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7일 금요일

부자 청년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는 아래와 같이 공관복음 모두에 나와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16절 ~ 26절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가복음 10장 17절 ~ 27절  한사람이 달려와서 끓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누가복음 18장18절 ~ 25절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성경 내용을 통해서 우선 몇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청년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
누가복음을 보면 관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유대의 전통으로 관원은 서른살이 넘어야 합니다. 청년이면서 관원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재물도 많았고,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주로 못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허름한 복장의 예수님 앞에 무릎을 끓습니다. 그만큼 그는 영적 갈급함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큼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청년이 간절히 원했던 영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요 ?
영생은 성경에서, 아니 기독교에서 참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할까요?, 아니면 영혼이 영원이 사는 것 일까요 ? 아무도 육체를 가진 인간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영생이 이땅에서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영혼은 영생한다고 봐야 겠지요. 그러니 영생은 영혼이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독교의 영생이 윤회의 개념 없이 설명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윤회의 질곡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열반' 의 개념과 비교하여 영생을 연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고해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되는, 그 성취가 바로 영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다른 두곳과 달리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말씀하셨다고 분명하게 써있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청년에게 도전을 주고, 근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청년이 어떻게 되었는 지는 성경에도, 초기 기독교 전승에도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 청년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 청년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좇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청년에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치하와 인정을 받고 싶어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바리새인이고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도전을 주십니다. 좀더 변화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대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좇았고, 아리마데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했고, 결국엔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시험과 도전을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뉘앙스의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오히려' 입니다. 청년은 돈이 많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은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길, 아니 돈을 소유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께서는 그 청년이 돈이 많은 것이 오히려 부족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란 단어에 삶의 지혜, 아니 섭리가 담겨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났는데, 오히려 그것이 부족한 것일 수 있고,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오히려 부족한 것일 수 있고, 좋은 친구를 가진 것이 오히려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좋은 자식을 가진 것도 오히려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돈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 악처를 만난 것, 도움을 줄 친척들이 없는 것, 도와주어야 할 친구들만 있는 것 들이 오히려 '복' 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해서는 그들은 우리 삶의 열매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외모가 번듯하지 못하거나, 육체적으로 약하고 문제가 있거나, 별다른 자질이 없을 때, 이렇게 타고 난 조건들이 안좋을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나 우리 자식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잘 살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에 안좋은 조건들을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아야 겠지요.

부자 청년과 같이 예수님으로 인해 도전을 받아, 근심하시고, 변화하셔서 '오히려' 내려 놓고, '오히려' 감사하는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영생' 이 그다지 멀리에 있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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