하니 이 단어가 가장 가까운 것 같아서)을 가진 인간이, 생로병사 등의 많은 한계를 가진 육체를 가지고, 온갖 욕망, 욕심 등과 싸우며, 타협하며 삶을 살아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고, 실패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이상 잘되면 자기 덕이고, 못되면 하나님 탓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틀과 체계를 만들어 놓으셨고, 그 속에서 우리 자의대로 살게 하셨고, 그런 우리의 삶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평가하십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상입니다.  

** 양로원 어르신들께 성경공부하려고 쓰다가, 너무 제 주장이 들어가서, 블로그에 먼저 올립니다. 어르신들을 위해선 다시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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