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3일 월요일

여호수아의 삶을 통해

여호수아에 대해 알기 위해 먼저 민수기 141 ~ 10절을 봅니다.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땅을 탐지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니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말라 하니,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느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광야 가운데서 이끈 지도자는 하나님의 종은 모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한 이 두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 없이 하나님과 그들의 지도자를 배신하나, 이 두 지도자는 그 백성들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며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본명은 ‘구원’이라는 뜻의 호세아였습니다.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로 불리게 되었는데(13:16),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후에 ‘예수아’로 바뀌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헬라식 이름인 ‘예수’로 불리웠습니다. 즉 여호수아와 예수는 같은 이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이라는 격랑의 시대 한복판에서 백성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여호수아를 통해 몇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각 지파를 대표하여 뽑힌 12명의 정탐꾼 가운데서 갈렙과 함께 여호와의 뜻을 분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위의 성경구절에서 보여지듯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리고성, 아이성 그리고 아모리 등을 정복합니다. 가나안지역에서 이교도들을 완전히 몰아냅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돌로 쳐죽이려는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담대히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셋째로 그는 청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에게 토지를 분해해 주는 일은, 외부의 적들과 싸우는 전쟁 못지않게 매우 민감하고,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수아는 청렴함과 양보하는 마음을 가짐으로 이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19장에 나와있듯이 자기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1지파 모두의 기업 분배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자신의 기업을 분배합니다. 맨 마지막에 지도자 여호수아가 기업을 분배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다 양보한 후에 그가 요구한 ‘딤낫세라’ 성읍이 에브라임 산지의 완전히 파괴되어 있는 성읍으로 새로 건축해야 할 보잘것없는 성읍이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의미가 부각됩니다. 

넷째로 그는 가정과 교육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415절에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선언합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하나님을 떠난다 할지라도 자기와 그 가정만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으면서도 가장으로서 가족의 신앙을 돌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아니했음을 증거해 줍니다. 이처럼 가장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영적 문제를 책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제사장 엘리가 자식들을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패가망신 합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가정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다섯째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먼저 그와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에 따라야 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결단입니다.

민수기 14장을 계속해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돌로 그들을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눈밖에 나서, 자신들의 말대로 메뚜기처럼 흩어지고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믿음대로 살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결단을 돕기 위해 이렇게 주장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는 곧 우상을 섬기는 자다." 라고 말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단력이 없이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주위의 상황을 보아가며 눈치껏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허송세월 하다가는 결국 후회 속에 삶을 마치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로 결단할 때입니다. 

댓글 없음: