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1일 수요일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누가복음 17장11절~19절까지의 내용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십니다. 그때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께 가까이 오지 못하고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며 크게 소리 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라!" 고 하십니다. 열명 모두가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열명 중에 한사람은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그는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묻습니다.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리고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에서 몇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병 나음을 받은 것과 구원을 받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입니다.
문둥병자인 이들에게는 병이 낫는 것이 평생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들은 기회를 잡았고, 간절히 외쳤고 결국 열명 모두가 병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단 한명만이 구원받았습니다.
문둥병자는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문둥병자이면서 구원을 꿈꿀 수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요?

둘째는 "왜 사마리아인 인가?" 입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은 천민 이하의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소외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반대로 유대인은 자신들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어떤 대우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자기에게 주어진 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될 확률이 큰 것이죠.

셋째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입니다.
나는 문둥병자였는가? 나는 깨끗해졌는가?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나는 예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는가? 나는 구원받았는가?
성장하는 신앙의 보통의 경로를 한번 보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교회에 다니다가, 어느 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뜨거워지고 감동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한 것이구나라고 내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받은 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중생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냐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대답하십니다. 몸이 나음을 받은 것을 물로 거듭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께로 와서 감사하는 것을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